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2차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원명원圆明园1

同黎 2020. 9. 25. 21:35



오늘은 원명원과 이화원은 간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하... 사람

평일이고 출근시간 지났는데도 이런다


원명원역 하차


내리자마자 원명원의 역사를 알려주는 구조물이 벽면에 가득하다


1860년 2차 아편전쟁 당시의 공격


1900년 의화단 사건 당시 8개국 연합군의 공격


나오는 길 빙탕후루를 하나 사 먹었다

맛있네


표를 산다


경내도

사실 원명원뿐만 아니라 장춘원, 기춘원 등 3개 정원을 합친 것인데 모두 폐허가 되어 같이 관리되고 있다.

기남원으로 들어가 장춘원 부분을 보고 원명원을 본 후 돌아온다고 보면 되며 원명원 구역 중 절반 이상은 아직 공사중이다


입구인 궁문


원명원(圆明园)은 청나라의 대규모 궁원으로 크게 원명원과 장춘원(长春园) 및 기춘원(绮春园)을 포괄하여 부르는 말이다. 처음 원림을 조성한 것은 강희제로 강남으로 남순을 한 후 강남의 경치를 본딴 원림을 만들어 황자들에게 하사하고 창춘원이라 하였는데 이때 4황자인 옹정제가 받은 편액이 원명원이었다. 본격적인 확장은 건륭제인데 당대 기술을 총집합해 원명원을 확장하고 동쪽과 남쪽에 장춘원과 기춘원을 조성하였다. 장춘원에는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고 기춘원에는 여러 사원이 합쳐져 삼원은 동일하기도 독립되기도 한 관계였다. 건륭제는 자금성보다 원명원에 오래 머물었다고 하며 가경제까지 증축은 계속 되었다. 옹정제와 도광제가 승하한 곳도 바로 이곳 원명원이다.

원명원이 처음 파괴된 것은 2차 아편전쟁으로 영불 연합군이 북경으로 진격하여 이곳을 약탈하고 파괴하였다. 이들은 이곳에 불을 질렀으나 일부 지역은 살아남았는데 동치제 때 이곳을 복구하고 기춘원을 만춘원으로 고쳐 태후들의 거처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재정 부족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서태후와 광서제는 이곳을 여러번 찾았고 궁원으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결정적으로 의화단을 진압하려 온 8개군 연합군이 이곳을 약탈했으며 원명원은 완전히 폐원되어 광서제는 원명원의 관원을 철수 시킨다. 그래서 원명원의 유물과 석재 등은 민간이나 군벌에 의해 약탈되었고 일부 괴석 등은 정부에 의해 옮겨자 공원으로 옮겨졌으며 연못을 매워져 논이 되었다. 

신중국 성립 이후 주은래가 유적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당시는 거의 남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문화대학명 기간 한번의 파괴가 일어났다. 1976년 원명원이 국가의 보호를 받기 시작했고 계속하여 복구되었다. 이 때 많은 돈을 들여 봉건잔재를 복구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반대도 많았다고 한다. 하여튼 1988년 최초로 대중에 공개되었고 현재까지 토지 매입과 복원 정비가 계속되고 있다. 복원 구역도 계속 넓어지고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원명원 본원은 거의 공개가 되지 않았으나 현재는 거의 대부분이 공개되고 있다고. 하지만 거의 다 파괴된 것을 복구하는 것이라 전역 정비만 하더라도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일단 입구로 들어가면 기춘원이 나온다


들어가자마자 이미 지침


지도

까마득한 넓이에 좌절 중


사람이 많다


전시도 열리는 중



가본다


아니구나 바로 나왔다


설탕공예도 파는 중

완전 유원지 느낌이구만


정자 감벽정


셀카질


다리 건너 가본다



뭐 별건 없다


복원된 정자


안에서는 여가 생활 중


끝 없이 펼쳐진 유적지


곳곳에 이런 석재들


19세기에 세운 정자인데 1993년에 복원했다고


무너진 돌다리


뭐 원명원에 옛날 건물 중 제대로 남은 건 없다


잔교라는 안내판


홍예만 남았다


저 뒤로 보이는 건물들


다리를 건넌다


연못이 정말 많다



젊은 이행묵


함추관터


지금은 공터이다


이곳을 찾은 이들의 시


석인상


이슬을 받은 선인의 상이다

북해공원에도 있던 것



안으로 더 들어가보자


넓은 연못


끝도 안보인다


하..

날은 좋네


중국 역대 황제 포커

이런거 많이 판다


원명원분수의 십이지두상을 전시하는 곳 안내판


음 근데 뭔가 초라한데


원명원의 대수법이라는 큰 분수는 베르사유를 본따 만든 서양식 분수인데 여기에 십이지상 모양의 인형을 만들고 물을 뿜었다고 한다. 그 머리가 2차 아편전쟁 당시 약탈되었는데 하나씩 나와서 찾고 있다.


말, 소, 원숭이, 범, 돼지의 5개는 국영기업인 폴리집단에서 구입해 사들여 미술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쥐와 토끼는 프랑스 입생 로랑이 가지고 있다가 후손이 경매에 내 놓은 것을 중국 정부가 항의해서 되 찾아 봤다


나머지 5개는 현재 소재 불명


여기 있는 건 그 모사품


소재불명


뱀 

소재불명



소재불명


원숭이


소재불명


소재불명


돼지


앉아 있는 모습도 있다


밖으로 나왔다


이제 장춘원 구역이다


호수가 정말 크다


곳곳의 건물 터


덥다

잠깐 매점으로


셀카질


영사재 터

건륭제가 지은 섬 속의 별장


안내문


발굴 정비가 좀 된 곳으로 간다


함경당 터


역시 건륭제가 지은 궁궐 터이다


비교적 정비가 잘 되었다


주춧돌들이 정비되어 있다


문터


괴석이 쌓인


후원도 보인다


회랑의 흔적


정전 터


정자 터


발굴한 흔적


유구를 이렇게 노출해놨다


벽돌 마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뭐 근데 워낙 사람이 많으니..


꽃 구경 중


작약


함경당 안내문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중


정자 흔적


팔각정이다


흩어진 석재들


가교


다시 전시관으로 가면


원명원의 옛 모형이 있다


크다


엄청난 규모


서양 건축도 보인다


조금 조잡하긴 하지만


뒤편 산 속에도 건물이 있었다고


이제 다음 장소로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