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제

예술의 전당 추사전

同黎 2020. 2. 8. 16:28


어제 일이 있어 예술의 전당에 자료 조사를 갔다가 그곳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라는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본업이 사찰에 있는 고서와 고문서를 조사하는 것인데, 요새 해남 대흥사를 조사 중이라 이래저래 추사의 글을 볼 일이 많습니다. 하는 일에 연관도 있고 또 지금은 관뒀지만 서예와 전각을 취미로 한 일도 있어 관심이 가는 전시였습니다.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열렸던 추사 김정희와 옹방강, 완원 등 당대 청나라 문인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하는 전시의 귀국 기념전인데, 개인 소장으로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유물이 많아 매우 흥미롭고 또 재미있는 전시였습니다.
본래 저는 전시를 보면 꼭 도록을 사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도록이 무려 6만원이나 하는 걸 보고 몇개 마음에 드는 것만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진흥북수고경

추사가 함경도에 있는 진흥왕의 황초령비를 발견한 후 비각을 세운 함경도 관찰사의 요청에 의해 쓴 현판 글씨입니다. 추사는 북한산비를 발견하기도 하는 등 중국에 다녀온 후 금석문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선 땅에 있는 많은 금석문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한나라의 예서풍으로 쓴 글씨인데 추사체가 완성된 시기에 쓴 힘찬 글씨입니다. 비록 제주 유배가 풀리고 다시 북청에 유배갔을 때 쓴 글씨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힘찬 비석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합니다. 지금 북한에 잘 남아 있는지 모르겠네요 

청나라 문인 주달이 추사에게 교류를 청하며 보내온 편지글입니다.

한번도 서로 보지 못했지만 추사의 명성이 북경이 퍼져 이렇게 교류를 청하는 편지가 많이 왔다고 합니다. 보지도 못한 학자에게 친교를 청하며 조심스래 색색이 물든 편지지를 골라 정성껏 정자로 글을 써서 보낸 편지에 웃음이 지어집니다.

단연죽로시옥

기름기가 쫙 빠지고 완숙기에 접어든 제주 유배 후에 쓴 유명한 현판입니다.
이 시기에 쓰여진 글씨 중 손 꼽힐 만함 명작이 많습니다.

그의 호고(好古) 취향을 잘 알려주는 글씨입니다.

언뜻 기괴하게까지 느껴지지만 비석이나 청동기에 쓰인 예서를 가능한 충실히 베끼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던 과정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비교적 젊은 추사의 기풍을 알려주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자신불

마치 생을 달관한 노인처럼 담담한 필치로 쓴 글씨입니다.
공개된지 얼마 되지 않은 개인 소장품인데 자신불의 身자는 무심하게 서 있는 사람처럼 쓰고 있습니다. 아래에는 스스로 껴치고 남에게 의지하지 마라라는 화제를 써 놓아서 그의 만년작임을 알게 합니다.

명선

아직도 가장 논쟁이 많이 되는 문제작입니다.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 대흥사의 초의 스님에게 차를 달라고 조르며 써준 글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엄청나게 유명한 작품인데 그에 비하여 추사의 진품이 아니라는 설도 만만치 않습니다.
추가의 만년 작인데 획이 기름지고 군더더기가 많아 추사의 글씨를 흉내낸 후세의 작품이라는 설이 만만치 않아 2019년 간송미술관의 지정 신청 당시 진작설과 위작설이 5:5로 팽팽히 갈려 결국 보물 지정이 부결되었습니다.
저로써는 추사의 진위를 가릴 정도의 안목이 없습니다. 몇번을 봤는데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혼자 조용하게 볼 기회는 처음인데 사용된 종이나 먹이 번질번질 한 것이 최고급임이 분명합니다. 당시 이런 재료를 쓸 수 있는 건 추사 밖에 없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차를 좋아했던 추사인 만큼 차에 대한 작품도 많습니다.

전다삼매
아기자기한 예서풍의 해서 글씨입니다.

한나라 당시 구리거울 즉 동경에 새겨진 글씨를 흉내낸 예서체입니다

현대적 감각마저 느껴질 정도로 뛰어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희삼매

글의 내용 만큼 글씨도 개구집니다. 
마치 할아버지와 손주와 놀아주는 듯한 글씨입니다.

추사가 말년에 자신의 예산 상개 뒤편 바위에 새긴 시경이라는 작품입니다.

글자의 구성에 꾸밈이 없어 단촐합니다.
마치 어린아기가 쓴 듯한 순수함과 단순함이 느껴지는 글씨입니다.

그가 죽기 며칠 전 마지막으로 난긴 글씨인 판전입니다

서울 봉은사의 장판각의 현판 글씨로 쓴 것인데 마치 막대기로 땅바닥에 죽죽 그어 놓은 듯한 글씨입니다. 그의 마지막 최종점은 이렇듯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에 있었습니다.

전시가 끝나는 길 김정희가 어린 아이였을 때 쓴 글씨가 걸려있습니다.

판전과 일맥상통하는 어린아이의 순순함이 느껴지는 훌륭한 구성입니다.

상설전에는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이 기증한 서화작품 전시도 진행중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김옥균의 글씨입니다
그가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일본에 망명해 있을 때 쓴 한시입니다.
고국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도 해서 보았는데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대표작은 거의 보이지 않고 석판화가 대부분, 그마저 일부는 칼라 프린트한 것이라서 금새 보고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