日/일본답사 기본상식

일본답사 기본상식 4 : 불교와 사원3 - 일본의 사원과 가람배치

同黎 2018. 7. 27. 05:14

3-3. 일본 사원의 위계관계

 

일본에는 정말 수많은 사찰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에도시대부터 백성들을 관리하고 기독교를 탄압하기 위해 모든 백성이 특정 사찰에 등록하고 사원에서 호적을 관리하는 단가제도(檀家制度)를 시행합니다. 사원에서 등록된 백성의 가족사 일체를 관리하고 시주와 장례, 제사 등도 독점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단가제도는 사원의 경제적 존립 기반이 되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찰이 남아있을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특정 가문과 연결된 사찰을 단나사(檀那寺) 혹은 보리사(菩提寺)라고 합니다.

이처럼 사원은 백성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중앙정부는 나라시대부터 메이지유신 때까지 사원을 관리하는 여러 가지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규칙에 따라 크게는 종단이 작게는 사찰들 사이의 위계관계가 정립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일본 사찰을 답사할 때 알아야 할 기본적인 개념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산제(本山制)

본말제도(本末制度)라고도 합니다. 에도시대에 막부에서 단가제도를 시행하면서 각 종파 내의 본산과 말사(末寺)를 정해주게 됩니다. 이때부터 형식적으로 각지의 고찰들이 정해진 종파에 속하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본산제도의 시작이었습니다.

종파의 수위에 있는 사찰은 본산이라고 합니다. 본산은 크기에 따라 총본산(総本山), 대본산(大本山), 본산(本山)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그 밑에 소속된 사찰들은 말사입니다. 주의할 것은 총본산-대본산-본산의 관계가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수평적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종단은 총본산이나 대본산, 본산과 관계없이 여러 본산들의 협의체로 운영되거나, 한 종단에 하나의 본산만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같은 종단에 두 개 이상의 본산이 있다면 그 위계가 대본산과 본산인 사찰이 있더라도 이것은 규모의 차이인 뿐 수직적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종파 설립이 자유로워져 기존에 말사로 있던 규모 있는 사찰들이 독립하여 본산이 되거나 심지어 종파를 만들어 총본산을 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본산 이상을 칭하는 사찰들은 일정한 규모를 가진 사찰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본산 외에 규모가 비교적 작거나 소속된 말사가 없지만 유서가 깊은 사찰들이 있습니다. 또 규모가 있지만 종교법인화가 된 것이 아니라 한 가문에서 대대로 물려받는 사찰이 있기도 합니다. 각 종파에서는 이를 따로 별격본산(別格本山)으로 지정합니다. 이들은 본산만큼의 위상을 지니며 종단 협의체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상당한 독립성을 보장받습니다.

 

오산십찰(五山十刹)

오산십찰제는 가마쿠라시대부터 시작된, 다섯 개의 사찰을 지정해 전국의 사찰을 관리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것은 중국 남송(南宋)의 예를 따른 것입니다. 전국을 통일하고 가마쿠라시대를 연 가마쿠라막부는 전국의 사찰을 관리하기 위해 교토와 가마쿠라에 각각 가장 높은 다섯 곳의 사찰과 그 뒤를 따르는 열 곳의 사찰을 정해 불교세력을 재정비하려 하였습니다. 이후로 각각 교토오산(京都五山)과 가마쿠라오산(鎌倉五山)이 성립해 천황과 쇼군이 인정한 가장 높은 사찰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각각 서일본과 동일본의 사찰을 관리했습니다. 또한 비구니 사찰만을 대상으로 한 니오산(尼五山)도 성립합니다.

문제는 이들 사찰이 모두 임제종이라는 특정 종단에 속한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무사계급은 헤이안시대 말기에 유입된 선종을 신봉했기에 임제종에 가장 큰 권한을 준 것입니다. 무로마치막부 때는 오산십찰의 선정과 그 주지 임면권을 쇼군이 행사하며 불교계를 통제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오산십찰제도는 정치권력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고, 정국의 변화에 따라 계속 바뀌어 왔습니다. 특히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들은 자신들이 세운 쇼코쿠지(相国寺)라는 사찰을 교토오산에 넣기 위해 난젠지(南禅寺)라는 사찰을 갑자기 신설한 별격상위(別格上位)라는 위계에 올려 놓았으며, 정적(政敵)이었던 고다이고천황이 후원한 다이토쿠지(大德寺)를 제외시키기도 합니다.

오산십찰은 임제종에 국한된 것이었기에 막부가 약해지는 시기에는 당연히 전국 사찰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사찰을 통제한다는 구상 자체는 계속 매력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전국시대에 각지에서 할거하던 무장들은 자신의 영지 내에 오산(五山)을 정하게 됩니다.

 

문적사원(門跡寺院)

문적사원은 황족이나 귀족(公家)이 대대로 사원의 주지(住職)가 되는 사원으로 매우 격이 높은 사원입니다. 일본어로 몬제키 혹은 몬세키라고 읽으며 일반적으로 사찰 이름 뒤에 문적이라는 단어를 붙여 표기하여(예를 들어 妙法院門跡) 사원의 위계를 보여줍니다. 황족이나 귀족이 문적사원의 주지를 맡을 때 주지의 명칭은 문적 혹은 문주(門主)라고 합니다.

헤이안시대 후기 상황(上皇)이 정국을 주도하는 원정기 당시에 천황위에서 물러난 상황은 일반적으로 어느 사찰에 출가하여 그곳을 거처로 삼고 법황(法皇)이라고 칭합니다. 이렇게 법황이 머무르던 사원에 우대를 해주고 그곳의 주지를 황족이나 그에 준하는 귀족으로 대대로 부임하게 해주었던 것이 문적사원의 시작입니다. 천황이나 황족이 머물렀던 사찰은 〇〇어소(御所)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황녀가 출가하는 비구니 문적사원도 있습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황족의 출가가 금지되어 지금은 황족이 주지가 되는 문적사원은 없습니다. 다만 문적사원이라는 명칭 자체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사찰은 황실에서 하사한 많은 유물이 남아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본산이 되거나 종단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탑두사원(塔頭寺院)

탑두사원이란 특히 선종계 사원에서 대사찰을 둘러쌓고 있는 작은 사찰들을 말합니다. 지금은 그 의미가 더욱 확대되어 대사찰 인근에 소속되어 있는 작은 사찰들을 가리키는 말로 더 확대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산내(山內) 암자(庵子)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본래 선종에서 주지를 은퇴한 승려는 다른 승방에서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선종사찰 역시 이러한 관습을 받아들였는데, 특히 고승이 죽은 후 그 승탑(僧塔)을 짓고 제자들이 수행하던 곳이 사찰로 성장하면서 탑두사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토 시내의 큰 선종사찰을 보며 수 십 개의 탑두사원이 본사를 둘러쌓아 마치 마을처럼 보이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다른 종파까지 확대되어 이제 거의 모든 종파의 대사찰에는 작은 탑두사원이 딸려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선종사찰의 경우 탑두사원은 작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주지의 임기가 정해져있고 일정한 경지에 오른 고승들만 주지에 오를 수 있는 특성 상, 이들이 물러나서 세운 탑두사원은 단순한 말사가 아니라 해당 사찰의 한 학파 내지 계파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탑두사원의 개조(開祖)가 되는 승려들의 제자들이 그 계파를 이어 본사의 주지를 번갈아 맡거나 합의에 의해 추대하기 때문에 중요한 탑두사원들은 본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향사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찰의 경우 아예 본사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제 행정은 몇 개의 탑두사원에서 전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분사(国分寺), 칙원사(勅願寺)

불교에 일본에 전래된 이후 사찰은 크게 관사(官寺)와 사사(私寺)로 나누어집니다. 사사(私寺)는 개인이나 씨족집단이 지은 것으로 특히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도래한 집단이 지은 씨사(氏寺 우지데라)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불교 공인 이후에는 국가에서 사찰 건립을 주도하는데 이를 관사(官寺)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관사로 백제대사(百濟大寺)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나라현 일대에만 몇몇 사찰이 남아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사찰이 주로 수도에 몰려 있었고, 몇몇 씨족에 자신의 영지에 지은 씨사가 있었을 뿐입니다.

아스카에서 나라로 천도한 쇼무천황(聖武天皇)은 불교에 크게 심취했는데, 이에 따라 전국의 백성에게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당시의 행정구역인 쿠니()마다 사찰을 짓게 합니다. 이것이 국분사(国分寺 고쿠분지)이며 비구니 사찰인 국분니사(国分尼寺)도 있었습니다. 전국 국분사의 중심이며 전국 사찰을 통솔하는 수도의 사찰이 바로 대불(大佛)이 있는 도다이지(東大寺)입니다. 국분사라는 이름의 사찰은 지금도 전국에 퍼져 있습니다.

한편 칙원사(勅願寺 쵸쿠간지)는 천황이나 상황의 발원으로 지어지는 사찰입니다. 이러한 사찰은 천황이나 상황으로부터 현판을 하사받는데 한국의 사액서원(賜額書院)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보통 칙원사들은 황실과 국가의 후원을 받기 때문에 대규모 사찰로 성장하며, 전국에 넓게 산재되어 있습니다.

 

3-4. 일본 사원의 가람배치

 

일본에는 수 만 곳의 사원이 존재합니다. 그만큼 사찰의 가람배치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이것을 일괄적으로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찰이 가진 기본적인 건물들과 종파별 특징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기본적인 틀 안에서도 지역과 위치, 종파에 따라 일본 사원의 가람배치는 매우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지고 펼쳐집니다. 이 장에서는 일본 사찰의 기본구조와 종파별 특징을 살펴보며 사찰 내부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반구조

일본의 사찰이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은 평지사찰이 많다는 것입니다. 선종이 주를 이루고, 또 조선초기 평지사찰이 대부분 정리된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사찰은 사람과 접하기 쉬운 평지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산악신앙이 강하여 유명한 산악사원도 많지만 본산(本山) 이상 급의 대찰은 주로 평지사찰인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의 가람배치도 평지사찰을 염두에 두고 짜여 졌습니다. 이런 점은 한국과 일본 사원의 결정적 차이입니다.

사찰은 다음의 기본적인 3가지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신앙의 공간입니다. , 보살을 모시고 각종 의식을 행하는 공간입니다. 두 번째는 수행의 공간입니다. 승려가 참선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또 대중들이 설법을 듣는 공간입니다. 세 번째는 생활의 공간입니다. 승려도 사람인만큼 먹고 자는 공간은 중요합니다. 불교에서는 먹고, 자고, 씻고, 심지어 배설하는 것도 수행의 일환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이러한 생활의 공간도 반쯤은 공()적인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신앙의 공간으로는 가장 중요한 본당(本堂)이 있습니다. 사찰의 중심이 되는 이 건물을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대웅전(大雄殿)이라 하거나 본존불의 종류에 따라 대적광전, 극락전 등으로 칭하지만 일본에서는 대부분 본당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는 금당(金堂)이라고 하거나 불전(佛殿)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당과 금당이 둘 다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당 내부는 두 가지 공간으로 나누어집니다. 내진(內陣)과 외진(外陣)이 그것입니다. 내진은 신앙의 대상을 모신 공간으로 신성한 공간이며 승려를 비롯한 소수의 인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외진은 참배의 공간으로 일반적인 대중들이 참배를 하는 공간입니다. 초기에는 불상이 있는 본당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는 제한하다가 이후 건물을 증축하면서 내진과 외진을 구분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본당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속건물은 관음당(観音堂), 아미타당(阿弥陀堂), 태자당(太子堂), 부동당(不動堂) 등 모시는 대상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탑()이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탑의 위치는 변하고, 모든 사찰마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탑은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한국과 다른 것은 사찰이나 사찰이 속한 종단의 개조(開祖)를 모시는 건물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종단의 개조를 모시는 곳을 보통 어영당(御影堂)이라고 하며, 사찰을 창건한 스님을 모시는 곳은 개산당(開山堂)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이런 건물이 본당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일본 사찰에만 있는 건물은 오쿠노인(奥院)이 있습니다. 오원(奥院)이라고 쓰지만 실제 읽을 때는 오쿠노인(, )으로 읽습니다. 오쿠노인은 주로 산악사원에 많이 있는데 본당과 떨어져 아주 깊숙한 곳에 위치한 신앙공간을 일컫습니다. 건물 안에 있는 신앙의 대상은 사찰의 창건주나 불, 보살, 또는 산신 등 다채롭습니다.

두 번째 수행의 공간으로는 강당(講堂)이나 법당(法堂), 방장(方丈)과 서원(書院)이 있습니다. 강당이나 법당이 고승의 설법을 듣는 곳이라면 방장(方丈)이나 서원(書院)은 참선을 하는 곳입니다. 특히 서원이 한국에서는 유학자들의 신앙과 수학의 공간이라면 일본에서는 정원을 갖춘 수행의 장소를 의미하며 외부인을 접견하기 위한 공간을 뜻하기도 합니다. 방장과 서원은 수행과 동시에 접견의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별도의 문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천황이나 황족, 쇼군 등이 보낸 사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화려한 장식을 한 문인 칙사문(勅使門)이나 당문(唐門)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인물만이 들어갈 수 있는 현관(玄關)을 갖추고 있습니다.

세 번째 생활의 공간으로는 고리(庫裏)가 있습니다. 한국에는 없는 매우 생소한 이 건물은 부엌을 기본으로 하여 승려들이 먹고 자는 공간입니다. 대부분 수행의 공간인 방장, 서원과 연결되어 있으며 신앙의 공간과는 단절되어 있습니다. 고리에 있는 문은 속세와의 단절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속세와의 유일한 연결통로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관람객들은 대부분 고리를 통해 방장과 서원, 그리고 거기에 속한 정원을 관람합니다.

고리와는 별도로 식당(食堂)이라는 건물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식당은 주로 선종이 들어오기 이전에 성립된 나라불교와 진언종, 천태종 사찰에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식당은 식사를 일종의 의식으로 치루는 곳이며 본당-강당과 일직선상에 위치한 신앙의 공간에 속합니다. 선종이 등장하고 선종식의 가람배치가 보편화되면서 독립된 식당이라는 건물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승려의 생활과 관련되는 공간으로는 또한 욕실(浴室)과 동사(東司)가 있습니다. 욕실은 보통의 대중탕 같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우나입니다. 안에는 물을 끓이는 공간과, 그 증기를 통해 사우나를 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목욕 역시 수행의 일부로 여겨졌기에 사찰의 욕실은 신앙의 구역인 공개적인 곳에 있습니다. 동사는 화장실입니다. 선종에서는 역시 배설 또한 수행의 일부로 중요한 건축에 속합니다.

이 밖에 사원의 출입구인 문과 종을 보관하는 종루(鐘楼), 경전을 보관하는 경장(経蔵)이 있습니다. 문은 간략한 형식의 표문(表門), 인왕상을 모신 인왕문(仁王門), 2층의 누각으로 3칸의 문이 있는 삼문(三門) 등이 있습니다. 일본의 종은 작기 때문에 대부분 2층으로 지어지며 더 작은 절은 사방이 뚤린 작은 정자 같은 건물에 종만 매달아 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경장에는 말 그대로 인쇄된 경전이 보관되는데 우리나라의 대장경(大藏經)에 해당하는 일체경(一切經)을 보관합니다. 또한 사찰의 보물을 보관하는 보장(寶藏)이라는 창고도 있습니다.

이상이 아주 일반적인 일본 사원에 있는 건물입니다. 큰 사찰은 이러한 건물이 모두 있기도 하지만 작은 사찰은 한 두 채의 건물이 모든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지역에 따라, 지어진 시대와 속한 종파에 따라 매우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나라에 가면 사찰에서 정원을 보기 힘들지만 반면 교토에는 온통 정원을 보러 사찰을 돌아다니고 시가현이나 나라현 남부에는 산악사찰이 많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가람배치 양식을 보이지만 아래에서는 주로 종파에 따라 일본의 가람배치를 나누어보면서 각각의 종단에서만 보이는 특색 있는 가람배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라불교 사원

나라에는 앞서 언급한대로 남도육종이라고 하는 나라시대의 고대 불교 사찰이 다수 남아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불교가 전래될 때 처음 전해졌던 중국과 한반도의 가람배치도 나라와 아스카 같은 고대 사찰에 남아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반도 고대 국가와 일본의 교류사를 연구하기도 합니다.

나라불교에 속하는 사원 가람배치의 특징은 대도시 중심에 위치한 평지사찰이라는 것입니다. 크기도 대부분 대규모에 속합니다. 이들 사찰은 후지와라씨 등 거대한 세력을 가진 호족, 귀족들의 씨사(氏寺 우지데라)이거나 국가에서 만든 관사(官寺)입니다. 대부분 천황이나 귀족을 중심으로 신앙행위가 이루어지는 사찰이기 때문에 도시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화엄종이나 법상종 등에 신앙적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나라불교 사원은 탑과 금당을 중심에 둔 채, 이를 둘러싼 회랑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금당 뒤에 강당을 두는 경우도 있으며 회랑 구역 밖에는 승방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구도는 왕이 사는 궁궐과 비슷합니다. 나라불교식 가람배치는 탑과 금당, 강당의 배치에 따라 여러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반도의 삼국과 중국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온 여러 형태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초기에는 탑을 중요시하거나 적어도 탑과 금당을 동일선상에 두다가 시기가 갈수록 금당의 중요성이 강해지면서 탑의 개수도 두 개로 늘어나는 쌍탑 가람이 생긴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진언종계 사원

헤이안시대에 진언종과 천태종이 일본에 전래되면서 일본의 가람배치도 좀 더 변화를 겪게 됩니다. 먼저 불교가 널리 퍼지게 되면서 불교세력 자체나 민간에서 세우는 사찰이 늘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의 개수는 늘어나고 크기는 대체적으로 작아집니다.

사찰마다 차이는 있지만 나라시대와 같은 회랑을 갖춘 사원은 점차 사라집니다. 또한 탑 역시 중심에서 측면으로 비껴나가게 됩니다. 이제 신앙의 대상은 탑에서 불상을 모신 본당으로 완전히 교체됩니다. 또한 밀교의 다양한 존상들이 들어오면서 부동당(不動堂) 등 이들은 모신 다양한 건물이 들어서게 되고, 구카이(空海) 자체를 모시는 신앙이 발달하면서 어영당(御影堂), 대사당(大師堂) 등의 건물도 들어서게 됩니다.

진언종계 사찰의 가장 큰 특징은 다보탑()의 등장입니다. 구카이가 당나라에서 들여온 다보탑은 2층탑으로 1층은 정사각형, 2층은 원형으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안에는 진언종의 만다라에 의거한 5대 여래를 모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보탑은 법화경에 등장하는 탑인데, 석가여래가 설법을 하자 다보여래가 탑에 앉을 채로 땅속에서 솟아나 이를 찬탄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구카이는 귀국 후 진언종의 중심지인 고야산(高野山)에 거대한 다보탑을 세우고 근본대탑(根本大塔)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후 진언종계 사찰뿐만 아니라 여러 종단의 사찰에 다보탑이 세워지게 됩니다.


다보탑

천태종계 사원

진언종과 조금 일찍 들어온 천태종계의 사찰들도 진언종계 사원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규모가 축소되고 회랑이 생략되며 여러 가지 존상을 모신 건물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천태종계 사찰이 다른 종단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는 건물은 법화당(法華堂)과 상행당(常行堂)입니다. 천태종에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여 수행하는 방법으로 법화삼매(法華三昧)와 상행삼매(法華三昧)가 있는데, 법화삼매는 37일간 법화경을 독경하는 수행이고, 상행삼매는 90일간 아미타불을 가운데 두고 불상을 돌며 염불을 외우는 수행방법입니다. 이 두가지 수행을 하기 위해 본당 앞, 혹은 옆에 똑같은 모습을 한 법화당과 상행당을 나란히 지어 놓는 것은 천태종계 사찰에서만 살펴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천태종의 법화당과 상행당


고대 정토신앙계 사원

종파와 관계없이 헤이안시대 말기에는 석가모니 사후 1500년이 도래하면서 세계가 멸망하고 모든 불법(佛法)이 소멸한다는 말법(末法)신앙이 성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말법을 피해 극락세계에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아미타신앙(정토신앙)이 유행하게 됩니다. 특히 교토의 귀족들은 자신의 별장이나 저택을 불교계에 희사하여 사찰로 바꾸는 인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헤이안시대 후기 생겨난 정토신앙 계통의 사원은 대부분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는 아미타당이나 정토당을 중심으로 건물 앞에 연못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이 연못은 아미타여래의 첫 글자인 아()자를 형상화한 것이며, 연못을 중심으로 불전이 놓인 극락세계와 번뇌가 존재하는 사바세계를 분리해 놓았음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정토당은 일정한 유형을 띄게 됩니다. 아미타불을 모신 정토당은 경우에 따라 연못은 없더라도, 정사각형으로 건물을 짓는 것이 정형화 됩니다. 정사각형의 건물은 기둥을 통해 두 부분으로 나뉘면 안쪽에는 불상을 모시고 바깥쪽은 신자들이 건물내부를 돌며 참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중세 정토종계 사원

헤이안시대의 아미타신앙과는 별도로 가마쿠라시대 초기에 번창했던 염불신앙은 정토종, 정토진종, 시종, 융통염불종 등 많은 정토종계 종단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들 종단의 가람배치는 바로 위의 고대 정토신앙계 사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아래에 설명할 선종계 사원과 함께 정토종계 사원은 고대와는 다른 중세의 가람배치를 주도해 나갑니다.

무사와 상인계층을 배경으로 하는 정토종은 자신들의 개조(開祖)인 호넨(法然)을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기고 호넨을 모신 어영당을 곧 본당과 동일시 여깁니다. 이후 지역 무사와, 에도막부의 후원을 받은 정토종은 거대한 어영당을 지어 본당으로 삼고, 주변에 부속건물로 아미타당, 관음당 등등을 배치합니다. 한편으로는 선종계의 사원의 양식을 받아들여 승려들이 수행하는 방장과 정원을 본당 뒤에 배치합니다.

정토종에서 갈라져 나온 정토진종은 더욱 독특한 가람배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정토진종의 본산급 사찰은 건물의 크기를 매우 거대하게 짓습니다. 이는 유난히 하급무사와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던 정토진종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토진종 또한 자신들의 개조인 신란(親鸞)을 아미타불의 화신과 동일시 여기며 거대한 어영당을 짓고 본당으로 삼습니다. 특이한 점은 어영당 옆에 역시 거대한 크기의 아미타당을 짓고 이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한다는 것입니다. 어영당(본당)과 아미타당의 병렬적 배치야말로 정토진종계 사원이 가진 가장 특이한 점입니다.

 


선종계 사원

앞서 설명한 여러 종단의 가람배치는 모두 특색이 있지만, 사실 가람배치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온 것은 선종의 유입입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선종 사찰은 일본 불교의 개념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선종계 사원은 기본적으로 일곱 가지의 건물을 갖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칠당가람(七堂伽藍)입니다. 먼저 사찰 입구에는 삼문(三門)을 배치합니다. 삼문은 2층의 거대한 문으로 가운데 3칸의 문이 있는데 이는 불교에서 가장 멀리해야 할 탐(탐욕), (, 진노), (무지)3가지 번뇌에서 해탈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문과 일직 선상에는 석가여래를 모신 불전(佛殿)과 설법을 위한 법당(法堂)을 차례로 배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직선상의 배치 좌우로 선당(禪堂), 욕실(浴室), 동사(東司), 경장(經藏)을 두고 뒤로는 생활공간인 고리(庫裡)를 놓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삼문, 불전, 법당, 선당, 욕실, 동사, 고리를 칠당가람이라고 하지만 변화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선당은 방장(方丈)으로 바뀌어 고리와 함께 법당 뒤편에 자리 잡게 되고, 동사 대신 경장을 칠당가람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쨌든 칠당가람은 선종계 사찰의 기본적인 구도를 이루게 됩니다.

칠당가람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본사를 둘러싸고 역대 주직(住職)과 그 제자들이 구성한 탑두사원들이 위치해 있습니다. 많으면 수 십 개에 이르는 이 탑두사원들은 앞서 말했듯이 오히려 본사를 압도하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교토의 선종사찰들은 이 많은 탑두사원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어 마치 하나의 도시를 이룬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탑두사원이 본사의 삼문 밖까지 넓게 분포해 있기 때문에 사찰의 입구를 알리는 문이 따로 존재합니다. 이를 총문(総門) 혹은 표문(表門)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탑두사원은 선종계 사찰뿐만 아니라 다른 종단의 사찰에까지 번지게 됩니다.

선종사찰이 가져온 또 하나의 변화는 바로 정원입니다. 헤이안시대에도 이미 귀족적인 정원이 사찰에 존재했던 경우가 있었지만 이것이 본격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종에서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정원을 바라보는 좌선(坐禪)과 다도(茶道)가 적극 도입되면서 작은 탑두사찰에도 정원이 도입됩니다. 참선을 하는 공간인 방장에는 사방에 정원이 배치되고, 정원을 바라보며 선정에 잠기는 문화와 다도를 즐기는 문화가 일본 전역에 확대된 것입니다. 선종의 도입은 불교의 사상면에서뿐만 아니라 건축과 미술, 그리고 무사계급의 취미에까지 영향을 미친 거대한 물결이었습니다.

 

삼문(三門)


가장 많은 탑두사원을 지닌 묘신지(妙心寺)의 지도


일련종계 사원

가마쿠라 신불교의 일종인 일련종 역시 고유의 가람배치 방식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일련종은 오랫동안 정권의 탄압을 받고 상인이나 무사계급의 후원으로 명맥을 이어나갔습니다. 때문에 이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도시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운데에는 중심이 되는 법화당(法華堂)을 본당으로 삼아 배치하는데, 이 본당의 위상은 절대적 우위를 지닙니다. 그 좌우에는 가람을 지키는 여러 신과 불, 보살을 모시는 작은 건물을 배치하는데, 의식이 주로 본당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다른 종단과 구분됩니다. 또한 선종계 사원의 양식을 수용해 사찰 주위에 작은 탑두사원들을 두는데, 선종계와는 달리 일련종의 탑두사원은 스님들을 묵게 하는 숙방(宿坊)이며, 본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기 때문에 크기도 매우 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