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3일 고쿄 히가시교엔皇居東御苑1, 산노마루쇼조칸三の丸尚蔵館1

同黎 2019. 1. 20. 03:54



3일째 아침

오늘은 교토로 이동하기 전 그동안 찾지 못했던 과거 에도성 주변의 답사지를 찾아간다.

가장 먼저 과거 에도성 혼마루였던 고쿄(황거) 히가시교엔을 간다.

입구는 산노마루 오테몬


멀리 경시청 등이 보인다.


해자 주변의 도로


히가시교엔의 정문인 산노마루 오테몬

에도성에서 쇼군이 물러나고 메이지천황이 입주한 후 황실은 니시노마루로 간다. 혼마루 어전은 이미

18~19세기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던 중 사라졌고, 니시노마루 어전이 19세기에 실질적 어전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니시노마루 어전을 개조하여 메이지유신 이후 첫 궁전인 메이지궁전이 지어진다. 

2차 세계대전으로 에도성이 박살난 이후 60년대에 황거가 현대식으로 재건되면서 니시노마루 일대는

천황과 황후가 거주하는 황거(고쿄)가 되고 혼마루와 산노마루는 거대한 공원인 히가시교엔으로,

기타노마루는 완전 공원으로, 니시노마루 앞 광장은 고쿄 가이엔공원으로 나뉘어져서 현재에 이른다.

현재의 오테몬은 재건된 것이다.

내외로 36동에 이르던 성문은 폭격으로 거의 소실되고 사쿠라다몬, 야스다몬, 시미즈몬의 3동만 국가로

이관되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도합 46동에 이르던 야구라 역시 거의 사라져 3동만 남았고 마저

관동대지진으로 대파된 것을 수리한 것이다. 야구라는 전체 궁내청의 관리 하에 놓여있다. 그 외에

메이지 초기에 재건한 다몬야구라와 3개의 번소, 천수각이 있던 천수대가 이 히가시교엔에 현존한다.


입장 무료라는 안내판


오테몬으로 들어간다.


안내판


거대한 해자


고려문 형식의 외문


석축 하나는 대단하게 남아있다.


내외문 사이의 공간


야구로몬 형태의 내문


전쟁 이전의 사진이 붙어있다.


샤치


안에서 바라본 오테몬 외문

좌우로는 빌딩이 위압적으로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갈 때는 짐과 몸 수색을 한다.

뭐 빡세진 않다.


입원표

이렇게 입구에서 입원표를 받고 나갈 때 다시 제출한다.

오늘 같은 날은 별 문제가 없지만 단풍이나 사쿠라가 피는 철에는 사람이 많아 인원제한이 있다고


들어가자마자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인 산노마루쇼조칸(산노마루상장관, 三の丸尚蔵館)이 있다.

궁내청 소장의 유물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으로 상설전시는 없고 그때 그때 전시품이 바뀐다.

황실 유물을 전시하는 곳치고는 매우 작은 규모이다. 최근 기사를 보니 일본에서 새로 걷는 출국세로

이 건물을 7~8배로 확대 재건축한다고 하는데, 건물의 리모델링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세금은

관광객 때문에 미칠 것 같아하는 교토시나 가마쿠라시에 돌아가야 하지 않나...

그 돈으로 교토 버스랑 에노덴 편수를 2배로 증가시켜줘야 할 것 같다.


구, 현 황실 소유 문화재는 아주 역사가 복잡하다.

전쟁 이전까지는 도쿄, 교토, 나라의 국립박물관이 모두 제실박물관으로 국유재산과 황실재산의 구분이

모호했다. 이것들을 모두 어물(御物)이라고 불렀다고... 근대 박물관을 박람회(공진회)를 통한 수집과 황실의

은혜에 따른 공개라는 개념으로 만들었던 일본의 특징이다. 호류지헌납보물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호류지가 천황에게 문화재를 헌납하고 천황이 궁내성에서 돈을 내려주고 유물은 도쿄박물관에

전시하는 형태였다. 호류지헌납보물의 90%는 국유화되었으나 일부는 어물로 전해진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나면서 황실재산법이 제정되고 국유재산과 황실재산의 구분이 명확해진다.

제실박물관은 국립박물관으로 독립해 국가기관이 되었고, 도쿄 고쿄와 동궁어소 및 황족들이

사는 어용저와 어용지, 교토의 교토고쇼 및 각종 고쇼와 리큐, 전국에 산재한 황실의 능묘 

능묘 추정지가 모두 궁내청 관리의 국유재산이 되었다. 동시에 황실 소장품 중 상당수와

황실 소장 서적 및 황실 능묘 출토품, 교토 각 궁의 전래품, 정창원 보물 등도

국유화되는데 이들 역시 국유재산으로 분류되고 궁내청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다만 예외도 인정되는데 삼종신기와 기타 황위 계승과 관련된 중요 유물, 의식에 사용된 검과

황실과 관계가 깊은 유물(호류지헌납보물 중 쇼토쿠태자와 관련이 깊은 것들 일부 포함),

역대 천황 및 황족의 초상과 유필, 기타 명백히 천황 개인의 물건인 듯한 것들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어유서물(御由緒物)이라고 분류되고 지금은 흔히 어물(御物)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1989년 쇼와천황이 사망하자 전후 황실의 상속문제가 생겼는데 이에 대한 논의 결과 황실재산에

대한 상속세는 부여하지 않지만 대신 산노마루쇼조칸이라는 궁내청 산하의 박물관을 세우고 그 곳에

주요 문화재를 기증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약 6천여 점이 최초로 기증되었고 그 후 사망한 여타 황족들의

유품 및 기증품과 외교관계에서 받은 선물 등이 추가되어 현재 약 1만여 점의 소장품을 지니고 있다.

 

황실재산 및 궁내청 산하 재산은 궁내청 각 부국에서 관리하는데, 삼종신기와 어물 및 도쿄 고쿄의

야마자토어문고, 교토 고쇼의 히가시야마어문고에 소장 중인 천황의 초상와 유묵, 정창원 보물 중 황실과

관련이 깊어 국유화가 안된 채 정창원 서보고에 따로 보관된 유물 등은 궁내청 시종직에서 관리한다.

이 두 곳의 문고와 문고에 딸린 보검 창고는 시종직의 직접 관할이다.

여타 고문서와 전적 및 능묘 출토품은 궁내청 서릉부, 교토의 각 궁 전래품은 궁내청 교토사무소,

정창원 보물은 궁내청 정창원사무소, 쇼와천황 이후의 기증, 전래품은 산노마루 상장관에서 관리한다.


내가 갔을 때는 고대 유물들을 전시하는 중이었다.

상설전이 없고 그때 그때 기획전만 있으며 휴관일 때도 많다.


간단히 어물과 서릉부 소장 주요 유물을 살펴보고 산노마루쇼조칸 소장품을 다음 장에서 살펴본다.


어물 석기

이시카와현에서 출토된 조몬시대의 석기로 용도는 불명

이와 비슷한 석기가 나중에 많이 출토되는데 어물형 석기라고 불린다.

생각보다 매우 큰데 어른 팔뚝만하다.


나라현 텐리시 이소노카미 출토 동탁

고훈시대


가옥문경

나라현 카와이쵸 사미다타카라즈카고분 출토


직과문경

나라현 고료쵸 신야마고분 출토


삼각연삼신이수박산로경

나라현 카와이쵸 사미다타카라즈카고분 출토


삼각연사신사수경

나라현 고료쵸 신야마고분 출토


삼각연용호문경

군마현 토미오카시 키타야마고분 출토


여성형 하니와

오사카부 사카이시 닌토쿠천황릉 출토


금동제사환호

나라현 카시하라시 카시하라궁터 출토

아스카~나라시대

초대 진무천황의 궁터라고 전하는 곳에서 출토


현성표호

중국 당나라

호류지헌납보물. 쇼토쿠천황 소지품으로 전래


갑옷모양 인형

헤이안시대 후기

호류지헌납보물, 쇼토쿠천황 소지품으로 전래


그 유명한 쇼토쿠태자 초상

호류지헌납보물로 백제 아좌태자가 그린 것으로 전한다.

단순한 중국 인물화라는 의견도


법화경소

호류지헌납보물

쇼토쿠태자가 직접 주를 달았다는 법화경, 승만경, 유마경의 삼경의소 중 하나로

그 중 승만경과 유마경소는 후대의 사본이지만 법화경소는 태자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진품 여부는 논란이 있다.


왕희지필 상란첩

왕희지의 친필은 아니고(친필은 모두 당태종이 자기의 무덤으로 끌고 들어가 없다)

쌍구본이라고 해서 친필의 본을 따서 메꾼 것인데, 매우 잘 만들어진 쌍구본으로 당나라 때의 것이다.

왕희지가 전란으로 자신의 조상묘가 피폐해진 것을 한탄하는 편지이며

최소 간무천황 때에는 일본에 전래된 것으로 전한다.


이세모노가타리회권 단간

후시미천황 친필


후시미천황 편지

가마쿠라시대


고미즈노오천황 친필 와카


마키에 연상, 연대

모모야마시대

황실 전래품


이세모노가타리도패통 및 합패

커다란 백합조개로 짝을 맞추며 노는 일본 전통 놀이기구

에도시대, 황실 전래품


우지가와마키에연상

에도시대

황실 전래


국화문마키에십종향상

에도시대


송죽문마키에십종향상

에도시대


태도 명 코쿠에이 명물 츠루마루

헤이안시대의 명도로 아다치씨-호조씨를 거쳐 오다 노부나가가 소유

이후 다테씨에서 메이지천황에게 헌납하여 황실로 이동했다.

정월 초하루의 궁중제사인 세단제에서 쓰였던 것이다.


단도 명 요시미츠 명물 히라노 토시로

가마쿠라시대 아와타구치파의 작품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마에다 토시나가에게 배령,

이후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헌상되었다가 마에다가에 반환, 이후 메이지천황에게 헌상되었다.

각종 궁중제사에서 황후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태도 명 노리무네

가마쿠라시대 비젠노쿠니의 작품으로 역시 궁중제사에 이용되던 검이다.

 

태도 명 일 명물 도요이치몬지

가마쿠라시대의 명도로 에치젠 마츠다이라가와 오와리 도쿠가와가를 거쳐 쇼와천황에게 헌상


이토내친왕원문 전 타치바나노 하야나리 필

이 사람은 구카이, 사가천황과 함께 일본 3대 명필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헤이안시대


손과정서보 단간

구카이 필

헤이안시대


카츠라노미야본 만요슈(만엽집)

만엽집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헤이안시대의 것이다.


춘일권현험기

가스가대사의 가스가곤겐의 이야기를 그린 가마쿠라시대의 작품으로 일본 에마키 중 대표작이다.



회사초지

가마쿠라시대

화가의 일하는 모습과 일상을 그린 에마키


그 유명한 몽고습래회사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공을 그린 그림이다. 가마쿠라시대


천자섭관어영

가마쿠라~남북조시대

역대 천황과 상황 및 섭정, 관백을 그린 그림으로 이것은 천자권이다.

토바천황부터 시작한다.



후시미천황의 친필

가마쿠라시대


하나조노천황의 친필

가마쿠라시대



고콘천황의 친필

아래는 북조 혈통을 잇는 후시미노미야 사다후사 친왕의 일기인 간문일기

무로마치시대 초기의 귀중한 기록


어즉위행행도병풍

에도시대

교토고쇼의 모습이 보인다.


관영행행도권

에도시대


금기서화도병풍

에도시대, 교토사무소 소장

이제 산노마루쇼조칸 소장품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