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14일 - 이세3 (신궁징고관神宮徴古館1)

同黎 2016. 10. 12. 03:15



버스를 타러가는 길 일장기가 다시 눈에 띈다.


어제의 후유증으로 쩔어있는 심희곤


억지 웃음


그래도 다 같이 사진


죽겠다


미에버스는 보통 이세신궁 외궁-신궁징고관-내궁을 이어주지만

신궁징고관은 한 차례씩 걸러 내려준다. 그러니 버스 시간 확인이 필요

버스에 있는 귀여운 쇼핑백


내리면 갑자기


제국주의풍의 양식 건물이 딱하고 나타난다.


이것이 이세신궁의 박물관인 신궁징고관(神宮徴古館, 진구쵸코칸)이다.


여기가 우리가 내린 곳

다시 여기서 버스를 타야 하니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정면에서 본 신궁징고관


파란 하늘


신궁징고관은 메이지시대 황족들을 중심으로 이세신궁을 신격화시키는 신원회라는 협회를

만들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이세신궁 근처에 종합 박물관을 세운다는 목표를 가지고 먼저 외궁

앞에 농업관을 짓는데 이것이 일본 최초의 산업박물관이다. 이후 이들은 외궁과 내궁 사이에

광대한 땅을 매입하고 역사박물관으로서의 신궁징고관을 계획하여 1905년 농업관을 이축하고

이듬해에 신궁징고관을 건립한다. 이어 지금도 우익 꼴통의 극치인 황학관대학이 세워지고

신궁문고까지 이전되면서 이 종합박물관 계획은 어느 정도 갖추어진다.

  

그러나 우리의 아메리카 천조국은 이를 가만히 두지 않으시고 1945년 우지야마다 대공습으로

신궁징고관도 건물이 부서지고 수장품의 90%를 날려먹게 된다. (좀 미리미리 옮겨두지)

그리고 1950년대 복원되어 지금은 징고관과 농업관이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끼어들기


사진 찍어라


든 건물은 멋있다.


심희곤도


숙취


원래는 정면에 커다란 돔이 있었다고 하는데 공습으로 파괴되어 그냥 박공으로 대충 마감했다고

우지야마다 대공습은 아예 이세신궁을 노리고 한 것이다.


건물 측면


정면


다른 측면


나라박물관 설계자와 똑같은 설계자라고


저쪽이 신관

저기로 나온다


현관에서 바라본 정원


여기가 따뜻하긴 한가보다.


정면

일장기라니


돈 아낀다고 안 들어가시겠다는 분


든 입장


입장료는 500엔

농업관, 미술관까지 하면 700엔이지만 뭐 그렇게까지야


버스 시간표


이건 캔 버스 시간표

이건 아마 패스가 안 되고 타는 곳도 다르다.


들어가면 야마토히메의 동상이 보인다.

이건 쫌 이따 살펴보기로 하고


천정의 모습


신궁징고관에는 이세신궁 소유로 되어 있는 문화재 중

서적류를 제외한 봉납품과 식년천궁으로 철하된 신보들을 보관하고 있다.

궁 125사에 올리는 신보류가 모두 714종 1578점이고 이걸 모두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만든단다...

미친


제의 때 쓰는 횃대들


여긴 내궁 정전의 빗장이 전시되어 있다.


1년 중 가장 큰 제사인 신상제에 올리는 신찬


신궁대마라고 불리는 나뭇가지로 만든 부적


5월과 8월 풍작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에 사용되는 도구들


안내문


내궁의 신이 입는 옷을 갈아입힐 때 올리는 제물


정성이다 진짜


이 밖의 각종 폐백


한쪽에는 내궁 정전 정면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정전 모형


지붕은 초가이고 내부에는 뭐 별 거 없다.


역시 신찬을 올릴 때 불을 지피는 도구


매일 올리는 신찬


이세신앙이 극도에 달했을 때


전국 각지에서 이세신궁을 참배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 이세신궁을 참배하는 참배도이다.



안내문


외궁의 모습


에도시대에는 1년에 10만 명이나 참배를 하고

농민들이 영지를 이탈해 문제가 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이세신궁에는 쇼와시대에 현 천황 탄생을 축하하여 55명의 화가들이

봉납한 이른바 국사회화라는 역사화도 봉납되어 있다.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스사노오의 행패를 피해 숨었다가 다른 신들에 의해 나타나는 모습


안내문


천손강림의 모습

니니기가 천양무궁의 신칙을 받아 내려온다는 모습이다.


안내문


이건 이세신궁의 자리를 처음 잡았다는 야마토히메가 이세신궁을 봉납한 모습


안내문


1층에는 이세신궁 내궁의 모형이 있다.


역시 4겹의 담으로 둘러쌓인 내궁


외궁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지만 동서보전의 위치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측면에서 본 모습


두 개의 문


정전과 동서보전의 모습


외궁은 보전이 정전 앞에, 내궁은 뒤에 위치한다고 한다.


뒤편의 문들


한쪽에는 과거 이세신궁 정전의 목재가 있다.


지붕 최상단에 놓이는 카츠오기라는 목재로 내궁 정전은 10개, 외궁 정전은 9개를 놓는다고.


이 동상은 이세신궁 자리를 잡았다는 야마토히메의 상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제10대 천황인 스진천황 때 강력한 역병이 들자 궁궐 안에 모시던

삼종신기 중 거울에 해당하는 야타노카가미(팔지경, 八咫鏡)에 모신 아마테라스의 힘이

너무 강력하다고 여겨서 이를 궁중 밖에 모시기로 했다.

이후 대대로 황녀들에 의해 모셔지다가 제11대 천황인 스이닌천황이 자신의 장녀

야마토히메(倭姬命)에게 맡겼는데 그녀에게 아마테라스의 신탁이 내려 좋은 곳을

찾으라는 명을 내렸고 14번째 자리잡은 위치가 지금의 이세신궁이라고 한다.

그리고 21대 유라쿠천황의 꿈에 아마테라스가 자신의 식사 시중을

들기 위해 토요우케를 부르라고 해서 지은 것이 현재 외궁이다.


유물 전시실에는 거대한 스에키 토기가 전시되어 있다.


규슈 후쿠오카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하며 진무천황이 있었다는 규슈지방에서

출토된 것이라 황실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져 기증되었다고 한다.


중요문화재이다. 영략없는 가야나 백제 토기


안내문


한쪽의 그림


내외 양궁을 천궁할 때의 의식을 그린 그림


안내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칼도 많다.


타치


가마쿠라시대의 것으로 명은 요시노부


안내문


그 칼집과 장신구


역시 타치

여러 번 바꿔 끼웠는지 아래 부분에 구멍이 많다.


칼집



중요문화재 타치

가마쿠라시대 명 토시타다


안내문


그 칼집


손잡이 부분


타치


명 이즈미노카미라이킨미치


시대도 불명이고 내궁에 봉납되었다는 사실만 있다.


안내문


뭔가 칼날이 시퍼렀다.


타치 명 단바노카미요시미치



음 일본도의 세계는 어렵군


그냥 기록을 남기는 수준으로만



칼 진짜 많다


같은 타치


안내문


칼집


복잡한 장식들


장관일기라는 문서


역대 신궁의 재산에 대해 기록한 문서이다.


역대 천황들이 와카를 지어 올린 시권


중요문화재이다


천황과 귀족들의 친필임을 적은 확인장


안내문


2층에 있는 목상

전국시대 식년천궁이 중단당할 위기해 쳐해있을 때 그 부흥을 위해

노력했던 케이코인 세이쥬 상인이라는 인물의 상이다.


60회 식년천궁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신궁 근처의 사찰 이름이기도 한 이 케이코인은 신궁 관리에 큰 역할을 한 임제종 사찰이었으나

신불분리로 현재는 그냥 조그만 사찰이 되었단다.


케이코인 문서에 관한 안내문


다음 전시관에는 봉납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도막부의 문장이 그려진 함


천황가의 문장이 그려진 함


마키에 기법이 사용되었다.


도구



역시 쇼군가의 문장이 그려진 상자


화려하다


막부로부터 내려진 문서들


케이코인 문서이다


현재 중요문화재로 지정


주인장


해석본


주인장 상자


화려하다


아마 막부에서 보낸 듯


소개되지 않된 유물들 모두 중요문화재다.

헤이안시대의 태도


이세신궁의 명소를 그린 그림

가마쿠라시대


가마쿠라시대의 와카자시


에도시대의 지구의


그리고 천구의

일본의 독자적 역법을 만든 시부카와 하루미(渋川春海)라는 인물의 유물이란다.


주인장 깃발

이세 주변에서 해외무역에 진출했던 카도야가문의 자료이다. (角屋家貿易関係資料)


금동제투조금구

고훈시대의 유물로 시즈오카현에서 발굴되었다.


헤이안시대에 필사된 서경의 상서


대대로 외궁의 신관직을 물려봤던 와타라이씨(度会氏)의 계보도


해외무역의 흔적을 알려주는 아시아 항해도


여기서부터는 제59회 식년천궁 당시 전국의 예술가들이 봉납한 예술품이다.

제59회 식년천궁은 1953년에 이루어졌는데 사실 2차 대전으로 계속 미뤄졌다고 한다.

비용 걱정 때문에 전국의 예술가들이 예술품을 봉납해 이것을 팔아 비용을 마련하려 했지만

비용은 마련됐고 미술품은 그냥 소장품이 됐다...


다완



단풍을 그려 넣었다.


인장


인장을 찍은 상태


도자기


조각 작품


서양화


동양화


일본 채색화

생각보다 유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