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제 21

예술의 전당 추사전

어제 일이 있어 예술의 전당에 자료 조사를 갔다가 그곳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라는 전시에 다녀왔습니다.본업이 사찰에 있는 고서와 고문서를 조사하는 것인데, 요새 해남 대흥사를 조사 중이라 이래저래 추사의 글을 볼 일이 많습니다. 하는 일에 연관도 있고 또 지금은 관뒀지만 서예와 전각을 취미로 한 일도 있어 관심이 가는 전시였습니다.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열렸던 추사 김정희와 옹방강, 완원 등 당대 청나라 문인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하는 전시의 귀국 기념전인데, 개인 소장으로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유물이 많아 매우 흥미롭고 또 재미있는 전시였습니다.본래 저는 전시를 보면 꼭 도록을 사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도록이 무려 6만원이나 하는 걸 보고 몇개 마음에 드는 것만 사..

雜/무제 2020.02.08

공허했던 사나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히데요시의 정실 부인이 모시던 그의 초상화. 중요문화재 올해 마지막 밤입니다. 관례에 따라 화로를 봉하고 하루 차를 쉬어가려고 합니다. 제석에는 화로를 닫고 새해 원단에 처음 물을 끓이는 初釜를 기다리며 오늘은 쓰던 원고의 거의 마지막을 다뤄보려고 합니다.일본의 다인들은 대부분 이상하리마치 불행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다성 센노 리큐는 히데요시의 명을 거역하여 강제로 할복을 당했으며 그의 제자들 역시 대부분 불행한 생을 살았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승려가 되어 히데요시의 의심을 피했던 오다 우라쿠사이, 노부나가에게 반란을 일으켜 숨어 살다가 그의 사후 자신의 이름을 똥을 뜻하는 도훈으로 바꾸고 히데요시 밑에 살아남은 아라키 도훈, 스승 리큐의 뒤를 잇지만 도요토미가를 도왔다는 의심을 사서 도쿠가와..

雜/무제 2020.02.08

다부(茶釜)의 보물창고. 오니시 세이에몬 미술관

교토 산조의 가만자초(釜座町)에 가면 지금도 다도용 솥을 파는 가게들이 많습니다이름도 다 못 외울 정도로 많지만 문을 연 가게는 하나도 없습니다.대부분 고가의 신품 다부는 소개장과 예약을 통해 팔리기 때문에 지나가는 행인이 들어올 일이 없죠. 그래서 대부분의 가게가 내부를 보여주지 않고 숨어있습니다. 사실 텐메이의 대화재 이후 많은 부사(釜師)들이 가게를 읽어 절반 이하로 줄었고 지금은 교토의 높은 땅값 때문에 공장은 대부분 외곽으로 옮긴 상태입니다. 그렇게 큰질에서 가만자초의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가장 끝의 집이 나옵니다 이곳이 교토 제일의 부사 오니시(大西) 가문의 저택과 거기에 딸린 오니시 세이에몬 미술관이 있는 곳입니다.오니시 가문보다 오래된 부사 가문이 교토에는 여럿 있습니다. 센노 리큐보다 먼..

雜/무제 2020.02.08

명장이 된 기와장인 - 라쿠다완 이야기

교토에 가면 라쿠미술관(楽美術館)이라는 미술관이 있습니다.처음 가는 분들은 찾기가 쉽지는 않은데 근처에 지하철역이 좀 멀리있고, 미술관 자체가 주택가 안쪽에 있기 때문입니다.크기가 크지 않기 때문에 거의 천엔에 가까운 비싼 입장료에 불만을 토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일본 다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성지에 가까운 곳이고 봄에 가면 직접 다완을 손에 들고 감상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작지만 손님들이 끊기지 않은 곳이며 교토시에서도 대표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는 곳입니다. 즐거울 락자를 쓰는 이 미술관의 이름은 교토를 대표하는 다완 라쿠야키(楽焼)와, 이 라쿠야키를 대대로 만드는 라쿠가문(樂家)의 이름에서 따온 곳입니다.현재 라쿠다완을 만드는 인물들은 많지만 그 예술성을 인정..

雜/무제 2020.02.08

명나라의 멸망과 일본 차문화의 변화

*일본 나가사키의 중국 사찰. 숭복사(崇福寺) 산문 나가시키는 에도시대 3백년 간 일본의 유일한 창구였습니다.본래 일본의 항구는 하카타항 즉 지금의 후쿠오카시입니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이 일으킨 반란 등을 겪은 에도막부는 하카타에 조선통신사의 상륙만 허가하고 모든 외국인은 나가사키에만 출입하게 합니다. 덕분에 후쿠오카는 한동안 무역창구로서의 명성을 잃어버리고 대신 나가사키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후쿠오카의 하카타항은 시모노세키를 통해 오사카로 향하는 세토 내해의 출입구였기 때문에 대신 규슈 서부에 치우쳐져 있고 나가사키만과 반도로 복잡하게 얽혀있어 수비에 유리한 나가사키가 무역항이 된 것입니다. 대만과 류큐(오키나와)를 거쳐 규슈로 오는 남중국인과 서양인 중 유일하게 일본과 교역이 허락된 네덜란드인들이..

雜/무제 2020.02.08

신공황후를 찾아서

규슈국립박물관 후쿠오카지역의 전통 행사 마츠리에 쓰이는 거대한 장식 수레 오랫동안 일본을 다니면서 꼭 찾아다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바로 일본 임나일본부의 주인공인 신공황후입니다.일본서기에 보면 신공황후는 백제를 침범한 신라와 가야를 바다를 건너 격퇴하고 그곳에 일종의 식민지를 건설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금이야 한일 양국 역사학계에서 모두 일본서기의 조작으로 치부하는 사실이지만 일본에는 의외로 신공황후를 신으로 모시는 곳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신공황후에 대한 일본인들의 신앙은 적어도 제국주의시대 이전까지는 삼한 정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임나일본부 같은 것도 오래도록 잊혀져 있었던 것이고 단지 아주 옛날 우리를 지켜줬던 여신, 여걸 정도로 인식했던 것이죠. 무엇보다도 신공황후는 바다를 지켜주..

雜/무제 2020.02.08

나가사키에 다녀와서

나가사키에 다녀왔습니다.일본 천주교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천주교 나가사키 대교구를 취재다녀왔습니다.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한국인 여행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만석이었던 인천발 후쿠오카행 비행기는 만석이 아니고그나마 절반은 한국을 오가는 일본인 관광객이 차지했습니다.한국인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고 중국인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인이 있어도 서로 외면하기 바쁩니다. 나가사키는 부산이나 여수처럼 산과 언덕 사이에 지어진 도시입니다.도시 중앙에는 니시자카라고 하는 언덕이 있습니다.이 언덕은 일본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26명인 순교한 장소입니다.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주교 확산을 막기 위해 시범조로 26명을 이곳에서 십자가형에 처합니다.이후 도쿠가와 정권은 천주교를 정면 금지하고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雜/무제 2020.02.08

부사(釜師)의 역사 3-1. 리큐와 그 후예들1

3. 리큐와 그 후예들센노 리큐가 교토에서 츠지 요지로와 니시무라 도닌, 나고시 죠미 등의 부사들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솥을 만들게 하면서 쿄가마(京釜)의 시대가 활짝 열림. 이후 이들의 후손, 분가, 제자 들이 각자 일가를 이루면서 다양한 형태의 차가마가 만들어짐. 3-1. 리큐 시대의 차가마와 풍로 리큐가 정리한 것은 솥뿐만 아니라 풍로와 로. 풍로의 경우 기존의 귀면풍로뿐만 아니라 조선풍로, 봉황풍로, 유구풍로 등 다양한 풍로가 생김. 특히 딱 맞춤만 가능한 귀면풍로 대신 입구가 넓어 사실상 로용 가마도 풍로에 사용할 수 있게 됨. 나츠메풍로의 등장은 기존에 신나리가마(진형부) 등 일부 가마만 사용할 수 있었던 풍로 다도의 판도를 변화. *로(炉): 본래 다다미 마루 중간에 설치하여 불을 피우는 난방..

雜/무제 2020.02.08

부사(釜師)의 역사 2: 교토 산조 가만자초(三条 釜座町)

2. 교토 산조 가만자초(三条 釜座町) 결국 고중세 일본 문화의 중심은 교토. 무로마치시대 16세기부터 교토의 산조에 막부와 귀족들의 취미생활을 위한 고급 공인들이 모여들었고, 그 중 부사들이 모여 차가마를 만들던 마을인 가만자초(釜座町)가 등장. 이들은 아시야와 텐묘 두 지역 차가마의 특징을 모두 배워와 다양한 차가마를 생산. 이후 다도 육종(茶道六宗)이라도 불리는 타케노 조오(武野紹鴎), 센노 리큐 등에 의해 채택되고,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유력 무사들의 전용 부사(釜師)들이 탄생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위치를 점함. 2-1. 니시무라가(西村家)와 나고시가(宮崎家) 니시무라가와 나고시가는 전통적으로 교토에서 주조 산업에 종사하던 공인 집안. 본..

雜/무제 2020.02.08

부사(釜師)의 역사 1. 아시야와 텐묘

부사(釜師)의 역사*첨부 사진은 2016년 미호뮤지엄 전시도록, 2014년 센오쿠하코쿠칸 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시야(芦屋)와 텐묘(天命)부사(釜師, 가마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59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지배 하의 모모야마 시대. 그러나 이 시기는 부사가 다른 금속 주조 공인과 분리되어 예술가로서의 성격을 부여 받은 때이고 실제로는 중국에서 차문화가 급격히 유입된 가마쿠라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임. 가마쿠라시대 후기인 14세기부터 차를 위한 솥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곳은 서일본의 아시야(芦屋)와 동일본의 텐묘(天命) 2곳. 이 2곳이 이후 모둔 일본 부사들의 조상이 되는 고장. 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차가마(茶釜) 9점 중 아시야가마가 8점, 텐묘가마가 1점. 1..

雜/무제 2020.02.08

사철과 화선

화선 차가마 (연구부, 은제 부환 첨) 인간국보 카쿠타니 잇케이 작 사철 가마(청해파문 조구부)2대 카나모리 에이사쿠 작 사철 가마 (회오리문 사방부)한냐 칸케이 작본인 소장 1. 철의 종류철은 순수하게 존재하는 경우는 없고 탄소, 규소, 망간, 인, 황의 분술물을 함유그중 무엇보다도 탄소의 함유가 없는 철을 사실상 쓰기 어렵기 때문에 탄소를 함유한 탄소강의 상태로 대부분 활용 1) 탄소의 함량에 따라순철 - 연철 - 강철 - 선철(주철)순철: 탄소가 거의 없는 순수한 철연철: 탄소 함유량이 0.2% 이하강철: 탄소 함유량이 1.7~2% 이하선철(주철): 탄소 함유량이 1,7~6%사실상 순철과 연철은 사용하지 않고 강철과 선철(주철)만 사용가격은 강철이 선철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렴 탄소 함유량이 많을수록..

雜/무제 2020.02.08

무쇠 주전자와 사철에 대한 환상

무쇠 주전자와 사철에 대한 환상 한국에 보이차 인구가 늘어나면서 보이차 가격도 급격히 올랐지만 더불어서 몸값이 올라간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보이차을 낼 물을 끓이는 무쇠 주전자입니다. 주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무쇠 주전자(일본에서는 鐵甁이라고 부르는)는 그 물 맛이 좋고, 특히 뚜껑에 龍文堂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거나, 南部鐵器 마크를 달고 있거나, 砂鐵(일본어로 和鐵)로 만들어 진 것이 최고라는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에만 퍼져있는 이야기는 아닌지, 중국에서도 이런 물건들을 선호하는 현상이 보입니다. 무쇠 주전자에 대한 신화는 일본에도 역수출 되어서 일본식 다도를 위한 다부(茶釜)에도 사철을 썼다는 이야기가 많고, 야후 옥션에서 이런 철기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

雜/무제 2019.03.17

운동권 (하위)문화에 대한 간단한 소회

이제는 잘 기억도 안나는... 2009년 고대 동연을 할 때 민중가요 악보집을 만든 적이 있었다. 당시 민중가요 노래집 생산이 거의 사라지고 있을 때였다. 전남대 교지편집위원회에서 라는 노래집을 매년 내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여러가지 예산이나 인력 문제도 업데이트가 늦었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라는 민중가요 악보집을 내고 있었지만 그건 사료로의 성격이 강했고, 연도순으로 노래가 정리되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불려지는 노래들이 실리기에는 너무 요원했다. 관악에서는 여남이 평등하기 위한 민중가요 노래집이 나왔고 남성 옥타부 위주의 민중가요 악보를 상당수 고치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여성과 남성이 모두 부르기 애매한 옥타브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 2년 동안 노래를 모으고 모아서 노래의 대중성과 역사성, ..

雜/무제 2016.10.22

아플 수 있어서 청춘이다.

아플 수 있어서 청춘이다. 1. 대학에 들어와서 2008년까지 학사경고를 2번 받았다. 대학에 입학하니 운동권 선배들이 있었고, 나는 매일 술을 먹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 한총련도 있었고 5월이면 여기저기서 대학생들의 커다란 데모판도 있었다. 약간의 중2병과 소영웅주의에 빠져 있던 나를 선배들은 학회에 데려가 두들겨 패기 시작했고 (물리적인 폭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 술을 먹였다.그렇게 나는 대학사회에서 완전히 개조되었다. 자신이 중산층인줄 착각하는 서민층들이 모여사는 작은 동네에서 공부 깨나 했다고 폼을 재던 어린애는 수업을 밥먹듯이 빠졌다. 점심부터 낮술하느라 빠졌고, 데모가느라 빠졌고, 학회 세미나 커리를 못읽어서 빠졌고, 선배들이랑 얘기하다가 빠졌고, 날씨가 좋아 빠졌고, 날씨가 나..

雜/무제 2015.01.02

송해매력대왕실록

왕력 연 월 일 내용 책수 송혜00 2012 11 1 상이 즉위하였다. 상의 본명은 송혜영이며 시호는 매력이다. 선왕 이명희가 학관정에서 운동춤을 추다가 갑자기 훙서하였다. 그런데 명희대왕이 생전에 세자를 정하지 않아 보위가 정해지지 않았다. 이에 前 영의정 겸 왕비인 이행묵이 급히 궐을 나와 전임대신을 찾아갔으니 그가 바로 오래곤부원군(烏來坤府院君) 박세연이었다. 행묵이 세연을 보고 가로되 "금상께서 갑자기 훙서하셨는데 건저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사국의 보위는 하루도 비워놓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대비도 없으니 오직 열성조를 섬겨오신 대감께서 알아서 하셔야 할 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세연이 사양하며 가로되 "내 이미 치사한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대통을 논하겠는가?" 하니 행..

雜/무제 2013.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