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2차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1 문창원文昌院1

同黎 2020. 9. 26. 01:24



택시를 타고 이화원으로 왔다

보통 동궁문으로 들어가서 동궁문으로 나오는 코스를 하는데 우리는 산을 넘어서 북궁문으로 나가기로 했다


입구의 영벽


동궁문

이화원의 정문으로 현판은 광서제의 친필이다


이화원(颐和园)은 청조 최대의 어원이다. 본래 이곳엔 서호라는 호수가 있었는데 금나라 때 행궁을 설치하였고 원나라가 대도를 정한 후에는 북경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운할르 파면서 이곳의 호수를 거대한 저수지로 만들어 넓혔고 이후 명나라 정덕제가 호산원이라는 황실 원림을 삼았다. 만력제가 이를 넓히고 천계제 때는 위충현의 소유가 되기도 했다. 

건륭제는 이곳에 이화원의 전신인 청의원을 조성했는데 서호를 크게 넓히고 곤명지라고 하였고 그 흙으로 산을 쌓아서 만세산이라고 하였다. 이는 어머니 효성헌황후를 위해서였다. 그후 이화원을 갈 수록 커쳐 면적이 293헥타르로 늘어났으나 도광제 때 국력이 약해지며 점차 관리가 안되다가 2차 아편전쟁 때 영불연합국에 의해 훼손당했다.

이화원이 다시 살아난 것은 서태후 때는 그녀는 이화원이라는 이름으로 원림을 새로 보수하여 1000개의 건물과 3500여개의 건축군으로 확대했다. 이후 팔개국 연합국에 의해 파괴되면서 다시 복원했으나 이미 국력이 많이 떨어지면서 전성기보다는 못하게 되었다. 선통제의 퇴위 이후 이화원은 북경시 소속의 공원으로 바뀌고 중국공산당 중앙당에서 차지하여 주요 인사들의 거주지가 되기도 했으나 1950년대부터 개방되었고 이후 여러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용이 그려진 어답로도 있다


들어가니


바로 이화원의 정전인 인수궁의 정문 인수문이 보인다


경내도 일부


인수문의 영벽


인수전 앞의 거대한 괴석


수성석으로 광서제 때 서태후를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인수전 앞에 서 있는 동제 기린상


인수전

이화원의 정전으로 건륭제 때 근정전이라는 이름으로 세웠다가 2차 아편전쟁 다시 불탄것을 서태후가 재건하며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광서제에 의해 변법유신이 실행된 곳이기도 하지만 후에는 서태후의 공간으로 더 많이 쓰였다


사람이 많다


건물 앞 괴석


대원보경이라는 현판


우선 건물을 나중에 보기로 하고


먼저 이화원 내의 박물관인 문창원부터 간다


사람봐라


가다가 나오는 문창각

학문의 신인 문창제군을 모신 곳으로 광서제 때 재건한 것이다


곤명지와 정자 지춘정


멀리 만세상과 불향각이 보인다


지춘정


항주 서호처럼 만든 호숫가


거대한 불향각


멋지다


문창각을 지난다


안내문


드디어 도착한 문창원


문창원에서 본 문창각


근래 세워진 건물로 사합원 형태로 지어진 박물관이다

별도 표가 필요하며 통표를 끊으면 싸다


입장


본전


여긴 사람이 좀 적군


두리번 거리는 중


전시를 보러 가자


성대집성이라는 현판

전시실이 6개나 된다.


상아 필통


분채 백자항


금과 칠보로 만든 나무


서각 장식품


상아로 만든 자주 병풍


칠기 항아리


목재와 보석으로 만든 배


원대 청화백자


분채 발


분채 병


방 관요 사각병


법랑병


분채 병


청백자 항


분채 사각병


분채병


대단하다


청화백자 매병


방 균요 타구


유리홍 항


분채접시


청화백자 장경병


분채발


청화백자 접시


청화백자 


유백색 백자 병


청자 항


가구도 나온다

반원탁


사방탁


태사의


비취 여의


태사의



청화백자가 들어간 돈


청동기들


법랑기


법랑 인형


특이하다


법랑항


대부분 장식용 기물


우준?


역시 제기



사방정과 향로



비취 향로


산호 화병


비취 각배


비취 사자


옥산


홍마노 기물


옥필통


옥구


옥산


옥향로


옥벽


옥책


옥벽모양 기물


다음 전시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