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3

기나 긴 일본답사기 - 29일 히로시마3 (국립히로시마원폭사망자추도평화기념관国立広島原爆死没者追悼平和祈念館·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広島平和記念公園2)

모토야스바시 명판 강 건너 보이는 모습 다리 옆 휴게실로 쓰는 건물레스트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원폭돔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것도 나름 피폭 건물이다.본래 1929년 세워진 다이쇼야 포복점이라는 점포건물로 세워졌으며 당시로써는 드문 3층짜리 건물로3층에서는 시내도 다 조망이 가능했다고 한다. 원폭으로 인해 내부는 전소하였고 내부에 있던 직원37명 중 36명은 즉사하고 지하실에 있던 1명은 기적적으로 경상만 입고 살아남았다.이후 공원 내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물로 개조를 거쳐 현재 공원의 안내소이자 휴게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멀리서 본 모습 건축 당시의 모습 건물 정면 현재는 개조 공사 중이라고 하는데 끝났는지 모르겠다. 공원 안내판 원폭의 어린이 상원폭으로 인한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사키 사다코라는 ..

9번째 간사이원정기 - 4일 히로시마4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広島平和記念公園2, 오코노미무라お好み村)

공원을 계속 가다보면 이런 둥근 봉분이 나온다. 원폭공양탑이다. 1946년 강이나 도시 폐허 등에 널부러진 시신들을 수습해 화장한 후 모신 납골당을1955년 모모야마시대의 어릉 양식에 따라 원형 봉분을 만들고 위에 탑을 세운 것이다.안에는 납골당이 있어 유족이 없거나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 7만 구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7만 구라니... 그리고 평화공원 한 구석에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서 있다. 원폭 희생자 20만 명 중 2만 명이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70년대까지 이를 기리는 비석이 없었고,1970년 민단 히로시마현 본부에서 기금을 모아 위령비를 세웠다. 그러나 비석의 위치문제와 "한국인"이라는 명칭 때문에 생긴 조총련과의 갈등 등으로 비석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공원 밖에 방치되어있..

9번째 간사이원정기 - 4일 히로시마3 (원폭돔原爆ドーム,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広島平和記念公園1)

다시 버스를 타고 원폭돔 앞에서 내린다.히로시마 관광버스를 타면 주요 포인트들을 모두 연결해준다. 원폭돔 앞 위령이라는 글자가 뚜렷한 비석 한 바퀴 돌아본다. 원폭돔(原爆ドーム)은 원래 1915년 지어진 것으로 체코 출신 건축가 얀 레첼이 아르누보 양식으로 건축한지상 3층(일부 5층) 지하 1층 높이 25미터의 건물이다. 히로시마 물산장려회를 맞이하여 히로시마현물산진열관으로 사용되었으며 독일물품전시회 때는 과자전시관으로 일본 최초로 바움쿠헨을제조·판매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으로 개칭하여 미술관 역할을 하다가1944년 내무성으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내무성 주코쿠, 시코쿠 토목사무소 등으로 사용되었다.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원폭돔 남동족 상공 600미터에서 리틀보이가 작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