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19일 고야산3 (도쿠가와가영대徳川家霊台·곤고산마이인金剛三昧院)

同黎 2019. 4. 9. 20:01



바로 도쿠가와가 영대로 간다.

이번이 두 번째이다.



도쿠가와가 영대(徳川家霊台, 덕천가영대)는 고야산에 있는 에도막부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2대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영옥이다. 본래 고야산의 탑두인 연화원은 마츠다이라씨 시대부터 도쿠가와가의

보리사이자 숙방이었으며 159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고야산 참배 이후 대덕원이라 개명하고 큰 사찰이

되었다. 이후 대덕원은 다른 탑두사원과 합병되어 이전하였으며 이름을 다시 연화원으로 바꾸었다. 현재는

도쿠가와의 역대 쇼군과 정실, 측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도쿠가와가 영대는 이후 곤고부지 본사의

관리로 넘겨져 살아남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입구


거대한 석축을 지나면


옥단과 문으로 둘러쌓인 영옥이 나온다.

전체가 중요문화재


왼쪽이 이에야스의 영옥


정면


오른쪽은 히데타다의 영옥


역시 중요문화재


닛코만한 건 아니지만 엄청 화려하다.


내부도 화려하다고 하는데 내부 공개는 제한적이다.

이건 이에야스


히데타다


히데타다의 영묘라는 안내문


바로 옆 곤고산마이인으로 간다.



곤고산마이인(金剛三昧院, 금강삼매원)은 고야산의 많은 탑두 중 한 곳이다. 가마쿠라시대 초기에 호조

마사코의 발원으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보리사 역할로서 선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되었다고

하며 개산조는 일본 임제종 교조인 에이사이(영서)라고 한다. 이후 가마쿠라막부 3대 쇼군인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고 쇼군가의 보리사로 삼았다. 이후 호조 마사코가 이곳으로 출가하며

자식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일당, 관음당, 다보탑 2기와 호마당, 경장 등을 세웠으며 가마쿠라막부와

깊은 관련을 가진 사찰이 되었다.

이후 콘고산마이인은 고야산 중에서도 크고 중심적인 사찰로 성장했고 곤고부지와 별개의 사찰로

밀교, 선종, 율학을 겸하는 선종사원으로 경영되었으며 정토종의 영향도 받았다. 이후 선종 부문을

교토 사이호지에 이전하면서 밀교사찰이 되었지만 상당기간 율종의 영향도 받았고, 호조가의 후원도

받았다. 그러나 가마쿠라막부가 쇠퇴하며 절도 쇠퇴해 에도시대 초기에는 곤고부지의 탑두도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화재와 타 사원간의 합병으로 고야산에는 의외로 오래된 건물이 적다.

그러나 곤고산마이인의 그 독특한 지위 때문에 가마쿠라시대 초기에 지은 건물이 남아있으며 이후

무로마치~에도 초기에 지은 건물들이 대부분 남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얼마 전부터 배관료로 1인당 300엔을 받는다.


국보 다보탑


호조 마사코가 세운 것으로 시대와 시주자가 명확한 중요한 탑이다.


생김새로 우뚝하고 아름답다.


1층에서 2층으로 급격하게 탑신이 줄어드는 것이 가마쿠라시대의 특징


안내문


일본 삼대 다보탑


다보탑 내부

오지여래가 모셔져 있다.

가마쿠라시대, 중요문화재


이 외에도 중요문화재가 많다.


객전과 대소는 에도시대 전기의 건물로 중요문화재이다.


현관의 모습


밀교사원은 방장이나 고리 대신 객전, 서원, 대소 등의 용어를 쓴다.


경장

역시 호조 마사코가 시주한 건물로 교창조 건물이다.


중요문화재

이건 국보로 지정해도 되지 않나

안에는 고야산에서 자체적으로 찍어낸 고야판 대장경이 안치되어 있다.


안내문


진수사인 사소명신사 본전

무로마치시대 건물로 중요문화재이다.


안내문


곤고산마이인 팜플렛

입장권


이제 산문으로 나간다.


산문

에도시대 후기의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