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횡단기 - 11일 스와2 (스와대사諏訪大社 시모샤下社 하루미야春宮)
미술관 주차장에 택시가 와 있다.
스와대사는 모두 4개의 신사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신사 간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보통 방법으로 이를 한꺼번에 보긴 어렵다. 특히 상사와 하사의 거리를 15km에 달한다.
JR버스가 있으나 시모스와정 순환버스이기 때문에 제대로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고민 끝에
택시를 대절했다. 4사 순례라는 코스로 아예 이 지역에서 대중화가 되어 있는 코스이다.
4개 신사의 위치
출발
스와호를 끼고 달린다.
단풍과 호수
날만 좀 맑았으면 좋을 것을
멀다
북쪽으로 한참을 달린다.
스와호 자체가 4개 행정구역에 걸쳐있으니
드디어 건물이 보인다.
도리이가 보인다
드디어 도착했다.
스와대사 시모샤 하루미야
스와대사는 상사(카미샤)와 하사(시모샤)로 나눠지고 다시 상사는 본궁(혼미야), 전궁(마에미야),
하사는 춘궁(하루미야), 추궁(아키미야)로 나누어진다. 상사와 하사로 나누어진 것은
헤이안시대 정도 아닌가 하며 춘궁과 추궁의 성립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경내 밖에 있는 테미즈야
멀리 있는 신교
저긴 나오면서 가보기로 한다.
스와대사라는 표석
스와대사(諏訪大社, 추방대사)는 시나노노쿠니의 이치노미야이면서 많은 전설을 안고 있는 신비한
신사이다. 모시는 신은 타케미나카타(建御名方神)와 그 부인 야사카토메(八坂刀売神)이며 정해져
있진 않지만 상사가 타케미나카타를, 하사가 야사카토메를 상징한다고 본다. 5~6년에 한 번
스와호의 결빙이 심해지면 호수의 얼음이 커지면서 깨져 천둥같은 소리가 나는데, 이를 상사의
타케미나카타가 하사의 야사카토메를 그리워하여 내는 소리라고 하여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스와대사의 건립에는 우리가 본 이즈모와 관련된 신화가 내려온다. 고사기에 따르면 아마테라스와
타카미무스비의 명을 받고 내려온 타케미카즈치가 오쿠니누시를 만나 국가 양도를 요구하자,
오쿠니누시는 두 아들에게 이를 상의한다. 그 때 장남인 코토시로누시는 이에 순종하자 했고
차남인 타케미나카타는 힘을 자랑하며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타케미카즈치가 압도적인 힘으로
타케미나카타를 몰아 붙이자 그는 이곳 스와까지 도망와서 천손을 섬기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 신화는 일본서기에는 없으며 타케미나카타의 후손을 자처하는 스와씨는 타케미나카타가
오히려 아마테라스의 명을 받아 시나노 일대를 평정한 정복의 신으로 묘사한다.
한편 타케미나카타가 나라시대 후에 창조된 신이며 스와명신은 타케미나카타가 아니라 별도의 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모리야신 등 기존의 신들을 기기신화에 끼워맞추기 위해 타케미나카타다 만들어진 것이고 실제로는 미샤구지라고 불리는 이 지역의 토착신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공통적으로 타케미나카타가 스와 일대의 신을 정복한 것은 인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이곳의 토착신으로 모리야씨의 조상이라고 하는 모리야노카미(洩矢神)를 정복한 것으로 묘사한다.
그 후 8살의 소년에게 자신의 옷을 입히고 자신의 대역, 즉 신체로 인정하고 사라졌다고 하며
그 소년이 바로 스와대사의 신관인 스와씨의 조상이 된다. 이것은 선주민인 모리야씨를
정복하고 새로운 씨족이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이후 스와대사는 스와씨의 계승자를
오호리(大祝)라 하여 최고 신관 겸 신체, 현인신으로 모셨다.
이후 스와대사는 적어도 8세기 경 기록이 보이며 일반적으로 스와명신으로 섬겨진다. 스와명신이
삼한정벌에 참여했다는 전설도 있고, 거대한 용이라는 전설도 있으며, 에조를 정벌한 것으로
알려진 헤이안 초기의 장군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이곳에서 전승을 기원했다는 이야기에
따라 오래전부터 군신으로 섬겨지게 된다. 또한 겐페이전쟁 당시에는 겐지가 이긴다는 신탁을
내리며 스와씨가 겐지에 합류하며 가마쿠라막부의 섬김을 받으면서 신불습합에 따라 상사와
하사에 각각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게 된다. 이후 이 곳의 신관 스와씨는 독자적인 세력이 되어
군벌이 되지만 다케다 신겐에 의해 정복된다. 그러나 방계가 도망쳐서 호조씨와
도쿠가와씨를 섬기며 재건하였고 이후 스와번 3만석의 영주가 된다.
지금의 스와대사는 에도시대 재건된 것이며 메이지시대에
신궁사가 일괄 파괴되면서 완전히 신사화가 된 것이다.
상사와 하사는 문화적 기원의 차이도 있다고 본다.
상사는 수렵 문화에 바탕을, 하사는 농경 문화제 바탕을 두었다고 본다.
하사의 하루미야와 아키미야는 동등한 신사로 여름과 겨울에
각각 신체가 이동하여 봄과 가을을 지내는 궁이다.
상사와 하사의 모시는 신에는 크게 차이가 없으나 상사는 남편인 타케미나카타, 하사는 아내인
야사카토메를 주신으로 하며 하사는 추가로 타케미나카타의 형이자 국가양도에 승복한
야에코토시로누시를 합사하여 모시고 있다. 또한 하루미야가 먼저 생기고
아키미야가 나중에 생긴 것으로 추즉하고 있다.
경내로 들어간다.
멀리 보이는 모습
신주들
신락전
에도시대의 건물
중요문화재인 배전보다 오래된 건물인데 평범해서 그런지 지정이 안 되어있다.
창고
신락전
안내문
중요문화재 안내문
신목
삼나무로 현재 신목으로 모시는 나무이다.
거대하다
말사 와카미야사
섭사 카미스와사
거대한 기둥이 보인다.
온바시라(御柱)
신사 사방에 세우는 거대한 나무 기둥이다. 4개 신사 모두 세워져 있는데
6년에 한 번씩 교체하면서 벌이는 온바시라마츠리가 엄청 유명하다.
이 기둥의 의미는 아직도 분분한데 신령이 내리는 곳이라는 설, 성지의 표시라는 설,
사전의 천궁 용으로 준비하는 것이라는 설 등등이 분분하다.
신락전 측면
드디어 보이는 사전 영역
가운데 문 형태의 폐배전이 있고 좌우에 편배전 총 3동이 모두 중요문화재이다.
회랑 형태의 편배전
또 다른 거대한 온바시라
높다
니노온바시라
좌우편배전
에도시대 건물로 중요문화재
안내문
가운데 담 같은 것으로 내외가 나누어져 있다.
가운데 폐배전
중요문화재
누문 형태이다
화려한 조각
전경
조각들
정면
특이하게 스와대사는 본전이 없다. 다만 이 너머로 신의 영역인 금족지가 있고 2동의 동서보전이
있어 그 중 한 쪽에 신이 있음을 상징하는 가마를 모신다. 동서 보전은 각각 온바시라가 교체되는
때 가마를 다른 보전으로 옮기고 천궁을 시작한다. 하나의 보전은 12년마다 교체되는 셈으로
이세신궁의 식년천궁과 규모는 다르지만 비슷하다.
뒤로 보이는 보전
두 개가 보인다
문의 조각
대나무
금족지를 보호하는 담
거대한 온바시라
배전 전경
통죽전
죽을 지을 때 갈대와 대통을 넣고 그 안에 있는 쌀알로 점을 치는 통죽제를 하는 곳이라고
안내문
말사 자안사
스와명신의 어머니를 모신다.
안내문
특이한 봉납품들
하루미야 전경
하사는 생각보다 작다.
이제 밖으로 나간다.
신사 옆 공산당이라니
다리로 간다
지금은 경외로 밀려난 다리
하마교라고 한다
이래봬도 스와대사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무로마치시대 초기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정지정문화재
다리만 남았다
보호를 좀 하지..
안내문
측면
금줄
이제 아키미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