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2차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4일 공왕부恭王府1

同黎 2020. 9. 24. 22:35



이제 바로 걸어 공왕부로 간다


가는 길에 만난 한국식당


중국인이 하는 곳이어서 번역도 엉터리였으나 너무 한식에 목이 말랐다


기대중


비빔밥


맛있다


냉면


드디어 공왕부 도착


공왕부(恭王府)는 함풍제의 아들이자 동치제의 동생인 공친왕 혁흔의 왕부이다.

본래 이 자리는 오래된 사찰이 있었으나 청나라 때 이미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풍수지리가 좋다는 소문이 나자 건륭제가 이곳을 비싸게 사들어 저택을 지었다. 이후 권신 화신의 아들과 건륭제의 딸 고륜화효공주가 결혼하자 화씨 일가에게 이 집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가경제는 화신을 자결시키고 화효공주에게 저택 일부만 넘겨준 뒤 이 곳을 자신의 동생인 경희친왕 영린의 왕부로 삼았다. 그리고 그 손자인 경신왕 혁광에 이르기까지 경친왕부가 되었다

이후 함풍제 때 이곳을 공친왕 혁흔이 주인이 되어 공왕부가 되었다. 공친왕 혁흔은 동치중흥을 이끌었으나 청나라가 무너진 후 그 후손들은 이곳을 천주교에 저당잡혔다가 넘겨주어 보인대학이 되었고 이후 여학생학당으로 사용되다가 신중국 이후 공안부 숙소, 음악원 등 다른 용도로 삼았다. 면적이 6만 평방비터가 넘는 이 거대한 저택은 80년대 이후 8구역으로 나누어져 무려 200가구가 살다가 88년부터 복원되기 시작하여 이 집들을 모두 이사보내고 현재 보수공사 후 전면 개방되었다. 

 

넓은 광장


어마어마한 사람들


기념사진 찍는 중


표를 사고


정문으로 들어간다


공왕부라는 현판이 보인다


이 때까지는 공왕부의 무서움을 생각도 못했다


충격과 공포의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문을 하나 더 지나면


왕부의 정전인 은안전이 나온다

일종의 정청인데 현재의 건물은 민국 초기에 불탄 것을 재건한 것이다


사합원이 9개가 붙어 있는 형식으로 이러한 정전이 9개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공포..


은안전 안내문


안에는 청대왕부문화전이 진행중


공왕부 모형

엄청 크다.

현재 곽말약 고거도 과거 공왕부의 일부라니 완전 복원이 안된 것 같다


청말기의 주요 왕부들의 위치


경친왕?


공친왕 혁흔


순친왕?


청대의 봉작제도


혁흔의 상유서


초상화


솜씨가 별로...


친왕의 조복


팔기군 양황기의 갑주


공친왕이 그려진 그림


도광제의 밀서


황족들의 초상


예친왕 대선의 초상


친왕용 용보


과친왕 윤례의 초상


공왕부 건물의 치미


녹유 기와들


서양식 시계


화려한 것도 많다


역시 친왕의 초상


신패


예친왕 인장


공친왕부도


감국섭정왕보


선통제의 아버지인 순친왕이 사용하던 것이다


이제 다음 안쪽으로 간다


가락당

화신 시기에 지어진 건물로 제사용 건물로 쓰였다


내부에서는 전시가 진행 중


발굴과 정비에 관한 전시


발굴품들


생활용기도 있고 청동기도 보인다


청화백자들


완상품들


가구


도자기가 많다


청말 분채


비연호들



생활용구


숟가락


도자기가 많다


자사호도 보인다


벼루와 상아 필통


별루도 많다


부채


책봉교서


오색비단으로 된 것은 조선과 비슷


끝부분


연상과 벼루, 인재


이제 옆으로 간다

사진재


여기는 불교 용구들이 전시중


불상과 탕카


옆에도 마찬가지


도교식 신상도 보인다


끝도 없는 탕카들


불구류


티벳불상들


가구


총도 보인다


단도


장신구와 금


옥기


화폐들


닫혀 있는 측면의 문


이제 아래쪽 보광실 방향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