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원생의 일상 11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의 구속에 부쳐

(오늘보다 25호 투고)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의 구속에 부쳐 박세연(한국사 연구노동자) 얼마 전 전공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북한 학자의 논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렵게 열람할 기회가 있었다. 신분증 제출은 물론이고 서약서까지 쓰고 본 그 논문은 그러나 실망을 넘어 북한 학계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하는 놀라움이 들만큼 초라했다. 북한의 유일한 역사 학술지에 실린 그 논문은 정권에서 원하는 이야기를 시대만 바꾸어 서술하고 있는데 불과했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한심한 결과였다.해방 전후에 이름을 날렸던 비판적 지식인들은 남한의 반공주의를 견디지 못하고 상당수 월북하였다. 그리하여 1960년대까지 적어도 한국사 영역에서 북한에는 백남운을 비롯한 유수의 연구자가 탁월한 ..

근황 15.06.11

근황 15.06.11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지고 있던 짐을 벗어던지고 사가독서를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 어안이 벙벙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합니다.교토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아름다운가요? 닌나지의 어전에서 바라보는 오층탑의 아직도 그대로 아름다운가요? 그 앞의 맛있는 덮밥집도 그대로겠지요? 도지인의 아침 안개 낀 정원이 그립습니다. 도지인역에서 도지인까지 타박타박 걸어가던 그 길도 그립습니다. 후시미의 누룩 냄새와 메이지 천황릉까지 이어지던 긴 전나무길도 기억납니다. 로잔지의 도라지꽃도 단잔신사의 수국도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히메지성에 가득 피었을 사쿠라도 그립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당분간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아 생각해보면 저는 박사과정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

근황 13.04.18

근황 13.04.18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봄이라서 어쩐지 설레이는 나날입니다. 요즘 월요일마다 서울대 규장각으로 출근을 합니다. 아침에 고등학생, 대학생의 무리에 섞여 출근을 하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자료를 봅니다. 날이 좋고 해가 길어 여섯시가 좀 못되어 일이 끝나도 시야가 밝습니다. 일을 마치면 긴 시간에 걸쳐 안암으로 돌아옵니다. 일이 끝나면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역으로 향합니다. 버스는 행정관을 출발해 정문을 지나 신림천을 따라 굽이굽이 난 도로를 따라 달립니다. 그러다가 보라매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어 노량진역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내려 버스를 갈아탑니다. 버스는 다시 한강대교와 노들섬을 지나 용산을 거쳐 서울역과 남대문을 통과합니다. 그리고 을지로를 지나쳐 동묘앞을 지납..

근황 13.04.13

근황 13. 04. 13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마음이 편한 나날입니다. 이제야 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제 하려는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한달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시간만을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나브로 다소 마음이 진정되고 이제는 새로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 논문 발표를 한 학기 미루기로 결정했을때 겉으로는 담담한 척 했지만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제 선택이었지만 그 동안의 힘든 생활을 지탱했던 끈이 끊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터널의 저 편에 보이는 빛이 끝인 줄 알고 달려왔는데 실은 가로등이었고 바깥 공기를 마시고 햇볕을 쬐고 싶다는 희망이 ..

근황 12.12.16

근황 12.12.16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오랫만에 동기들과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이제는 거의 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걱정할 것도 많고 눈치볼 것도 많을 나이입니다. 비록 이제는 사회의 짐을 어깨에 하나 둘 씩 짊어지고 있지만 2005년 아무것도 모른체 대학에 들어와 마냥 즐거웠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오랫만에 스무살처럼 놀았습니다. 그 빛나는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지만 5년간의 대학 생활은 소중했다는 당연한 말을 다시 한번 되뇌이는 날이었습니다. 석사라는 자격증을 얻기 위한 몸부림 중입니다.불과 며칠 안에 3년 간의 고민을 몇 장의 종이 안에 응축시켜야 합니다. 그 고통의 작업을 혹은 외면하고 혹은 무시하려고 하지만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침대 머리맡..

근황 12.12.07

근황 12.12.07오랜만의 근황입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논문 작업이 막판에 이르렀습니다. 하루에 10장을 쓰고 8장을 지웁니다. 그렇다고 좋은 문장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꼴도 보기 싫어 컴퓨터를 꺼버리고 침대에 누웠다가도, 그래도 이러면 않될 것인데라고 생각하며 다시 책상 앞에 앉습니다. 다음 주 주말까지는 끝장을 볼 작정입니다. 오늘 총학생회 선거 개표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 후배들의 선본이 패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발걸음이 득표율 31%보다 훨씬 더 나아간 발걸음인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고 이기는 건 중요치 않습니다. 아흔 아홉 번의 패배는 다 한 번의 승리로 보상받을 것이니까요. 다만 지난 선거의 기억과 다짐이 오늘 밤 단 한 잔의 술잔에 흘러 사라지 않고 열..

근황 12.07.28

근황 12.07.28 힘든 나날입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우울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조 탄압을 전담하는 기업이 생겨서 용역깡패를 동원해 투쟁 사업장을 덮쳤다는 소식입니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저는 조교이기에 또 준비해야 할 세미나가 있기에 학교로 걸음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뭔지 한참 고민하게 만드는 하루였습니다. 펜이 총보다 강하다는 말도, 학문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도 모두 거짓입니다. 실천을 담보할 수 없는 학문은 그냥 허울 좋은 자기만족의 다른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써야 할 글의 방향을 다시 돌이켜 봐야겠습니다. 논문이 목적의식으로 쓰여지면 않되겠지만, 연구자가 목적의식을 잃으면 결국 아무것..

근황 12.07.26

근황 12.07.26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무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운 나머지 건물 밖을 나가기 싫어지고 몸은 계속 늘어집니다. 하늘이 원망스러워질 정도이지만, 선풍기 하나를 끌어안고 그럭저럭 버티고 있습니다. 글이 진전되지가 않습니다. 발표 이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생각을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세미나와 출근이 핑계가 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듯합니다. 세미나도, 일하는 것도 결국 나만의 글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인데, 너무 풀어지지 않았나 하는 걱정과 후회가 밀려옵니다. 큰소리 쳐놓은 것이 있는데, 잘 수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이 나오도록 언제나 노력해야겠지요. 작은 노트를 하나 샀습니다. 이른바 연구노트입니다. 대단한 것은 없고, 그때 그때 생..

근황 12.06.16

근황 12.06.16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비가 올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은 흐린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바쁜 척을 하느라 날씨 따라 기분이 좋지 않더니 어제 발표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이젠 모든 것이 그냥 좋아 보입니다. 논문의 초고에 해당하는 글을 선생님 앞에서 발표했습니다. 이 글을 쓰느라 한 달 정도를 고스란히 바친 듯합니다. 이백 여개의 각주에는 수 십 개의 연구사와 사료들이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역사논문이라는 것은 수많은 연구사와 사료가 마치 지층처럼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사실과 사실의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마치 대리석의 생성과 같이 서로 융합하는 화학적 결합을 거쳐야 하겠지요. ... 논문을 준비하면 사람의 성격이 약간 이상해진다는..

근황 12.06.12

근황 12.06.12 저는 비교적 잘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 석사 6학기 안에 논문을 내고 싶다는 과도한 욕심이 글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급함이 약이 될리가 없겠지만, 질러놓은 것이 있어 잡문이나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위안을 삼을까 합니다. 생각만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는 생산적이겠죠. 하지만 욕심만큼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부분은 여전히 괴롭습니다. ... 글을 쓰다보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수많은 논문을 읽으며 평가하고 갈무리하는 과정은 희열과 고뇌를 동시에 가져다줍니다.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을 찾으면 기쁘지만 동시에 어떻게 하면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 내용을 글에 넣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나의 생각과 반대되는 부분을 찾으면 고민스럽지만 동시에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