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바닥으로 문질러 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 거리다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 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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