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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6일 수도박물관首都博物馆2

이제 원형부분으로 건너한다1, 2층은 서화실인데 당시 공사중이라 3층으로 바로 갔다 연지청동연나라 지방의 청동기 전시관 서주시기부터 시작 청동검 화살촉 방패장식 청동검짧다 각종 무기들 정들 일반적인 정 다리 부분이 장식적이다 다른 정 많다 과와 모 동검 자루달린 동검 세형 동검? 정 궤 작 악기인 령 술항아리 이 이 손잡이가 달린 유 유 존 이건 뭐였더라 청동기 종류가 너무 많다 변 변 변궤 두 목이 길다 마치 원형같은 청동기 궤 정 정 정 정 이건 뭐였더라 궤 호 호 전한까지 내려온다 동반 반 감 이건 뭐였더라 두 아 기억이 안난다 반 족자 장식 각종 마구들 마구류 장신구류 단도 명도전 장신구 다음 층으로 간다이렇게 나선형이다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6일 수도박물관首都博物馆1

6일째 아침 오늘은 수도박물관부터 간다 천안문 앞을 지나는 중 사람이 많구나 장안가를 지나 가면 거대한 수도박물관이 보인다우리로 치면 서울역사박물관에 해당하는 곳 입구에 서 있는 거리한 비석유리관에 갖혀 있다 본래 선농단에 서 있던 건륭제의 비석이라고 으아 벌써 사람이 거대한 청동기를 형상화한 기둥저 안에 전시관이다 입장어답로 패방 본래 역대제왕로 앞에 서 있는 패방을 옮겨왔다고 수도박물관은 수도 북경과 그 인근의 문화재를 전시하는 곳으로 1950년대부터 개관이 준비되었지만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개관이 허사로 돌아가고 간신히 개혁개방 직후인 1981년 북경 공묘에 걸치된 곳으로 역사가 짧은 편이다. 2006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해 개관했고 규모로 확대되었다. 현재 소장유물은 20만점 이상으로 추정되고 그 ..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5

지혜해의 패방 군데군데 비석들이 있다 불행각 옆의 정자 괴석을 쌓아 축대를 만들었다 뒤에서 보는 불향각 이제 뒤편으로 간다 불향각 전경 정말 크다 오래된 나무를 지나 지혜해로 넘어간다 지혜해는 만수산 꼭대기에 무량수불을 위해 건륭제가 지은 건물로 오색 유리벽돌로 화려하게 지었다. 유리벽동에는 불상 천개가 찍혀 있는데 문혁 당시 상당수 훼손된 것을 복구한 것이다 크다 머리는 대부분 새로 만든 것이란다 내부에는 건륭제가 만든 무량수불이 모셔져 있다 사방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붉은 옷이 입혀진 불상 되편 광배 부분에 감실이 있고 보석으로 장식한 작은 불상이 또 있다 위태천 내부 감실에 모셔진 협시보살 이제 지혜해 부편으로 가면 티베트 식으로 만든 사대부주라는 사원이 있다. 티베트 삼예 사원을 본따 만든것으로 ..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4

남호도에서 보는 만수상멋지다 불향각지금은 3층이지만 본래 7~8층이었다고 섬을 한바퀴 도는 중 다들 뱃놀이에 여념이 없다 괴석을 쌓아 만든 섬 다시 배를 타고 건너간다 만수산 방면으로 남호도 작은 섬이다 멀어지는 섬 우리가 들어온 동궁문과 반대의 석방 방면으로 왔다 돌로 만든 배 이건 그냥 등장한 것은 아니고 오랜 전통이 있는 것이다군주는 배고 백성은 물이라 백성이 군주를 가라앉힐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돌로 만든 배를 세웠다고 한다 이것은 양주 서호에 있는 유명한 석방을 이화원에 재현한 것이다 다시 장랑을 따라 간다 복을 의미하는 박쥐모양으로 휘어진 장랑 사람들 많다 배운문 앞의 패방 배운문의 현판 내부로 들어가면 중문인 이궁문이 보이고 불향각이 높이 솟아있다 과거에는 배운문과 이궁문 사이에 연..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3

이제 동쪽에 있는 건축군을 보러 간다 먼저 인수전 뒤의 옥란당황제가 정무를 처리하고 거처하던 곳으로 건륭제 때 지은 것이지만 서태후가 광서제를 가둬놓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광서제가 다른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정문 온락문을 제외한 모든 문을 담으로 막아놓았다 옥한문 혁판 문을 들어가면 보이는 옥란당 뭐 평범한 건물이다 좌우로는 배전이 있다 옥한당 정면 내부는 광서제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다 벽화 뒤편으로 괴석을 쌓아 만든 가산이 있다 옥단당 뒤의 의예관 의예관은 본래 옥란당과 ㅉ가하는 황후의 거처이다.광서제가 갇혀있을 대 황후 역시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황후는 서태후가 꽂은 인물이랑 감금은 아니었다고 의예문을 지나 의예관이 나온다 비교적 소박한 편 안내문 의예관 현판 내부 역시 복원 한쪽에 석각..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2 문창원文昌院2

다음 취진관으로 간다 상아를 조각해 만든 상자 조각 수법이 대단하다 비취 여의 10개가 한 세트로 내려온다고 서양 기법으로 만든 촛대 화려하다 당시 황족이 사용하던 자동차 유리로 만든 촛대 특이하군 칠기로 만든 경대 서양식 시계 법랑 합 칠기로 만든 합 서양 군함식 시계 역시 서양 군함 모양 시계 각종 화병 금니로 쓴 병풍 보석으로 조각한 가리개 옥으로 조각한 가리개 칠보와 옥으로 만든 연꽃 칠보와 옥으로 만든 꽃밭 오래된 나무로 조각한 신선들 은으로 만든 수선분 각종 은기들 산호 화분 서양에서 수입한 식기들 허 마이센 것이었다고 들었다 포크와 나이프 나전과 상아 손잡이 은과 금제 도구 칠보로 만든 작은 도구들 다음 동기 관 아 청동기.. 이젠 어느 시대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상~서주 시기의 것을 청..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이화원颐和园1 문창원文昌院1

택시를 타고 이화원으로 왔다보통 동궁문으로 들어가서 동궁문으로 나오는 코스를 하는데 우리는 산을 넘어서 북궁문으로 나가기로 했다 입구의 영벽 동궁문이화원의 정문으로 현판은 광서제의 친필이다 이화원(颐和园)은 청조 최대의 어원이다. 본래 이곳엔 서호라는 호수가 있었는데 금나라 때 행궁을 설치하였고 원나라가 대도를 정한 후에는 북경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운할르 파면서 이곳의 호수를 거대한 저수지로 만들어 넓혔고 이후 명나라 정덕제가 호산원이라는 황실 원림을 삼았다. 만력제가 이를 넓히고 천계제 때는 위충현의 소유가 되기도 했다. 건륭제는 이곳에 이화원의 전신인 청의원을 조성했는데 서호를 크게 넓히고 곤명지라고 하였고 그 흙으로 산을 쌓아서 만세산이라고 하였다. 이는 어머니 효성헌황후를 위해서였다. 그후 이화..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원명원圆明园2

드디어 도착한 서양루경구 건륭제가 건축한 서양식 건축들의 흔적이 많아 있는 곳이다엄밀히 말하면 장춘원에 해당하는 곳 오 보인다 분수의 흔적 흔적만 남아있다여기가 과거 커다란 분수의 흔적 흔적만 남은 건물 가장 유명한 분수였던 대수법7층짜리 분수였다고 한쪽에도 석재들이 놓여 있다 완전 폐허만 남았다 여기가 원명원의 상징과도 같은 곳 중국에서는 서구 문명의 야만적 침탈의 증거라고 한다 기념 셀카 이런걸 좋아한다 관수법이라는 다른 분수 흔적지금믄 파편만 남았다 관수법 안내판 대수법 흔적들 또 다른 건물의 흔적 가장 큰 서양 건축이었던 해안당의 측면 여기는 분수 터 무슨 그리스 같다 잠시 쉬는 중 십이지상이 놓여 있다 분수를 나름 재현 너무 조잡하다 과거 주요 석재들이 놓여 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본다 과거 폐허..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5일 원명원圆明园1

오늘은 원명원과 이화원은 간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하... 사람평일이고 출근시간 지났는데도 이런다 원명원역 하차 내리자마자 원명원의 역사를 알려주는 구조물이 벽면에 가득하다 1860년 2차 아편전쟁 당시의 공격 1900년 의화단 사건 당시 8개국 연합군의 공격 나오는 길 빙탕후루를 하나 사 먹었다맛있네 표를 산다 경내도사실 원명원뿐만 아니라 장춘원, 기춘원 등 3개 정원을 합친 것인데 모두 폐허가 되어 같이 관리되고 있다.기남원으로 들어가 장춘원 부분을 보고 원명원을 본 후 돌아온다고 보면 되며 원명원 구역 중 절반 이상은 아직 공사중이다 입구인 궁문 원명원(圆明园)은 청나라의 대규모 궁원으로 크게 원명원과 장춘원(长春园) 및 기춘원(绮春园)을 포괄하여 부르는 말이다. 처음 원림을 조성한 것은 강희제로..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4일 북경 고루北京鼓楼

택시를 타고 송경령 고거에 가려는데 너무 길이 좁다고 큰길에 내려주고 걸어간다 덕분에 스차하이(십찰해) 구경 중 좋구나 하지만 목적지인 송경령 고거는 이미 페관 손문의 부인인 송경령이 거주하던 곳인데..결국 패스하기로 가다 보이는 사찰국가종교사무소라고 되어 있다 무슨 절이었더라여기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다 안녕팔자가 좋구나 스차하이를 빠져 나가는 중 풍경은 좋다 오래된 고거 장기두는 아저씨 한가한 개 고민하다가 입장시간이 가장 늦은 고루와 종루를 가기로 한다택시타고 헐레벌떡 도착 중국 성의 중심에는 시간을 알리는 종루와 고루가 있는데 보통 가까이 있다. 북경의 종루와 고루도 같이 있는데 보통 세트권으로 두 곳을 모두 올라갈 수 있지만 이날은 시간이 없어 둘 중 하나만 석탠해야 했고 고루를 올라가기로 했다...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4일 역대제왕묘历代帝王庙

공왕부를 탈출하여 택시를 타고 역대제왕묘로 간다 입구에 서 있는 비석 육개국어로 되어 있다한, 만, 몽, 장 정도만 구분이 가능 입장료를 받는다 대문을 들어서면 내삼문인 경덕문이 나온다 역대제왕묘(历代帝王庙)는 멸망한 전 왕조의 제왕들을 모시는 사당이다. 모두 모시는 건 아니고 선별적으로 모신다. 과거 왕조의 왕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송, 금, 원시대에도 있던 것으로 생각되고 이후 명태조가 역제대왕묘를 세워 제도를 정비한다. 태조 홍무제는 삼황오제와 하~원나라의 개국제왕 16위만을 규정했으나 가정제가 남경의 역대제왕묘를 북경으로 옮기면서 신상을 위패로 바꾸었으며 원세조를 넣다 뺐다의 논쟁이 있었다.청이 들어면서 순치제가 이를 이어받았으며 사당의 제왕을 25위로 늘렸고 강희제는 이를 한층 확대하여 제왕..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4일 공왕부恭王府2

보광실 9개의 정전 중 하나이다 역시 내부엔서는 전시 중 화공인문공왕부의 역사에 대한 전시 옛 사진자료 화신, 경친왕, 공친왕, 보인대학 등의 주인들이 변환 역사 보광실 현판 내부의 전돌이 남아 있다 화신 건륭제의 총신죽은 후 털었더니 청의 15년치 수입의 은이 있었다는 사람 이제 옆으로 가본다 또 다른 정전 낙도당 배전 친고재 내부는 옛 모습을 재현해놨다 이어진 건물들 낙도당의 문건물이 겹겹이 있다 내부 이렇게 큰 건물들 뒤편으로 긴 건물이 있다후조루 160미터나 되는 건물이 후원과 정당을 나누어주며 수 많은 방을 이루고 있다 다시 가운데 길로 가는 길 구름 모양으로 뚫어 놓은 회랑의 창 한쪽에 전시된 공치왕 이렇게 좁은 길들이 이어진다 낙도당 앞의 다복헌등나무 정원을 지나 낙도당으로 가면 내부가 보존..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4일 공왕부恭王府1

이제 바로 걸어 공왕부로 간다 가는 길에 만난 한국식당 중국인이 하는 곳이어서 번역도 엉터리였으나 너무 한식에 목이 말랐다 기대중 비빔밥 맛있다 냉면 드디어 공왕부 도착 공왕부(恭王府)는 함풍제의 아들이자 동치제의 동생인 공친왕 혁흔의 왕부이다.본래 이 자리는 오래된 사찰이 있었으나 청나라 때 이미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풍수지리가 좋다는 소문이 나자 건륭제가 이곳을 비싸게 사들어 저택을 지었다. 이후 권신 화신의 아들과 건륭제의 딸 고륜화효공주가 결혼하자 화씨 일가에게 이 집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가경제는 화신을 자결시키고 화효공주에게 저택 일부만 넘겨준 뒤 이 곳을 자신의 동생인 경희친왕 영린의 왕부로 삼았다. 그리고 그 손자인 경신왕 혁광에 이르기까지 경친왕부가 되었다이후 함풍제 때 이곳을 ..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4일 곽말약 고거郭沫若故居

다음으로 가는 곳은 중국의 역사학자인 곽말약의 고거북해공원 북문에서 절어가기 충분한 거리이다 곽말약 고거는 곽말약이 북경에서 15년간 살았던 주택으로 본래 건륭제의 총신인 화신의 화원이었는데 이후 공친왕부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공친왕의 후손들이 건물을 양분하여 일부는 보인대학에 일부는 낙가약방에 팔았고 중화인민공화국 이후 곽말약이 입주하여 이곳에 살았다북경에는 이렇게 과거 왕부였다가 주요 인물의 주택이나 관공서를 사용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곽말약(궈모뤄)는 사천성 출신으로 서양식 공부를 하였고 성도 유학을 거쳐 일본에 유학한다. 이후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하다가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대로 문학의 길을 걷기로 한 다음 휴학 후 상해로 귀국해 창조사를 성립한다. 이후 좌경화되어 5.4운동에 참..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4일 북해공원北海公园3

이제 섬을 돌아 열고루로 간다부채형으로 생긴 독특한 건물이다 경화도에서 바라보는 북해 진짜 크다 건너편이 안보일 정도 식당도 오늘은 문은 닫은 걸 보니 무슨 행사가 있나보다 열고루 건륭제가 왕희지의 쾌설시청첩, 왕헌지의 중추첩, 왕순의 백원첩의 3점의 희귀 작품을 얻고 역대 서예를 정리한 삼희당법첩을 만든 후 그 석각을 안치한 곳이다 황희지의 쾌설시청첩 모사본 석각이 가득하다 가득한 서예법첩 많다 한바퀴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배가 없어 북해를 따라 쭉 걷는다 임광전설명이 없는 건물 패방이 나오고 다리를 건넌다 곳곳에서 쉬고 잇는 사람들 자금성 각루도 보이고 경화도의 백탑도 보인다 경화도와 영안교 경치는 좋은데 걸어다니려니 죽을 맛 경화도와 연결된 또 다른 다리 작다 저 멀리 오룡정 너머 보이는 건물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