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제

부사(釜師)의 역사 1. 아시야와 텐묘

同黎 2020. 2. 8. 16:14

부사(釜師)의 역사

*첨부 사진은 2016년 미호뮤지엄 <찻자리의 주인 차노유 가마> 전시도록, 2014년 센오쿠하코쿠칸 <차노유 가마의 미>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시야(芦屋)와 텐묘(天命)

부사(釜師가마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59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지배 하의 모모야마 시대그러나 이 시기는 부사가 다른 금속 주조 공인과 분리되어 예술가로서의 성격을 부여 받은 때이고 실제로는 중국에서 차문화가 급격히 유입된 가마쿠라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임가마쿠라시대 후기인 14세기부터 차를 위한 솥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곳은 서일본의 아시야(芦屋)와 동일본의 텐묘(天命) 2이 2곳이 이후 모둔 일본 부사들의 조상이 되는 고장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차가마(茶釜) 9점 중 아시야가마가 8텐묘가마가 1.


1-1. 아시야(芦屋)

현재 후쿠오카현 아시야정(芦屋町)에 위치중세 대규모 무역항으로 일찍부터 중국에서 차문화가 수입이곳을 통치하던 우츠노미야씨(宇都宮氏세력이 천황의 명을 받아 차솥을 처음 생산했다고 전함현재 사철 퇴적층은 확인되지 않아 아마 수입되는 철로 높은 질의 차가마를 만들었다고 추정. 15세기까지 그 명성이 이어짐.

이곳에서 만드는 가마는 모두 진형부(真形釜)라고 부르는 차가마의 기본형이렇게 이름이 붙은 이유는 아마 당나라 육우의 다경(茶經)에 충실하게 재현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정다경에 정해진 대로 풍로에 거치하여 쓰도록 만들어졌고 두께는 얇으며 풍로와 접합면을 덮는 날개가 붙어 있었음.

그러나 1551규슈의 패권을 놓고 둘러싼 오우치(大內)와 모리(毛利세력의 전쟁으로 인해 아시야가 초토화되면서 모든 공방이 파괴되고 장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짐이 후 아시야의 장인들이 정착한 곳에 아시야라는 지명이 생기고 정세가 진정될 때 까지 소규모 세력을 이어나가다 에도시대 교토로 통합되며 모두 단절현재 아시야에는 작은 기념관만 남아 있음

고아시야 신나리가마(진형부)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중요문화재

고아시야 사군자문 신나리가마(진형부)

오니시 세이에몬미술관 소장

고아시야 노송문 신나리가마(진형부)
교토 쇼코쿠지 소장
오다 노부나가 소장품

고아시야 스미요시도 신나리가마(진형부)
개인 소장

고아시야 신나리가마(진형부)
교토 쇼코쿠지 소장
중요문화재

아시야 가마의 특징인 매끈한 표면과 귀면(鬼面) 환부


*치쿠젠 아시야(筑前芦屋): 본래의 아시야 가마를 생산하던 곳. 1551년 이전 가마를 고아시야(古芦屋)라고 부름

*에치젠 아시야(越前芦屋): 현재 후쿠이현 후쿠이시 인근지방 집단들은 본래의 아시야가마보다 외부 표면이 거칠어지고 모양이나 문양이 투박해지는 특징이 있음.

*이세 아시야(伊勢芦屋): 현재 미에현 이세시 인근가장 마지막까지 활동한 지방 아시야가마 집단. 18세기 초 교토로 상경하며 단절.

*하카타 아시야(博多芦屋현재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아시야에서 이전해온 집단들기록은 전하나 실물은 많지 않음.

*이요 아시야(伊予芦屋): 현재 에히메현 토온시 일대솜씨가 뛰어났다고 전하며 무로마치시대 후기에는 교토 가마 다음 간다고 평가.

*이와미 아시야(石見芦屋): 현재 시마네현 미사토정 일대사철이 풍부하게 났기 때문에 좋은 솥을 만들었다고 전함.

*히젠 아시야(肥前芦屋): 현재 사가현 사가시 일대의 장인 집단.

*하리마 아시야(播磨芦屋): 현재의 효고현 히메지시 인근본래 아시야가마보다 입이 넓어지고 무늬는 더욱 뚜렷해지는 특징이 있음.


1-2. 텐묘(天命)

텐묘는 현재 도치기현 사노시에 있는 작은 마을같은 발음의 天明天描로 표기하기도 함이곳은 가마쿠라시대에서부터 주조산업이 발달했으나 무로마치시대 쇼군의 의뢰를 받아 본격적으로 차가마를 생산하기 시작이후 전국시대 맹주인 동일본 지역의 ()후조씨(北条氏)의 후원을 받아 아시야와 비견되는 양대 차가마 생산 집단으로 발전전국시대 모모야마시대 교토가 안정되고 히데요시에 의해 개발되면서 교토에 흡수되어 역시 현재 원 지역에는 생산이 되지 않고 있음.

육우의 다경에서 유래한 신나리가마(진형부)를 생산했던 아시야와는 정반대로 자유분방하고 개성적인 작품을 주로 생산모양뿐만 아니라 철을 다루는 솜씨도 차이가 남아시야가마는 표면이 매끈하고 세련된데 비하여 텐묘가마는 표면이 거칠고 그물이나 갈대 등을 이용하며 소박한 느낌이나 거친 느낌을 주도록 만들어졌음이러한 텐묘가마는 부형21(釜形二十一個등 모모야마~에도시대 차가마의 기본 형태들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침이후 진행되는 교토 차가마는 이 아시야와 텐묘의 장인들이 합류하며 발전함.

고텐묘 다이코도가마(대강당부)
오니시 세이에몬미술관 소장

고텐묘 극락율사명 오다네가마(미수부)
오사카시립미술관 소장
중요문화재

고텐묘 스지가마(근부)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센노 리큐 소장품

고텐묘 세메히모가마(청뉴부)
개인 소장

고텐묘 니주카타가마(이중견부)
도치키현립미술관 소장

고텐묘 테도리가마(수취부)
호소미미술관 소장

고텐묘 히노마루가마(일환부)

오니시 세이에몬미술관 소장


텐묘가마의 특징인 거칠고 삭은 듯한 표면


*사노 텐묘(佐野天命): 본래의 텐묘 가마. 11~12세기부터 주조업이 시작되었으며 주로 무기 등을 생산하던 곳. 1551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 것은 고텐묘(古天命)라고 부름무로마치시대 막부 쇼군이 이용하던 것

*오다와라 텐묘(小田原天命):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멸망당하기 이전동일본의 지배자인 ()후조씨가 텐묘의 장인들을 자신들이 살던 오다와라성(현재의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로 이주시켜 만들게 한 차가마들이후 일부 집단이 에도시대에도 살아남아 교토와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활동.

*칸토사쿠(関東作): 에도시대 텐묘(天猫)라는 이름으로 교토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활동한 부사 집단철 표면이 광택이 나고 좋지만 모양에 있어서는 비슷한 차가마만을 양산넓은 입구에 몸통에는 국화문이나 산수문을 넣는 특징이 있음



칸토사쿠 산수문 쿠리쿠치가마(조구부)
본인 소장
16대 오니시 세이에몬 감정

(후술)

2. 교토 산조 가만자초(三条 釜座町)

3. 리큐와 그 후예들 

4. 에도시대 지방 부사들의 대두 

5. 근현대의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