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는 것들을 위하여
- 도종환
작아지는 우리의 정신을 위하여
깊은 밤 가장 큰 소리로
너는 내게 온다.
이기지 못한 것들 거대하게 남겨둔 채
바람벽 안 안온함 속에 숨어들어
어깨에 휴식과 온기를 묻히려 할 때
안개 속에서
벌판 끝에서 맥박 속에서
보도블럭 위에서 등불 밑에서
거침없는 소리로 너는 달려온다.
잔혹한 문자들을 빼고 더하다
가느다란 손끝에 꽈리처럼 잡힌
물집을 터뜨리며
골목 골목 다니며 노래를 부르며
외롭다고 말하며 답답하다고 말하며
너는 우리의 이름을 찾는다.
작아지는 것들을 위하여
작아지는 것들을 위하여
우리를 가볍게 무찌르던 적들이 모두
차광막을 내리고 평온하게 돌아간 밤
야광시계의 분침 사이를 전전하며
시간이 갈라 세우는 이분법을 무시하며
너는 노래로 살아서
비겁하지만
그러나 비겁하지 아니하기 위하여
그러나 비겁하지 아니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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