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8일 - 오카야마2 (키비츠신사吉備津神社2·후젠인普賢院)

同黎 2016. 7. 16. 01:57



워후

셀카 찍으려다 실패


본전 뒤편으로는 바로 이렇게 긴 회랑이 연결된다.


퍼온 사진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엄청나게 긴 회랑이다.

전국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오카야마현 지정문화재이다.


회랑을 따라 여러 섭말사들이 연결되어 있는 형식


신기하다. 이런 것이 있는지는 몰랐다.


여러모로 독특한 형식이구나


이렇게 내려가다 보면 


문이 하나 보인다.


잘 보이진 않지만 입구의 북수신문과 대칭을 이루는 남수신문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무로마치시대의 작품


수신문을 지나면 이렇게 또 회랑이 연결되고


우리가 지나온 회랑


춥다


회랑 옆으로 연결된 회랑과 다른 신사가 보인다.


가는 길에 보이는 신사 하나


일본의 칠복신 중 하나로 풍어의 신인 에비스를 모시는 신사


그렇게 오래되진 않은 건물인 듯


밖에서 본 회랑


남수신문과 회랑


곡선이 아름답다.

하세데라의 회랑을 생각나게 한다.


옆에서 본 회랑


같이 내려오는 나와 심희곤


다시 회랑 안으로 들어간다.


날씨만 좋았다면 이 곡선을 잘 살려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텐데

뭐 아무리 그래도 사진은 눈을 못 따라간다.


기념사진


또 한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다.

일단 사진 오른쪽의 허름한 신사는


조령사라는 신사로 누구를 모시는 지는 잘 모르겠고


도리이가 서 있어서 저 위에 신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저길 올라가지는 못했는데


올라갈 걸 그랬다.


이 위에는 암산궁(岩山宮)이라고 하여 이 지역의 토착신을 모시고 있단다.

원래 키비츠신사는 본사 본전에 해당하는 정궁과 아버지를 모신 본궁, 부인을 모신 내궁,

아들을 모신 신궁, 토착신을 모신 암산궁의 5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 하나에 해당한다.


계속 길을 간다


정말 끝없이 이어지는 회랑

전체 360미터라고 한다


가는 길에 보이는 현판


대중적인 3가지 신사

즉 가스가신사, 아마테라스를 모신 대신궁, 그리고 하치만신사이다.


나란히 놓인 세 신사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신사들이다.


한쪽으로 가는 회랑이 막혔다.


신께 바치는 공물을 요리하고 마련하는 어공전이다.


이제 다시 쭉 내려간다.


여기서 꺾어져서 다시 가도 


가니 또 막혔다.

도리이만 보인다.


보아하니 길이 나면서 원래 신사로 가던 길이 끊긴 것 같다.


또 다른 길로 들어서니


본궁사라는 신사가 나온다.


여기가 바로 오궁 중 키비츠히코의 아버지인 7대 고레이천황을 모시는 곳이다.

원래 다른 곳에 있던 부인을 모신 내궁과 아들을 모신 신궁도 합사했다고 한다.

신사와 사찰의 땅을 강제로 줄이던 메이지시대의 일이다.


또 다른 길로 나가니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이 곳이 일본의 오래된 노래집인 고금와키집에 나오는 호소타니가와의 유적이라는 비석이다.


다른 말사는 길로 인해 밖으로 나가있다.


잘 보면 신사 건물을 받치고 있는 돌 사이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용을 모신 신사인데 물이 많으면 이렇게 된단다.


회랑의 끝에 다다른 우리들


뒤편으로 이런저런 건물과 비석만 보인다.


본궁사의 뒷모습


이제 다시 뒤돌아간다.


나란히 걸어가는 동기


가는 길 회랑 밖 정원에 놓인 석등


절묘하게도 만들었다


빨간 우체통


한국에는 해방 전에 쓰던 것인데 여기서는 아직도 쓰고 있다.


다실 형태로 만들어 놓은 작은 쉼터


밖에서 본 회랑의 모습

고무레 정(丁)자의 아래쪽 부분에서 본 모습


여기에는 어부전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이다


에도시대 건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솥의 끓는 소리로 점을 치는 키비츠신사 특유의 의식이 진행되는 곳이다.


몰래 찍은 의식을 행하는 신관


의식의 모습



제단의 모습

가마에 찜통 바구니를 두고 그 가운데 쌀을 넣고 끓이는 상태에서

솥이 울리는 소리의 강약과 장단으로 길흉을 점치는 행사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시 온라에 대한 전설이 있다. 키비치히코가 온라(우라, 운라, 温羅)를 죽였지만

그 목은 여전히 가끔씩 신음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13년 동안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이 머리를 키비츠신사의 부뚜막 아래에 묻어 놓았는데

꿈에 온라가 나타나 자신의 부인에게 신사의 음식을 마련하는 역할을 시켜줄 것을 청했고

이를 이루어주자 그의 소리는 가라앉고 온라는 길흉을 점쳐주는 존재로 변했다는 것이다.


실제 온라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의문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도래인이라는 설이 많다고 한다.

이즈모 출신, 규슈 출신, 백제의 왕자, 가야 출신, 신라 출신 등 여러 설이 있다.

위의 사진은 실제 그의 근거지로 지목되는 귀신의 성이라는 이름의 키노성(鬼ノ城)이다.


이 성은 한반도식 축조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의외의 곳에서 도래인을 만난다. 그렇다고 키비치히코가 야마토정권 출신이라는 증거는 없다.


사진 찍는 이행묵


다 찍었다


셀카질


계속

코 이상하다


본전으로 이어진 회랑의 모습


멀리 본전이 보인다.


어떻게 이런 회랑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이제 회랑을 벗어나서


다른 쪽으로 난 도리이를 통해 밖으로 나간다.


이 밖으로는 신사의 정원에 해당하는 동시에 원래 신사의 일을 맡아보던

별당직 사찰이었던 후젠인(보현원, 普賢院)이 마구 섞인 공간이 나온다.


사진의 가운데는 후젠인의 본당이며 옆에는 우가신사이다.


우가신사는 우가신을 모셨는데 우가신은 변재천과 동일시된다.

즉 신도와 불교가 애초에 구분이 없었던 공간인 곳이다.

 

여기서 멀리 키비츠신사의 본전이 잘 보인다.


사진 찍자


기념사진


우가신사를 가본다.


넓은 연못

신사의 소유라고 한다.


우가신사


사찰의 변재당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

건물은 오래지 않은 것 같다. 아마 앞에 배전에 해당하는 공간이 있다가 철거된 듯하다.


이제 다리를 건너


후젠인으로 들어간다.


무덤으로 생각되는 석탑들


멀리 보이는 인왕문


경내를 살펴보는 중


종루와 석탑


후젠인 본당

원래 키비츠신사를 관리하던 별당직 사원은 금강사라고 불렸다.

위치도 여기서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에도시대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지금 건물은 거의 다 에도시대의 건물로 고야산진언종에 속해있다.


절 마당 석조에 고인 빗물


방장의 모습


인왕문 모습


원래 신사뿐만 아니라 이 지역이 중요한 교통로였기 때문에 역참마을로도 번성했다고 한다.


후젠인 쪽에서 아름다운 노송을 연못가에 심어 놓았다.


몸을 한껏 연못가로 늘어트리고 있다.


장관이다


기념사진


기념사진2


이제 역으로 가는데 순국열사비가 보인다.

야스쿠니신사로 간 이 지방 사람들을 기리는 비석이란다.


키비츠신사가 있는 나카야마에는 여러 유적이 있고 흑주교같은 신생종교의 본부도 있다.


주차장을 통해 나가는데 동상이 하나 보인다.


누구지


누군지 보니 일본 29대 총리대신으로 1931년 말부터 1932년 5월까지 재임했던

이누카이 츠요시(犬養毅)의 동상이다. 오카야마 출신이었고, 게이오 출신으로 나름 일본의

자유민주주의자, 입헌주의자였으며 김옥균, 캉유웨이, 쑨원 등을 지지했던 인물이다.

물론 제국주의자임에는 다름이 없지만. 특히 만주사변을 정당화했다.

뭐 그보다는 소위 5.15사건으로 유명한데, 이누카이 츠요시가 해군 군축조약을 맺자

1932년 5월 15일 이에 불만을 품은 해군 장교들이 총리대신인 이누카이를 습격해 총살시켰다.

그럼에도 당시 여론이 이들을 지지해 이들은 큰 벌은 받지 않았다.


나름 오카야마 출신이라고 이 지역의 위인이 되어 있는가 보다.


멀리 본전이 보인다.

이렇게 보니 꽤 크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차가 저렇게 쪼그맣게 보일 뿐이니


신사의 지붕은 나름 산과 어우러지고 있다.


다시 역으로 가는 길


나카야마의 풍경을 담아본다.


이 산도 그대로 신체산이 되어 고대 산악 숭배의 증거가 되고 있다는 데 거기까지는 발이 닿지 못했다.


길을 건너


다시 도리이를 지나 역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