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횡단기 - 13일 토미오카1 (토미오카제사장富岡製糸場1)
타카사키역에 도착
여기서 다시 조신전철로 환승한다.
환승을 하는데
커다란 에비스상을 상인회에서 세워놓았다.
조신철도로 환승
난카이, 이요철도에 이은 일본 3번째 사철
역에서 타카사키역과의 왕복 승차권과 토미오카제사장 입장권 세트를 판다.
개찰구로 가는데
비석 모형이 서 있다.
알고보니 군마현에 있는 3개의 고비, 속칭 코즈케 삼비라고 불리는 비석이 다 이 근처에 있단다.
일본은 비석을 지정하는 기준이 사적과 유형문화재 중 일정치 않은데
하여튼 아스카~나라시대에 세워진 이 비석들은 모두 각각 특별사적이다.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음을 기약하며 이동한다. 군마현도 은근 볼 게 많으니
철도 무스메
타카사키부터 토미오카 제사장 광고가 나온다.
역 주변의 관광지
신기하게 도장이 된 차량
기념샷
노리바에서 탑승
철도 내부
한가하다
토미오카시로 출발
완전 농촌이다
관동이지만 확실히 군마현은 시골 느낌이 강하다.
조슈 토미오카역에 도착
내려간다
오래된 역이다
여기도 세계유산 기념 안내판이
작은 역사
옛 여공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인형
역명판
시계도 누에고치 모양
여기서 걸어서 15분이지만 시간이 없어 택시를 탔다.
도시는 작다
곳곳에 보이는 오래된 건물
5분 정도 가니 드디어 제사장 건물이 보인다.
토미오카제사장 입구
토미오카제사장(富岡製糸場)은 1872년(메이지 5) 일본 최초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견사용 생사
생산 공장이다. 메이지유신 직전 당시 주요 수출품이었던 생사를 생산하고자 프랑스의 기술을
받아들여 만든 공장이다. 당시 메이지 신정부는 제철소, 조선소 등 근대산업을 받아들이기 위해
외국 기술자들을 초빙해 관영모범공장을 세우고 있었는데 당시 토미오카는 농사짓기에는 토질이
나쁜 반면 물과 석탄 조달이 편리하고 백성들도 원했기 때문에 이곳에 공장을 세우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건설과 병행하여 일할 여공들을 모집했으나 서양인들이 여공의 생피를 마신다는
괴소문이 돌자 사족의 딸들을 우선 여공으로 받아들였다. 와다 에이도 그렇게 취업한 케이스이다.
관영으로 운영되던 공장은 생각보다 잘 운영되고 미국이나 프랑스에도 수출이 되었다. 이러한
관영 공장들은 궁극적으로 민간 매각을 추진하였다. 1890년 미쓰이 재벌에 공장이 매각되었으나
미쓰이가의 생사 생산 사업이 잘 되지 않았고 결국 1902년 하라 재벌에서 이것을 인수하였다.
하라 체제에서는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이 있었지만 생사 수출은 호조를 이루어 최대 생산량을
경신하게 된다. 그러나 중일전쟁과 미국에서의 나일론 개발로 생산에 차질이 생기자 1939년
카타쿠라 재벌에 매각되었고, 2차 대전 와중에 군수업체가 되어 생산이 증가하였으나 수출은
중단되고 내수 위조로 돌아가게 되었다. 전후에도 활발하게 생산을 하였으나 화학섬유의 등장,
중일국교정상화를 통항 중국 생사의 유입으로 경쟁력이 줄어들어 결국 1987년 폐업하게 된다.
폐업을 한 후에도 공장은 카타쿠라 재벌의 관리하에 있었으며 팔거나 철거하지 않고 1억엔에
달하는 재산세까지 내가며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카타쿠라공업에서 타카오카시와 협상을
하여 토미오카제사장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로 하고 제사장을 기증받는다. 시민단체와 지자체의
노력으로 토미오카 제사장은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주변
유적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특히 일본 근대 유산으로는 최초로 세계유산에 등재된다.
제사장 현판
세계유산, 국보, 중요문화재, 사적의 4중이다.
전체 건물 중 조사소와 동치견소, 서치견소 3동이 국보, 6동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표를 끊고 들어간다.
정면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동치견소
국보
매표소인 검사인관
중요문화재
뒤편으로도 건물이 있다.
여공관이라고 하는데
사적 표석
천황 부부의 기념식수
검사인관
메이지시대 건물로 프랑스 기술자들의 숙소로 지어진 건물이다. 프랑스인들은 대부분
1년 만에 떠나가서 외국인 의사의 숙소로 쓰이다가 사무소로 쓰였다고 한다.
중요문화재
정문은 부속 지정
공장이 세워진 후 메이지천황의 요청으로 당시 황태후인 에이쇼황태후와
자신의 부인인 쇼켄황후가 방문했는데 그 70주년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
뭘 그런 것까지
정면에 마치 성벽처럼 동치견소가 있는데
거대하다.
치견소(置繭所)는 누에고치를 보관하는 곳인데, 메이지시대에는 봄에만 누에고치가 만들어져서
만들어진 고치를 통풍이 되는 곳에 쌓아두고 있어야 해 2동의 거대한 창고를 만든 것이다.
기술이 발달해 1년 내내 누에고치를 만들 수 있게 되자 창고로 바뀌었다.
불조심, 금연이라는 푯말
내부로 들어간다
원료과라는 현판
내부는 이렇게 뚫려있다.
2층이다
건물 모형
메이지시대의 모습
치견소 두 동과 조사소가 있고 가운데 마당에 수조와 굴뚝, 증기소 등이 있다.
타카오카제사장의 역사
메이지시대
미쓰이시대
당시 민영공장이 되면서 관영시대의 꽤나 좋은 근무환경은 가혹해졌다고
체조
하라시대
카타쿠라시대
세계유산 등재서
기둥
당시의 기초
누에를 키우던 풍혈
시원한 바람이 통해야 해서 이런 곳에서 누에를 키워 고치가 되면 가져왔다고
아라후네 풍혈
여기도 세계유산이다
타카야마사
근대 양잠교육을 시작한 곳이다.
세계유산
타시마 야헤이의 가옥
역시 세계유산
당시 그가 세웠던 누에양잠소
가옥 2층에 마련한 공간
내부의 모습
내부는 뭐 단순하다
당시 일본의 생사로 만들어진 유럽의 비단 제품
누에고치
한쪽에선 한 명이 메이지시대 방식으로 실을 뽑고 있다.
고생이다
누에로 실 뽑는 물레
손대지 말라고 한다.
누에고치가 자리잡은 곳
누에가 살고 있다.
누에가 집을 만드는 중
오 신기하네
동묘에서 말린 것만 보다가
비디오로 틀어준다
이렇게 순로가 정해져 있다.
다시 건물을 나왔다
동치견소 안내문
안쪽으로 들어가는 중
아까 들어왔을 때 봤던 검사인관의 다른 입구
이쪽 벽면은 벽돌이다.
안내문
여공관과 검사인관이 이어지는 나무 복도
고압변전소
내부
전후의 건물이다
안내문
여긴 기숙사 쪽이다.
조사소
뒤돌아본 변전소
조사소 안내판
이제 또 다른 국보인 조사소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