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1차

북경여행기 - 2일 (국자감)

同黎 2015. 8. 27. 22:55



이제 국자감으로 향한다.

별도로 입장권을 끊을 필요 없이 공묘와 연결되어 있다.


국자감 경내 안내도

아주 간단하다.


사진의 주인공은 저 관광객들이 아니고...

너머의 건물이다. 정정, 즉 우물을 보호하는 건물이다.


문이 보인다. 태학문이다. 국자감의 별칭이 태학이다. 

지금의 북경 국자감은 그 역사가 원 시기 대도의 국자감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남아 있는 건물을 전부 명·청대의 것. 공묘와 마찬가지로 그 터 위에 지은 것이다.

원 멸망 이후 명이 세워지면서는 북평부학으로 바뀌었고, 국자감은 남경에 있었는데 영락제가

건문제를 내쫓고 북평, 즉 지금의 북경으로 천도한 후 북경 국자감이 되었다. 명대 국자감은 한동안

남경과 북경 두 개로 운영되다가 후에는 그런 거 없고 그냥 북경 국자감이 유일한 국자감이 되었다.

현재 중요한 건물은 대부분 건륭 49년에 대대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비석이 보인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명대에 세운 오조상유비인 것 같다.

즉 다섯 대 왕조에 걸쳐 태학에서 강조한 황제의 유지를 기록한 것이다.



태학문을 들어서면 아름다운 유리패방이 보인다.


이런 유리기와와 벽돌은 황제의 명이 있어야만 쓸 수 있다.

건륭제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잘 안 보이지만 환교교택이라고 새겨져 있다.

교육기관에 있는 유일한 패방이라고 한다.



문의 홍예 부분

조각이 매우 아름답다.



여기도 좌우로 비정이 보인다.


유리패방을 지나면 벽옹이라는 특이한 건물에 다다른다.


한나라 때 국자감의 모습을 재현한 이 정사각형 건물은 둥근 연못 가운데 세워졌다.

하늘은 둥글고 땅을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의 의미를 살린 것이다.


요렇게 특이한 건물에 놀라고 있을 때 옆에서는 어느 학부모 아줌마와 미화원 할머니의

격렬한 입배틀(아가리 파이팅이 더 어울린 것 같다.)이 벌어지고 있었다...

건륭제가 이 건물을 지은 후 황제는 즉위 후에 반드시 여기 와서 강학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로써 자신들이 유교적 가치를 존중한다는 사실을 한족에게 강조했던 것이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 앞에서 전시를 치뤘다고 하는데 공간적으로 봤을 때

과거를 치루기에는 적절치 않아 여기가 아니라 이 뒤의 이륜당이 아닌가 싶다.


여튼 고대 국자감을 재현한 아름다운 건물이다.



다들 기념사진을 찍는다.


벽옹으로 건너가는 연못 뒤에는 사방으로 4개의 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는 중


다리와 난간석은 모두 하얀 한백옥으로 되어 있다.



벽옹의 모습


연못은 꽤 커서 잉어들도 많이 살았다.





안내판


벽옹 내부의 옥좌


여기서 황제가 경을 강하며 자신이 도통의 후계자임을 강조하였다.




옥좌 주변

법랑기와 주칠기가 배치되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이제 다리를 건너 뒤로 가본다.


뒤로 가니 우리나라 성균관의 명륜당과 같은 이륜당 마당이 나오고 공자상이 보인다.


공자상에는 붉은 부적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입시지옥이 한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는 곳이니 여기서도 많이 소원을 비나보다.



본래 중국 본토에서는 문혁 이후에도 한참동안 공자와 유학을 터부시했고, 그런 영향으로 인해

현대 동양철학의 주도권은 대만에 쥐고 있었다. 최근 10년 동안에 들어서야 본토도 적극적으로

공자를 재평가하고 있는데 아마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져서일 것이리라.



이륜당 앞마당

명나라 때의 건물이라고 한다. 용케 화를 피했다.

여기에 월대가 있는데 제법 넓어서 여기서 전시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대 한쪽에 있는 해시계



신기해서 마구 찍었는데 자금성에 가니 널려있더라


이륜당 모습

실제 국자감생들의 강학공간이었던 만큼 길고 넓다.


이륜당 좌우에는 긴 행랑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에 승건청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승건청 내부

국자감 학생들의 행실을 감독하는 기관이었다고 한다.

청대에는 과거와 관리임명 모두 만·한족의 쿼터가 있어서 따로 운영되었는데

국자감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궁금하다.


이륜당 뒤로 나가면


갑자기 격조 높은 이런 문이 나온다.

문을 통과하면


경일정이라는 국자감의 마지막 건물이 나온다.


경일정은 국자감의 가장 높은 직위인 좨주가 머무는 곳이었다고 한다.

좨주는 사전적 의미는 석전제의 술을 따르는 역할이지만 오랫동안

국가에서 가장 존중받는 유학자라는 뜻으로 쓰이고 공식 직제로 편입되었다.

조선에서도 17세기 산림을 등용하기 위해 성균관에 좨주라는 직임을 신설하기도 했다.

한편 경일정 안에는 명청시기 태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곱 황제의 유훈이 적인 비석을 보관한다고 한다.



확실히 건륭제의 건물보다는 검소한 느낌이다.


안내판


경일정 문에 붙어있는 장식


이제 다시 밖으로 나가는 길


벽옹의 뒷모습

이 옆의 행랑으로 가면 국자감 박물관이 나온다.


과거에 관한 전시


이것이 한나라 당시의 국자감 모형이다.


과거제도에 대한 설명들


합격자 발표를 하는 방방의 모습


청대 국자감의 조직도

좨주 아래 만주인과 한인을 담당하는 관리가 따로 있고 팔기인의 경우 특혜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학 모습


당시의 관복



청 특유의 군사제도이자 민족제도인 팔기제도에서 각 기를 상징하는 깃발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의 방방 교지


누런 종이에 합격자들의 이름이 등수별로 적혀 있다. 그러면 진사가 되는 것이다.


조선의 과거제도도 한 꼭지 있다.


당시 국자감생의 생활방

고시원이군


이제 전시도 다 봤고


유리패방을 지나서


정문인 집현문으로 나선다.


성현가의 모습. 옹화궁부터 국자감까지 금새 볼 줄 알았는데 엄청 크다.

이제 밥 먹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