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1차 東京

東京紀行 - 7일 메이지신궁明治神宮

同黎 2018. 5. 1. 20:14



마지막 날

메론빵과


오후의 홍차와 함께 메이지신궁으로


신궁 앞 하라주쿠에서 무슨 축제 중


많이들 왔는데 뭐지


하라주쿠는 메이지신궁 앞 거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코스어들의 거리로


국립요요기경기장


월요일인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

진구바시 앞


요요기공원 표석

요요기공원은 본래 일본제국 당시 육군 연병장이었다가

이후 공원으로 정비되어 도쿄올림픽에서 선수촌으로 사용된 곳이다.

메이지신궁의 외원 역할도 하고 있다.

어쨌든 그 비싼 시부야구의 엄청난 면적을 차지한다.


사람 많다


진구바시

메이지신궁 참배의 입구가 되는 곳으로 아래로 철도가 지나기 때문에 세운 육교이다.


메이지신궁의 첫 관문인 대도리이

최근 다시 지은 것인데 본래의 것은 대만을 침략한 후 그 기념으로 대만의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무 도리이 중에서는 가장 큰 것이라고


메이지신궁의 정숙 등을 요하는 판


메이지신궁(明治神宮, 명치신궁, 메이지진구)는 메이지천황과 그 부인인 쇼켄황후를 제신으로 모시는 신사이다. 그 둘은 각각 1912년과 1914년 죽고, 능은 교토 후시미에 썼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메이지천황에 대한 신격화에 더욱 신경을 써서 1915년부터 메이지신궁을 조성하기 시작해 1920년 완성시킨다. 이 자리는 본래 히코네번 이이씨의 저택이 있었다고 하며 이후 황실의 말 목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곳에 신궁과 숲을 조성하기로 한 다음 일본이 지배하던 사할린에서 만주, 조선, 대만 등의 '자발적' 헌목이 이어졌고 이렇게 10만 그루의 나무를 헌납받아 총 11만 명의 '자발적' 봉사에 의해 숲을 완성시킨다. 요요기공원을 뺀 면적만 22만평으로 이 비싼 땅값의 도쿄에서 황거와 함께 도심 속에 박혀 있다.

하지만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보물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아작난다. 미군정은 여기를 투견장으로 만들 생각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건 건너갔고, 여튼 존치되어 지금의 건물은 1958년 재건된 것이다.

다만 정교분리가 명시된 만큼 국고의 후원은 없었고 지원금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도리이

처음 도리이가 파손되고 두 번째 도리이도 70년대에 굳이 대만산 나무로 하려고 했단다.

지금 것은 3번째 것으로 일본산 나무이다.


등롱


준비하나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


어원 안내문


이 지역이 본래 가토 기요마사의 저택 터이기도 해서 가등청정의 청정정이라는 우물이 있다.


어원은 별도 입장료


보물전시실

보물관과는 다르다.


메이지신궁문화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듯


이게 보물전시실

여긴 근래 새로 지어진 곳인데 이 때 일시적으로 열었고 이후 리모델링 중이다.

홈페이지상으로 2018년 1월 재개관이라고 되어 있으나 현재도 폐관 중이라고



메이지의 도래라는 특별전 중이지만

코스어들이 더 많은 듯...



봉헌주 통들 하도 많이 물어보니 아예 안내판을..


많긴 하다


오크통이네

신기하다


여전히 대도리이


한 바퀴 돌아온 거다.



경내 안내도


좋은 나무만 바쳤는지 어마어마하다.


본전 구역이 보인다.


테미즈야


손 씻는 작법 안내판

여기서 주로 시원하게 물을 들이키는 한국인과 중국인을 볼 수 있다.

사실 나도 목마르면 가끔 마신다.


택시는 여기까지 들어오는 듯


사람 엄청 많다


참집전


오미쿠지와 부적 파는 곳


액이 낀 나이를 알려주고 있다.


각종 오마모리(부적)


문을 들어서면


누문이 나오는데

현재 보수 공사 중이다.


그리고 배전이 나온다.



쪽문


배전


사실 외배전에 해당하며


안에는 내배전, 폐전, 본전이 있다.

일반인은 외배전까지만 참배 가능


돈 내면 여기서 기다리며 기도를 한다.


어원으로 가는 길


연못


어마어마하다

인공숲에 이어 인공호수



정원이 정말 넓다.


자갈이 모이고 굳어서 형성된 바위

일본 국가 기미가요의 가사에 등장하는 모습이라 신사에 가면 종종 이런 바위를 모시고 있다.


뭐하니


멀리 보이는 스카이라인


보물관 정문


보물관은 폭격에도 전체가 살아남았다.


중창, 즉 본관과 동서창, 동서랑, 동서교랑, 동서도랑, 북창, 현관, 사무소, 정문 및 변소와 통용문 등

13동 및 부속 담장까지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전형적인 제관양식 건물로 1915년 처음 지은 것 그대로 남은 건물이다.


귀면와

부속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진구바시 옛 편액


 

미에마루라는 배 모형


내부에는 메이지천황과 쇼켄황후의 유품과 헌상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북창과 부속건물 모습


정문


다시 중창



한쪽에는 지성관이라는 무도장도 있다.


검도, 유도 등을 수련하는 곳

종교와 무술, 군사의 합치를 보여주는 곳


에도시대 요요기의 촌락을 설명하는 안내문


밖으로 나온다


나오는 길


잘 보이지 않지만 요요기역의 개통으로 메이지신궁 북참도가 열린 것을 기념해 육군대장이 쓴 기념비라고

하야시 센주로가 쓴 것인데 이 양반 33대 총리대신까지 했다.


요요기역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