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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8 (봉선전奉先殿 종표관钟表馆)

이제 자금성 동쪽으로 간다내우문을 통과 후궁 권역은 이렇게 골목까지 담으로 둘러쌓여 있어 답답하다 또 나오는 문 근광우문 함화우문을 거친다 닫혀있는 영수문 동육궁 중 하나인 영수궁의 정문현재 비공개 골목을 따라 걷는 중 셀카 흠 보화전 뒤편이 나온다 월대의 모습 후조의 정문인 건청문 자금석 최고 크기인 어로석 엄청나게 길다장관 이 거대한 한백옥을 옮기느라 운하가 얼었을 때 얼음 위로 옮겼다고 건청문 여기는 좀 후에 가기로 하고 후좌문 옆으로 빠지면 진보관 입구가 나오고 일종의 광장이 나온다 종표관 입구이게 일반 입구이고 봉선전의 정식 입구는 여기다 역대 황제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황실의 가묘이기 때문에 입구도 화려하다 봉선전 명나라 때 처음 세워졌으며 청나라 때는 계속해서 역대 황제와 황후의 위패를 모신..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7 (수강궁壽康宫)

수강궁의 입구인 수강문작지만 황유 벽돌로 장식해 격을 높였다 수강궁 정전수강궁은 청 옹정제 때 처음 세워진 곳으로 황태후와 태비 들을 위한 건물이다. 황제의 모후들이 입주했으며 주로 건륭제 이후의 태후들이 이곳에서 살았다. 의화단 사건 당시 많은 피해를 입었다가 2015년 수리를 마치고 공개되었다. 다만 화원 등은 아직도 복구 중이라고 수강문의 영벽 정전으로 간다 안에는 태후들의 생활상을 복원 전시 중이다 정면 어답로손상이 심하다 내부의 모습 천정 측면의 생활 공간태후의 의자 태후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전시가 진행 중 건륭제로 생모로 이곳에 살았던 효성헌황후(성모황태후)의 초상 건륭제가 어머니에게 바친 글 효성헌황후의 태후 책봉 옥책 황태후의 옥보 시호를 올린 옥책 그녀의 조주 건륭제가 효성황후에게 바친..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6 (자녕궁慈寧宮 조소관雕塑馆2)

다음 전시관불교조각 외 다른 것들을 주로 다룬다 북위 부장용 도용 웃고 있다 징을 치는 중 녹유 수레 삼채 도용당 서역인 모양의 도용 삼채 진묘수 크다 낙타와 서역인 높은 가채를 한 여인모두 당 다음은 화상석 전시관산동성 등에서 한나라 때 유행한 무덤의 장식이다 말이 그려진 화상석 반대편 주로 춘추전국시대 고사가 많다 천정의 모서리 말들 사람 공자와 노자의 이야기 주공과 성왕의 이야기 서왕모 묘실의 입구 또 다른 묘실 주작이 그려진 묘실 입구 마차와 함께 글씨도 있다 신수가 그려진 화상석 입구가 남쪽이라 주작이 많다 문의 소맷돌 청룡 주작 현무 백호 벽돌로 만든 화상전 효자들의 이야기 이런게 많다 또 다른 화상전미인도? 청룡 백호 자녕궁의 후전건륭제 때 대불당으로 고쳤다 자녕궁 뒷면 후전 앞의 돌기둥 대..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5 (자녕궁慈寧宮 조소관雕塑馆1)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던 자녕궁이 조소관으로 정비되면서 공개되었다 자녕궁(慈寧宮)은 황태후나 태황태후의 거처로 가정제가 처음 전설하였다. 명나라 때도 황태후나 황귀비들이 살았다가 청나라에 들어서 순치제의 모후이자 강희제의 할머니인 소성황태후(효장문황후)가 오랫동안 살았다. 소성태후가 강희제를 엎어 키웠기 때문에 그녀가 죽은 후 다른 태후들이 감히 들어가지 못했고 강희제가 소성태후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나 태후를 위한 전례를 행하는 용도 등으로 사용하다가 건륭제가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태후들을 위한 불당으로 바꾸었다.태후들의 공간은 수강궁으로 바뀌었으나 태후궁 중 가장 권위있는 곳인 만큼 건축이 가장 복잡하다. 정문은 자녕문 여기는 처음 문 앞에 두 마리의 기린이 있다 자녕문 현판 만, 몽, 한의 3개 언어로..

사천석굴탕방기 - 2일 합천 내탄고진涞滩古镇·내탄이불사涞滩二佛寺1

중경의 아침양자강이 지나고 있어서 그런지 뿌였다 첫 방문지는 중경시 합천구의 내탄이불사합천구는 중경 외곽인데 한때 합천시라는 사천성의 시였다가 중경시 합천현을 거쳐 2006년 합천구로 편입된 곳이다. 우리가 찾은 내탄진(涞滩镇)은 북송대 지어진 성곽마을이다. 중국에는 이렇게 오래전에 관부를 설치하고 그를 둘러싼 성을 지어 그 안에 마을이 형성된 곳이 많은데 이를 진이라고 한다. 우리의 낙안읍성 같은 곳을 생각하면 될 듯. 그런 진 중에 내탄진은 과거의 모습이 많이 남은 곳 중 하나로 중국 10대 고진에 들 정도이다 입구에서 걸어가는 길 거위 한마리가 나왔다 사찰에 바치는 각종 향들 이런거 연기가 참... 안내판이 나온다 중국역사문화명진이라는 안내석국가문물국이 직접 지정하는 것이다 진의 문이 드러난다 옹성..

中/사천 답사 2020.08.23

사천석굴탕방기 - 1일 도착

2016년 중경으로 떠난다 겨울이라 춥다 오랜만의 출국 충칭은 처음이라 걱정도 좀 되지만 일단 게이트로 간다 8시간이나 걸리는 긴 거리 중국국제항공도 처음이다 드디어 탑승 작은 규모의 비행기 낮에 떠나도 밤중에 도착한다고 이륙 한잠 자고 일어나니 충칭 장베이국제공항에 도탁 공업 도시 답게 안개와 스모그가 처음 나를 맞이한다 시설이 그렇게 좋진 않다하긴 인천공항만한게 없지 출국심사를 거쳐 드디어 중국 입국 뿌연 도시의 하늘 드디어 충칭이다 여행사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 첫 식당에 도착했다 한밤중에 먹는 저녁식사 사천음식을 첫 요리로 저녁식사를 마지고 호텔방을 배정받는다 호텔 모형 드디어 내일부터 사천지역의 석불을 보러 다닌다

中/사천 답사 2020.08.23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4 (외조삼대전外朝三大殿·군기처軍機處)

태화문 정전의 태화전의 정문이다2층 높이에 정면 9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왠만한 건물보다 큰 규모이다명나라 때 황극문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청나라 때 태화문으로 교체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광서제 때 다시 지어진 것으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이다. 셀카 중독자 이행묵 같이 찍잔다 거대한 청동 사자 태화전의 답도중국에서는 어답로라고 한다 지붕의 모습 거대하다 현판 계단 사이사이에는 정이 있다 태화문 내부 화려한 채색이 되어 있다명, 청대에는 황제가 이곳에서 조배를 받았다. 아마 즉위도 문에서 했을 것이다. 보좌가 있는 정전은 예의상 피하는 것이 규범이었다 태화문에서 바라 본 외조의 전경 태화전을 중심으로 융종문과 경전문이 보인다 홍의각 체인각 과거 태화전의 외조에는 청동으로 만든 품계석이 있었다고 하지만..

사천석굴탕방기 - 프롤로그

뭘까뭘까 고민하다가 찾은 사천과 중경의 석굴들내탄고성을 지나서 이불사의 대불을 만나고 신비의 안악을 찾아 수월관음상을 만났다 산 깊은 곳 원각동에는 팔관음이 있었고 자리자리에 석불들이 수백곳 끝나지 않는 탄성 안악석굴 원각동 채색이 남아 있는 석불들 거대한 와불원의 부처님 측척무후를 본 딴 황택사 대불 절벽에 자리잡은 천불채 티벳 고승을 본 딴 석불 빛 바래지 않는 벽화들 압도되는 수의 미학과 역시 압도되는 크기의 미학 섬세함과 투박함이 모두 있고 일본까지 흘러들어간 사연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대족 거대학 박물관 안의 수 많은 조각을 지나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석굴의 조각 유본존 공작명왕 비로자나불과 비사문천 규모와 수량이 다른 내륙 깊은한 곳의 석불들을 만나다 중경, 사천 일대의 불상들의 이야기가 곧 시작..

中/사천 답사 2020.08.23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자금성紫禁城3 (무영전武英殿 서화관书画馆)

이제 문화전을 나와 무영전으로 간다 협화문 자금성 중앙으로 통하는 문의다 넓게 펼쳐진 태화문 앞마당어머어마하다 내금수하 건너편으로 보이는 태화문 희화문으로 간다 이 문 뒤로 무영전이 있다 희화문 현판 현재 건물은 건륭제 때의 건물 희화문을 지나면 무영문이 나온다 무영문은 명나라 때 건물이다 무영문의 답도한백옥이다 들어간다 무영문 답도 무영전(武英殿) 무영전은 명나라 때 세워진 건물로 황제의 재궁으로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화전이 황후의 재궁, 무영전이 황제의 재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자성의 난으로 자금성이 불탈때 도 무영전은 살아남았고 입성한 강희제는 자금성이 복구될 때 까지 무영전을 거처로 삼았다. 이후 옹정제는 무영전수서처를 설치해 이곳에서 각종 서책을 정비해 교감하고 인쇄하도록 하였고 이..

남국유랑기 - 8일 귀국·에필로그

8일째 아침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간다. 시내에서 공항 가는 버스가 많다. 혹시 모르니 시간표 흔하긴 하다 버스비 단돈 100엔공항교통의 혁명 10분만에 도착 체크인을 하고 출국심사를 받는다 공항도 크진 않다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쇼오켄 것 언박싱 중 짜잔 아주 맛있더라. 한국 오니까 생각하는 맛카스테라와 함께 규슈 답사는 끝 일차현도시답사지1후쿠오카후쿠오카후쿠오카 공항 입국다자이후다자이후텐만구-다자이후텐만구 보물관-규슈국립박물관-칸제온지-카이단인-다자이후 정청 유적2나가사키나가사키구 나가사키세관 사가리마츠파출소-구 홍콩상하이은행 나가사키지점-오우라천주당-그라바엔-나가사키 공자묘·중국역대박물관-데지마-소후쿠지-코후쿠지-나가사키역사문화박물관-쇼후쿠지-일본26성인기념관-나가사키 가톨릭센터3나..

남국유랑기 - 7일 호후6 (호후텐만구防府天満宮)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호후텐만구에 도착 호후텐만구(防府天満宮, 방부천만궁, 호후텐만궁)는 다른 텐만구와 함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모시는 신사이다. 이곳은 본래 마츠자카텐만구(松崎天満宮)라고 불렸다. 미치자네가 규슈로사실상 유배를 가던 중 그를 태운 배가 마지막으로 기착했던 곳이 이곳이었다고 한다.미치자네가 이곳에 머물며 이곳의 땅은 천황이 있는 교토와 닿아있으니 이곳에 머물며 결백의소식을 듣고 싶다고 했다 한다. 이후 903년 그가 죽고 나서 그날 밤 스오의 국사가 텐진야마에서광채가 나는 걸 보고 그의 혼이 이곳에 와서 머물게 되었다고 믿어 다음해 신사를 완성시켰는데이곳이 일본 최초의 텐만구라고 한다. 때문에 교토에 있는 키타노텐만구와 그가 묘에 지은다자이후텐만구와 함께 3대 텐만구로 불린다.이곳..

남국유랑기 - 7일 호후5 (스오코쿠분지周防国分寺)

모리가 본저 바로 앞으로 오면 그대로 산요도이다. 감이 있었다 오래된 산요도(산양도)의 길을 따라 호후텐만구까지 간다.가는 길 부분 부분 유적이 있다. 가는 길에 있는 사자전이라는 신사의 안내문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유배 중 휴식했던 곳이라고 한다. 총사고분이라는 고분도 있다. 흔적만 있다 흠 무슨 우물 같네 신사도 나온다 음악가를 위한 현영비 스오노쿠니의 총사사바신사 총사는 각 쿠니의 국부에 세워지는 신사이다.중앙에서 국사가 파견되면 각 쿠니의 이치노미야 등 주요신사에 참배를 해야 하지만그러기가 쉽지 않으니 총사라는 신사를 세워 쿠니 내의 주요 신들을 권청해 한꺼번에 모시는 것 오무라 노쇼의 현영비동기의 벚꽃 작곡가라고 한다. 신사 입구 그냥 지나간다 산요도라는 표지판 옛 가도를 따라 걸을 줄이야 흠 옛..

남국유랑기 - 7일 호후4 (모리씨 정원毛利氏庭園)

이제 밖으로 나간다 모리가 저택 안내문 정원 안내문다이쇼시대 정원 치고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건 이례적이긴 하다. 정원 입구로 들어간다. 모리가 문장이 새겨진 문 한국어로 벗풀 혹은 소귀나물이라고 하는 연못에 자라는 식물이라고 석등롱 저택 외관이 보인다 넓게 펼쳐진 정원 화려하다 우물도 보인다 저택 본관 2층동의 외관 정원의 오솔길 거대한 정원이다 온갖 신기한 나무들이 있고 거대한 연못도 있다 건너편에 보이는 석등롱 카나자와에서 본 석등의 형태 이렇게 크고 거대하지만 사실 감동은 별로 못 준다. 본관의 모습 화려하군 안쪽으로 들어간다 정원에서 보이는 건물 저 안쪽도 있다 말하자면 이곳이 메인 정원 작은 부속정원들은 더 있다고 온갖 나무들 전경 흠 저 멀리 다실이 보인다 기념식수들 무지하게 크다 메인 정원..

남국유랑기 - 7일 호후3 (모리박물관毛利博物館)

박물관 입구 자동으로 연결된다 입장 도록이 3권이다..도록을 다 사고 덕분에 다음날 식사를 굶기로 한다. 도록으로 소장품을 살펴보자 사계산수도셋슈 필무로마치시대 분메이 18년(1486) 사계산수도(부본)전 운코쿠 토칸 필에도시대 고급와카집 권8헤이안시대국보 사기 여후본기헤이안시대국보 모리 모토나리 화상모모야마시대 텐쇼 19년(1591)중요문화재 모리 모토나리 자필 서장(삼자교훈장)무로마치시대 코지 3년(1557)중요문화재 모리가문서 일괄중요문화재 도회도혼아미 코토쿠 필모모야마시대 분로쿠 3년(1594)중요문화재 오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기청문모모야마시대중요문화재 막부 추토의 밀직에도시대중요문화재 연가학서(연가식목)사토무라 죠하 필모모야마시대 케이초 3년(1598)야마구치현지정문화재 신고금집발서전 후시미천황..

남국유랑기 - 7일 호후2 (호후 모리가 본저防府毛利家本邸)

택시를 타고 모리저 앞에 왔다.엄청난 소나무들과거 조슈 모리가의 본저 입구답다. 본문중요문화재 마침 전체 국보와 중요문화재를 공개하는 국보전이 진행중이다.모리씨에서 만든 모리보공회에서 소장하고 모리박물관에서 보관하는 유물이국보 4건, 중요문화재 9건, 현문화재 4건이다. 호후의 모리가본저(防府毛利家本邸)는 메이지유신 이후 공작에 임명된 모리가의 종가가 머물기위해 세운 저택이다. 12동이 중요문화재의 본항목에, 5동이 부속항목으로 지정되어있다.정원은 통째로 명승으로 지정되었다.메이지유신 이후 모리가는 하기와 야마구치를 떠나 교통이 편리한 호후로 이전한다. 현재 자리는과거 번사였던 이노우에 카오루가 정해주었다고 한다. 본래 메이지시대에 이미 공사가 시작되려고했으나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이어지며 다이쇼시대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