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6차

폭설의 간사이 - 7일 오쓰6 (사이교지西教寺1)

同黎 2014. 7. 2. 17:54



사카모토역에서 사이교지(서교사)까지는 걸어서 20분 이상 걸리고 오르막이다. 과감히 택시를 탄다.

사실 사이교지(서교사)는 미리 알았던 곳은 아니다. 한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 오쓰시 역사박물관에 갔는데 거기서 사이교지의 명보라는 도록을 샀다.

그래서 존재를 알았고 꼭 와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이 총문은 아케치 미츠히데의 사카모토성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이교지는 아케치 미츠히데와 관련이 깊다.



총문 안에는 여러 개의 탑두가 늘어서있는데 모두 등록문화재이다.

메이지시대에 일괄적으로 지어진 듯 비슷하게 생겼다.


일직선으로 난 길을 올라가면 이렇게 막혀있는 문이 나온다.


표석


사이교지(서교사)는 현재 천태진언종의 총본산이다. 본래 도량은 쇼토쿠태자가 창건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근거는 없고 10세기 원삼대사 낭원이 창건한 것이 초창이라고 생각된다.

15세기 무로마치시대에 천태종의 승려였던 진성이 부흥시켰다. 진성은 천태종의 밀교화에 반대하고

아미타불을 중시하고 염불을 중시하는 듯 좀 더 정토종스러운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율과 염불이라는 두가지 중점을 가지고 천태진성종을 창종한다.

이후 사이교지는 오다 노부나가의 엔랴쿠지 공격 때 같이 소실된다.

그 후 재건되는데, 히에이잔 정복 후 사카모토의 영주가 된 아케치 미츠히데의 후원에 힘입은 것이다. 



이곳은 바로 종조 신세이(진성)의 무덤


문에는 문장이 새겨져 있는데 누구 것인지는 모르겠다.


거대한 대사전

무덤을 겸한다.


들어갈 수 있나 보는 중


어쨌든 여기서는 비와호가 잘 보인다.


멋있다


종조대사전 당문


기념사진


표석들


대사전 정면


누구 문장이지...



안으로 들어간다.

신세이의 목상이 안쪽에 모셔져 있단다. 사진만 볼 수 있다.


자섭은 그의 시호이다.

잠깐 쉰다.


불단 부럽지 않은 화려한 장식들


대사전에서 바라본 당문


그의 동상


석탑


이제 본당으로 간다.

중요문화재인 본당은 에도시대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전형적인 에도시대의 건물이다.



본당 뒤편의 객전

모모야마시대의 장식성이 강한 건물로 중요문화재이다.



이따 들어가기로 하고 일단 밖에서 이렇게 넘겨본다.


본당 내부도 찍었다 ㅋㅋ


본존인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다른 절에서 모셔온 것이라고 하며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안이 정말 화려하다. 어떤 스님이 정신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사이에 찍었다.


본당 처마


문에는 천황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한켠에는 전국시대 무장들의 묘가 있다고 한다. 다 잘 모르겠고 아케치 미츠히데의 묘가 눈에 띈다.


아케치 미츠히데와의 인연에 대한 설명문


그의 일족의 공양탑


저 길쭉한 비석이 바로 아케치 미츠히데와 그 일족의 무덤이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혼노지의 변을 통해 오다 노부나가를 죽였지만 결국 히데요시에게 패하여

도망가던 중 유랑무사에게 상처를 입고 자결한다. 그 목은 묻혔다고도 하고 이 곳 사카모토까지

가져왔다고도 하는데, 하여튼 나중에 그의 목이라고 하는 것이 3개가 나왔지만 모두 가죽이 벗겨지고

부패가 심해 뭐가 뭔지는 몰랐다고. 여튼 그의 시신과 죽임당한 일족의 시신은 수습돼 사이교지에 묻혔다.

역적의 시신은 수습도 못하는 조선에 비하면 그나마 관대한 것일지도.

여기서 아케치 미츠히데의 무덤을 찾을 줄이야...


무덤 전경


안내문

매년 제사도 지내준다고 한다.


또 이런 인연이 있을 줄이야...


무덤 옆의 석등롱


너머로 객전도 보인다.


이제 종루를 지나서 안쪽 방장과 객전을 보러 간다.



사이교지의 객전 입구. 여기서부터는 돈을 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