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4차 東京, 東北

동일본대탐험 - 6일 니콜라이당ニコライ堂 (도쿄부활대성당東京復活大聖堂)

同黎 2018. 7. 12. 01:37



며칠 무리를 해서 몸살이 났다.

오늘은 천천히 돌아다니기로 한다.


지하철을 타고


오차노미즈 방향으로 간다.


아사쿠사바시에서 환승


JR선으로



여기서 오차노미즈로 간다.


한가한 역


기차를 타고


오차노미즈에 도착


사람들이 붐빈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오차노미즈 솔라시티 플라자

히타치에서 지은 건물이다.


칸다묘진과 유시마성당도 근방


남쪽 출구로 나와 조금 걷다보면 니콜라이당이 나온다.


청동의 푸른색 돔을 자랑하는 니콜라이당


입구


일본 하리스토스 정교회 교단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하리스토스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그리스어

일본정교회는 그리스어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라틴어 발음인 그리스도 대신 하리스토스라는 용어를 쓴다.


성당 문에는 그리스식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니콜라이당(ニコライ堂)의 정식 명식은 도쿄부활대성당(東京復活大聖堂)으로

일본정교회의 최고 본부이며, 동시에 도쿄대주교좌성당이기도 하다.

잠시 정교회의 조직을 살펴봐야 하는데, 정교회는 천주교의 교황청처럼 중앙집권제가 아니라 각자의 교회가 독립하여 자치를 하는 구조이다. 어느 총대주교 산하의 교구가 커지면 자치교회나 독립교회로 분리되고 이들 교회의 지도자는 모두 동등하다. 그래서 동방정교회는 고대 로마제국에서부터 이어지는 5개의 총대교구좌 중 4곳(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좌와 러시아, 조지아, 세르비아 등의 독립총대주교좌, 그리스, 폴란드 등의 독립교회, 그리고 각 총대주교좌 하의 자치교회, 그리고 자치권이 없이 감독을 받는 여타 교구들로 이루어진다. 일본정교회의 경우 러시아에서 선교를 시작하여 러시아정교회 산하의 자치교회로 독립했다. 자치교회이기 때문에 러시아정교회의 감독을 받지는 않지만 영향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래도 러시아가 소련이었을 때 양국관계 때문에 솔찬히 독립되게 움직인 모양. 교구도 도쿄대교구와 동일본, 서일본교구의 3곳이다. 자치권은 커녕 콘스탄티노플 총대교구 산하에 있는 일개 대교구인 한국정교회에 비하면 꽤나 큰 편.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이 터키 땅이 된 후, 러시아정교회의 모스크바 총대교구가 왕 노릇을 하면서 두 총대주교 사이가 나빠져, 콘스탄티노플의 세계총대교구좌에서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맘대로 인정한 일본, 중국,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니콜라이당의 과거 모습

사진에서 보이듯 지금과는 좀 다르다. 돔의 형태도 좀 다르고 입구의 종탑도 훨씬 크다. 관동대지진으로

종탑이 무너지면서 돔을 박살내 1930년대 좀 더 안정적인 모습으로 재건한 것이다. 가뜩이나 언덕 위에

우뚝 서 있어 처음엔 매우 거대해 보였겠지만 현재는 주변이 온통 빌딩이라 그렇지는 않다.


니콜라이당은 일본정교회의 초대 대주교인 일본의 성 니콜라이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본래 명칭은

부활대성당으로 성 니콜라이를 주보성인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니콜라이당으로 너무 유명해져 있다.

성 니콜라이는 러시아 출신으로 홋카이도부터 시작해 도쿄까지 활발한 선교를 한 사람이다. 본인이

이 땅에 뼈를 묻기를 원해 러일전쟁 때도 일본에 있었다고 하며 현재 정교회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일본정교회의 터를 닦았고 성찬예배 기도문을 모두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정교회에서는 준사도, 일본의 사도로 존경을 받는다.

니콜라이당은 그가 1884년 일본에 있던 러시아의 건축가에게 부탁하여 설계한 것으로 일본 최초의 비잔틴식 건축이기도 했다. 건설할 때는 재정 문제 때문에 힘들었고, 또 성당이 언덕 위에 있어 황거를 넘어본다는 우익들의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1891년 갖은 고생 후에 성당은 세워졌다. 이후 관동대지진 때문에 종탑이 무너져 돔을 파괴하고 화재가 발생해 목조 부분이 많이 소실된다. 이후 대대적으로 재건하여 외관의 수리를 하여 지금에 이른다. 도쿄대공습 때에도 미국 그리스정교회의 요청과 교회라는 이유로 공습을 피했다.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피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

입장료는 300엔

기타 예배나 의식이 있을 경우에는 단순 관람은 거부될 수 있다.

대신 경건한 마음의 종교적 참여는 가능하다고


들어가면 보이는 부속건물

러시아인들을 위한 성소가 따로 있다는데 그건가

회관이나 신학원일 수도


입구의 종탑


입구에는 그리스도의 성화가 있다.

십자가는 정교회식 십자가


측면

그리스식 십자가 형태라는데 종탑 때문에 라틴 십자가처럼 보인다.


돔 부분


올려다본 모습


정면


종탑 높이를 많이 깎았다고



들어간다


내부의 모습

전형적인 비잔틴식 성당으로 본당과 지성소를 나누는 이코노스타시라는 벽이 보인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를 재현한 것


기본적으로 천주교 미사와는 달리, 사제와 부제, 부부제 등의 역할이 많고 또 대단히 자주 움직인다.

성찬예배도 기본적으로 모두 서서 보는 것이 기준이 되지만, 여기도 아시아권인만큼 의자가 보인다.


마누알리아라는 촛대

이콘에 공경을 표하고 초를 꽂는 것이 입당의 시작이다.


내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전례가 많이 간소화되고 사제와 신자의 공간이

많이 가까워진 천주교와는 달리 이곳은 아직 공간 분리가 엄격하다.


멀리 보이는 지성소


성인의 이콘


성 미카엘의 스테인드글라스


돔 아래쪽 기둥



이건 성당에서 제공하는 이미지이다.


저 벽 너머에 성체를 모신 곳이 있다.

성직자만 들어갈 수 있다.


전경


의자들


높은 돔


비잔틴식 아치

돔의 무게를 분산시켜 받치는 역할을 한다.


이콘과 촛대


대부분의 정교회 이콘이 촛불의 그을음으로 까맣다.


스테인드글라스


문제 패널로 된 이콘들


밖에서 본 창문


작은 경당이 있다.

이게 러시아인들의 성소인가


묘지일 수도 있겠다.


정면


다른 부속건물


한 때 일본인들에게는 대단한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지금은 빌딩에 묻혀서 다소 안습이 된 감이 있다.


벽체


정뒤편


종탑


어느새 성소보다 높은 건물이 많아졌다.


오차노미즈역이 보인다.

이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