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쿠역의 기차 시간표
오바쿠역
아직도 눈이 내린다.
마침내 우지역 도착
우지선은 10분에 한 대 꼴로 기차가 다닌다.
선미누나 발견
우지시내 안내도
겐지모노가타리 박물관도 있다고 하는데 언제 가 볼진 모르겠다.
역을 나오면 곧 우지바시가 보인다.
일본 3대 명교라는 우지바시. 지금은 콘크리트로 세워 놓았지만 옛 다리의 모습을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
다리를 건너면 도리이가 보이는데 여기가 뵤도인으로 가는 길 입구에 해당된다.
사실 이 도리이는 현신사라는 신사의 도리이인데 뵤도인에 3번째 왔지만 정작 이 신사는 가본 적이 없다.
뵤도인으로 가는 길에는 우지차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다만 겨울이고 또 폭설이 내려서 그런지 문을 연 가게가 많지는 않았다.
드디어 뵤도인 입구가 보인다.
뵤도인 표석
나와 노준석만 들어가고 김쌤은 밖에 있기로 한다.
본래 뵤도인 입장료는 600엔, 그리고 봉황당 입장료는 따로 300엔이다.
그런데 2014년 3월까지 봉황당이 공사 중이라 박물관인 봉익관 입장료에 해당하는 300엔만 받고 있다.
뵤도인 들어가는 길
봉황당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관음당을 지난다.
어디에도 어느 시대 건물인지는 써 있지 않다.
봉황당이 보인다.
그런데 완전히 가림막에 둘러쌓여 있어 건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 때가 1월이니 대충 마무리가 되었을 줄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봉황당 측면
노준석은 멘붕 중
사진은 지난 여행기 참조
뵤도인(평등원)은 헤이안시대 귀족인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우지의 별장을 사찰로 바꾼 것이다.
본당은 따로 있었고, 이 봉황당은 아미타불이 머무는 극락 세계를 그대로 재현한 건물이었다.
이는 말법시대가 왔다는 헤이안시대 후기의 인식 때문에 지어진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석가모니가
죽고 1500년이 지나면 말법시대가 도래하여 부처의 가르침이 모두 사라지는 1만 년이 지속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공덕을 빌기 위해 많은 사찰을 짓고 불상을 조성했다. 조루리지, 산쥬산겐도가
바로 이런 이유로 지어진 것이고 뵤도인도 마찬가지이다. 한편으로는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불경을 땅 속에 묻고 무덤처럼 만드는 경총이 유행하였다.
관백의 자리에 오르고 딸 4명을 천황에게 시집보냈으며 심지어 잘 생겼던... 그래서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 겐지의 모델이라고 생각되는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와 그 아들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뵤도인을 지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만큼 뵤도인은 화려했다.
지금 당대의 건물은 봉황당 하나만 남았지만, 그 건물 자체가 엄청난 유적이다. 건물 자체와
불상, 불상 위를 덮고 있는 목조 천개, 그리고 운중공양보살상 52구와 벽화, 지붕에 있던
봉황상 2개가 각각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니 한 건물에서 국보만 6개가 나온 셈이다.
게다가 건물이 위치한 연못을 비롯한 정원은 사적명승으로 지정되어 있고 연못 안팎의 석등은
중요문화재이다. 10엔짜리 동전의 모델도 되었고, 봉황상은 1만엔짜리 지폐 뒷면에
그려졌으니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나무에 눈이 내려 꽃이 핀 것 같다.
봉황당 정면
보아하니 복원하면서 건물 전체의 단청을 새로 하는 것 같은데...
원래의 분위기를 잃을 것 같아 걱정이다.
건물 앞 석등을 둘둘 말려있다.
공사 중인 봉황당
멀리 종루가 보인다.
측면
공사 중인 내부
음
밤의 봉황당 야경
환상적이긴 하다.
국보인 본존 아미타불
정면의 불상 얼굴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다.
봉황당 내부
본존 주변으로 벽에 공양보살상이 매달려 있다.
전부 국보이다.
불상 위의 목조 천개
역시 나무로 조각해 금을 입히고 영락을 하나하나 달아 만든 엄청나게 섬세한 조각품이다.
색이 많이 바랜 내부의 벽화
일부는 이렇게 분리되어 보관 중이다.
산수화
천장에 있던 두 개의 봉황상
국보로 지정되어 따로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오리인가? 눈 위를 걸어다녔구나
이제 박물관인 봉익관으로 간다.
다른 유물은 다 전에 본 것이고...
도다이지 대종 등과 함께 일본 3대 명종으로 불리는 국보 범종
일본종으로써는 거의 유일하게 비천상 등 문양이 종신에 배풀어져있는데
이 때문에 한국종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이고 있다.
헤이안시대의 작품이다.
이제 절을 나와 나카노시마 쪽으로 향한다.
강을 막고 공사 중이다.
다리를 건너니 산척이 정말 적막한데 눈만 내리고 있다.
고요한 우지가와
다리를 건너면 이 나카노시마의 명물인 석탑이 나온다.
기념사진
이 때 노준석은 봉황당을 보지 못해서 삐져있었다.
우지가와
강을 건넜다.
날이 맑을 때 정말 아름다운데 오늘도 괜찮다.
드디어 도착
13세기에 지어진 이 석탑은 중요문화재인데 13층이다.
낚시로 죽은 물고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어망과 어구를 묻고 세웠다고 하며
높이는 15미터로 물살이 쎄기로 유명한 우지가와의 범람 시 여러 번 넘어졌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하는데 한냐지의 것이 가장 크지 않나 했더니... 그것은 12.6미터이다.
그런데 한냐지 석탑은 참 위압감이 느껴지는데 비하여 이것은 그렇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의문이지만
나카노시마에는 가마우지를 키우는 곳이 있는데 춥겠다.
일본에서 밤에 배를 띄우고 가마우지 목에 줄을 매달아 물고기를 잡게 하고
목을 졸라서 고기를 뱉어내게 하는 낚시, 즉 우카이가 있다.
이 우카이는 단순한 낚시법에서 시작하여 헤이안시대 귀족들이 강에
배를 띄우고 이걸 구경하는 것이 큰 취미였다고 한다.
현재 교토 근처에서는 우지와 아라시야마에서 행해지고 있다.
사진은 사냥 모습
가마우지 설명문
우오
무섭다
공원 깨끗하게 쓰라는 안내문
왠 시계탑일까
섬을 건너기 위해 다음 다리로 가는 중
건너편으로 가려 한다.
우지가와 공사한다는 안내문
우지가와의 퇴적작용으로 인해 나카노시마가 변해가는 모습
뭐 원래 모습으로 복원한단다.
이 섬의 역사를 쭉 설명해놨다.
이 다리의 이름은 유메노우키바시
몽부교인데, 꿈이 떠다니는 다리 혹은 덧없는 꿈의 다리라는 뜻일 것이다.
아마 겐지모노가타리에서 온 것 같다.
다리를 건너는 중
돌아본 지나온 길
역시 우지가와는 눈만 내리고
기념사진
다리에서 본 풍경
건너온 곳
드디어 다 내려왔다.
이제 코쇼지를 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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