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을 보내며

同黎 2018. 7. 25. 04:03

 노회찬은 어떤 사람인가? 삼선 국회의원이고 의석 10개가 안되는 작은 정당의 원내대표이다. 그리고 최근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다한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인기도 없고 흠결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은 그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가? 그리고 정의당에 냉소적이던 나마저 왜 이렇게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슬프할까? 어느덧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 그리고 거리를 유지하려던 나마저 그의 진보정치에 많은 기대를 걸었고 그만큼 의지했던 것 같다. 그의 죽음이 전해진 아침 내내 멍했고, 그날 밤 결국 혼자 깡소주를 한잔 해야 가슴속에 이는 불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겠다.


 사실 나는 노회찬과 그의 정치 행보에 대해서 그리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이 무려 10석의 의석을 가지고 국회에 진입했을 시, 그에 거는 기대는 대단히 높았다. 이후 민주노동당이 무너지고 갈라지는 과정에서도 새롭게 생긴 진보신당이 희망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비록 스스로 정당운동에서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는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제도권 정치에서 그들만이 그나마 제대로 된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 기대가 무너진 것은 진보신당 탈당과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였다. 지금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그 당시 진보신당 탈당은 결국 총선 낙선 이후에 만연한 패배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난 5년간 그렇게 싸웠던 노무현 정부의 핵심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과연 진보정당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가, 민중운동판, 학생운동판에서 난동을 피었던 이들과 어차피 노무현의 후계자가 나타나면 거기로 갈 사람들을 데리고 함께하자고 같은 길을 달려왔던 이들을 버릴 수 있는가 용서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통진당이 해체될 당시 냉소를 보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총선 낙선 이후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이 보인 노선에 실망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민주당계 정치인들은 진보정당에서 손을 뻣으며 우향우하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이들이 대중운동의 동력을 갉아먹었다는 점이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 한미FTA 반대 집회, 철도노조 파업, 그 이후 박근혜 탄핵 집회에 이르기 까지 대중적으로 폭팔했던 운동의 열기를 투표로 환원시키는데 집중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거리에 나온 이들의 동력을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우리가 당신들의 요구를 들어줄테니 표를 달라고 하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대중의 동력을 자신들의 정치공학과 당내 사정으로 말아먹기도 하였고, 정치효용감이라는 단어로 몇몇 스타들을 만들어 투쟁의 결과를 독식하려 하였다. 4.19 혁명 당시 민주당 정권이 내세운 "혁명의 정치개혁을 비혁명적 방식으로 해결한다"라는 구호를 70년간 이어온 것이다. 나의 의심은 통진당과 정의당이 이러한 대열에 합류하여 직접 민주주의를 배신하고 의회정치에 골몰하는 방식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제와 돌이키건데 나의 의심과 냉소는 절반만 맞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중운동과 현실 정치를 해야 하는 정당간의 간극이었고 어느 것이 맞다고 칼로 무 자르듯 결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쨋든 노회찬과 정의당은 여론 속에 노동자의 문제, 농민의 문제, 장애인의 문제, 여성의 문제, 이주민의 문제, 성서오자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였고, 만약 국회 안에 그 작은 정당과 적은 수의 국회의원이라도 없었더라면 우리는 사회에 약자와 외면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알릴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만큼 그와 그의 정당에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는 그의 앞에서 그와 그의 당에게 날렸던 냉소와 의심에 대해서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법은 달라도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는 것을 그를 떠나보낸 이후에야 어리석게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나는 얼마나 좌익 소아병에 걸려있었나? 운동 현장을 떠나 책상 앞에 앉은 강단좌파가 고작 할 수 있는 말은 그런 것 따위였다. 실제 지역에서, 여의도에서 목소리를 내고 조직을 규합해가는 것은 어떤 것일까? 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이미 기득권이 되어 운동 일선에서 퇴장한 마당에서, 과거의 조직적 운동을 접하지 않은 시민들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것은 어떠해야 하는가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고생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리고 노회찬은 변절하고 배부른 자신의 옛 동지들이 가던 길, 적당히 배부르고 적당히 힘든 그 길을 굳이 마다하고, 또 자신을 개량이라고 비난하던 또 다른 옛 동지들과 다른 길을 갔다. 진보정당이 권력을 잡기 위한 보이지도 않았던 그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는 그 한점만으로도 노회찬은 이렇게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김규항은 노무현을 떠나보내며 그의 죽음을 무사의 죽음이라고 하였다. 나는 노회찬의 죽음이야 말로 무사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사천만원,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돈. 그러나 삼성이라는 재벌에 의해서 강제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언제 다시 정계에 복귀할지 기약도 없지만 그러나 그가 가진 상징성 때문에 정치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의 생계에는 적지 않은 돈. 자신과 가족의 생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당과 보좌진까지 챙겨하 하는 사람이게 필요한 돈. 그 단돈 사천만원. 가만히 앉아서 몇번의 포토라인만 참으면 다음 총선까지 판결이 안날수도 혹은 고작 벌금 얼마로 끝날 수도 있는 그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를 얼마나 괴롭혔을까? 미국에서 돌아와 유서 몇자를 적고 아파트위에 올라 아무런 변명로 하지 않고 몸을 던졌을 그의 심경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의 죽음 앞에 찝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적 치부도 아닌 것이 분명한 그 돈, 좀 받았다고 추모의 뒷글자에 사족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로 인해 우리가 받은 것과 그가 사천만원을 받았다는 그 찝찝함, 그것을 비교해보면 어떤 것이 더 클까? 우리도 때로는 우리편 편 좀 들어주자. 우리의 엄격한 잣대만 아니었으면 그가 적어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지 않았을까? 정치는 하지 않더라도 어디 시골에라도 내려가 텃밭이나 가꾸면서 늘그막을 보내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움이 더해진다. 다음 한번만 전 생애를 진보정치에 바친 사람이 있다면 편 좀 들어주자. 그에 대한 추모에 사족을 덧붙이지 말자.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