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6일 이카루가3 (호류지法隆寺3·주구지中宮寺)

同黎 2018. 5. 27. 20:26



이제 서원가람 밖으로 나간다.


이 옆으로는 성령원과 동실이 있다.


성령원 정면


삼경원과 마찬가지로 과거 승방이었던 건물인데 앞부분은 소실되었던 것을 가마쿠라시대에 재건하여

쇼토쿠태자의 상을 모셨고 뒷부분의 승방은 동실이라는 이름으로 나라시대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성령원과 동실이 연결되어 있음에도 각각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성령원 안내판


내부에는 쇼토쿠태자의 섭정형 상과 그 권속들이 모셔져 있다.


성령원이 처음 만들어진 1121년 만들어진 상이다.

쇼토쿠태자상 중 대표적인 상으로 국보이다.

내부에서는 쇼토쿠태자의 염지불로 전해지는 불상이 발견되었다.


협시인 야마시로오에왕

성덕태자의 장남


동생 에구리왕


동생 소마루왕


스승인 고구려 승려 혜자

모두 국보이다.


뒤편에는 쇼토쿠태자가 시텐노지에 모셨다던 여의륜관음상의 모각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모두 봄에 3일 정도만 공개하는 비불이다.

아직 인연이 안 되어 호류지를 또 가야하는 이유를 남겨놨다.

 

신불영장 납경 중

호류지는 여기서 한다. 하긴 본존이 사실상 성덕태자니


성령원 뒤편

살짝 지붕 높이가 차이나는 곳이 동실이다.


동실 옆에 있는 처실


항상 이름이 희한하다고 생각한다.

헤이안시대의 건물로 중요문화재


안내판


이제 성령원을 뒤로 하고


대보장원 입구로 간다.


이 건물은 강봉장

호류지의 보물창고이다.

나라시대의 건물로 국보이다.



한쪽에 있는 마옥


에도시대 건물

보기 드문 아무것도 아닌 건물


안에 마부도 있다.


식당과 세전

식당은 나라시대 국보, 세전은 가마쿠라시대 중문


식당은 나라시대 귀족의 주택을 기증받은 것으로 사무소로 쓰다가 헤이안시대부터 식당으로 썼다고 한다.

 

세전

이렇게 두 개의 건물을 나란히 두는 것은 쌍전이라고 하여 나라시대의 건축양식이라고


안내판


작은 정원


멀리 보이는 건물은 상어당

서원 대강당 뒤편에 지은 건물이라 평소엔 비공개이고 가을에만 3일 공개한다.


텐무천황의 아들인 토네리친왕이 발원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지금 건물은 가마쿠라시대에 재건한 것으로 중요문화재이다.


일본 특유의 담

사다리꼴로 지었다.


대보장원

일종의 박물관이다.

가운데 건물이 백제관음을 모신 백제관음당

이곳 말고 전시장 겸 수장고 역할을 하는 건물이 있는데 대보장전이라고 한다.

이름이 비슷한데 구 전시장으로 봄, 가을에만 공개한다.


입구에는 호류지 금당 벽화 모사본이 걸려있다.


금당벽화 진본은 중요문화재

모사본과 소손 전 촬영 사진 유리건판까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관음


허공장보살이라고도 알려져 있었다.

본래 금당에 있었다.


아름다운 불상으로 이미 많이 설명했기에..

다만 백제에서 만들었다는 것은 사찰에 전해지는 전승이고 100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다.

아직도 연구가 더 많이 되어야 하는 불상이다.

엄청나게 대단한 불상임은 분명하다. 느낌도 기교도


국보 몽위관음상

키가 껑충한 금동불로 악몽을 없애준다는 아스카시대 불상이다.

국보


지장보살상

국보 헤이안시대

본래 오미와신사의 신궁사에 모시던 것으로 폐불훼석 때 피난온 것이다.


옥충주자

전승으로는 스이코천황의 것이라고 한다.

비단벌레 날개를 금속 장식에 넣어서 옥충주자라고 부른다. 삼국시대 금동장식에 종종 쓰이던 기법이다.

현재 백제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설이 강하지만 역시 정확한 것은 아니다.

안의 불상은 13세기 이미 도난당한 것을 이후 다른 것을 봉납한 것이다.


복원모형

사방이 그림이 남아있는데 석가여래의 본생담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전 타치바나부인의 주자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부인이자, 쇼무천황의 황후인 코묘황후의 어머니 것이라고 하는데

시기는 오히려 아스카시대로 앞선다.

국보


구면관음상


당나라의 것으로 추정되는 백단상으로 국보이다.


육관음상

아스카시대의 목조불상으로 중요문화재이다.

육관음으로 전해지지만 당시에는 밀교의 육관음 개념이 전해지기 전이기 때문에

그냥 여러 보살상으로 생각된다.


중요문화재인 일광삼존불

한반도 전래상으로 추정되며 중요문화재


범천상

나라시대의 것으로 중요문화재


백만탑

나라시대 주요 사찰에 배치한 소탑이다.

중요문화재


연지도


사리전 불단 뒤편 병풍

중요문화재


오존상

중요문화재


공작명왕상

중요문화재


이제 동원가람으로 간다.


동대문

나라시대의 건물로 국보이다.


동원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담장도 모두 중요문화재



동대문 정면


반대편에서 본 동대문


동대문을 나서면 멀리 몽전이 보인다.


여기의 담장과 문도 전부 중요문화재이다.


축지병이라고 하여 판축기법으로 만든 담이다.


문화재에 낙서하지 말라는 안내판이 써 있다.

중요문화재라는 안내부터 해라


이게 다 문화재다


몽전을 둘러싼 회랑과 담장, 문도 중요문화재


동원 입구 사각문


종루와 회랑


종루는 가마쿠라시대의 것으로 가장 오래된 일반적 형식의 종루이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표시라도 좀 해놓지


회랑은 나라시대의 건물로 중요문화재


몽전

쇼토쿠태자의 사당


뒤편에는 회전과 사리전

성덕태자가 모셨다던 사리와 성덕태자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을 모신 건물

뒤편 전법당의 배전 역할을 한다.

가마쿠라시대, 중요문화재


몽전

쇼토쿠태자의 궁궐인 이카루가궁터로 쇼토쿠태자의 자손들이 모두 제거된 후 황폐화되었는데,

나라시대의 승려 교신(행신)이 이를 한탄해 그를 위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8세기 초 건물로

생각되고 있으며 다만 가마쿠라시대에 대수리가 되면서 지붕의 경사가 급해졌다고 한다.

나라시대 지붕의 모습은 많이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된다.

안에는 쇼토쿠태자의 초상조각이라고 하는 구세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다.


안내판


지붕의 모습


꼭대기의 보주


회전과 사리전


회전


사리전


측면


사리전에서 본 몽전


내부 구세관음을 모신 주자


구세관음상


도젠(도전)의 상


소조상으로 헤이안시대 초기의 작품이다. 호류지의 중흥조 중의 하나이다.

생전, 혹은 사후 직후의 상으로 국보이다.

 

반대편엔 교신(행신) 상


나라시대의 건칠상으로 국보이다.


특이한 용모가 유명하다.


다른 쪽은 성덕태자상


몽전 측면


회랑의 모습


회랑의 창살


예당


중요문화재

가마쿠라시대


이제 뒤편으로 간다. 사리전 뒤편의 전법당

나라시대 건물로 중요문화재이다.


이제 뒤편의 주구지로 간다.


주구지 입구


주구지(중궁사, 中宮寺)는 호류지의 비구니사찰에 해당하는 절로 쇼토쿠태자가 자기 어머니의 궁을

절로 삼았다고 전한다. 본래 지금의 자리보다 동쪽으로 400미터의 자리에 있었으나 16세기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그 결과 건축물은 별로 볼 것이 없으나 창건 당시의

것으로 알려진 반가사유상과 천수국수장이 있어 유명하다.



동원 종루 뒤편


본당이 보인다


작은 불당


오사카시립미술관에서 하는 불상조각전 포스터


본당


황실의 후원으로 196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


정면


연못 가운데 있다.


안에는 반가사유상과 천수국수장이 전시되어 있다.


국보 반가사유상


한국에도 한 번 왔던 불상이다.


사전으로는 여의륜관음상이라고 하지만, 미륵보살상이라는 설이 일본학계의 정설이다.

한국의 일본미술사 연구자 중에는 가마쿠라시대 작품이라는 의견이 있다.


워낙 파격적인 형식이기 때문에 이런 의심이 있는 것인데,

이는 주구지가 가마쿠라시대에 갑자기 부흥한 사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상과 천수국수장은 1274~1275년 '재발견'된다. 주구지의 중창 과정에 발견된 것인데

쇼토쿠태자 비실존설까지 맞물려 이 두 유물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 역사학계에서도 이런 의견이 조금씩 제기되는 중이다.


현존하는 천수국수장은 완전한 것이 아니고 극히 일부만 남은 것이다.

본래 쇼토쿠태자의 부인이 태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자수로 높이 2미터, 가로 4미터의 휘장 2개였으며, 명문이 무려 400자가 적혀있다고 전해진다. 본래 9세기 쇼토쿠태자의 일대기를 정리한 <상궁성덕법왕제설>에 존재와 명문 내용이 적혀 있었으나 한동안 잊혀져 있었다. 이후 주구지의 중흥 과정에서 주구지의 중흥조인 승려 신뇨가 호류지 강봉장을 뒤지던 중에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당시 발견된 조각과 가마쿠라시대 복원한 일부 부분을 모아 천에 고정시켜 놓은 상태이다.

다만 7~8세기 자수 작품은 맞다는 것이 물리적 분석 결과이고, 쇼토쿠태자 조작설에서도

<상궁성덕법왕제설>과 일본서기를 의심할 뿐 이것 자체는 크게 딴지를 걸지 않는다.

나는 2번 실물은 본 적이 있다.


문을 나선다

다시 보이는 종루


걸어가는 길


경내 안내도


다시 남대문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라 시내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