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1차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외조 삼대전1: 오문, 태화문, 태화전)

同黎 2015. 9. 1. 17:39



태묘를 나와 오문으로 들어간다.


저 줄은 다 입장객 줄이고 또 문 오른쪽에는 영어, 한국어, 일어 등 안내 오디오 가이드 대여소이다.


오문 정면


오문에 대한 설명은 대충 앞에서 했다.

오문 안시루 전경


오문 좌측의 누각들


드디어 오문으로 들어간다.

이 와중에 표 잃어버렸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오문 현판

오문은 시간의 기준이 되는 자오선의 중심임을 뜻한다.

즉 하늘의 기준이 여기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오문으로 들어간다.


이제 본격적인 자금성 탐방의 시작이다.

현재 중국에서의 공식명칭은 고궁박물원

자금성 자리는 원에 이어 명, 청에 이르기까지 8백 년 동안 정치권력의 중심지였다.

현재의 자금성 자리는 절반 정도 원의 대도 자리와 겹쳐 있다고 한다. 명이 원을 멸망시킨 후 대도를 

쓸어버리고 남경을 수도로 삼았지만 영락제가 쿠데타로 건문제를 몰아낸 후 지금은 자금성을 쌓았다.

동서 760m, 남북 960m, 면적 720,000m²로 현존하는 가장 큰 궁궐이다. 자금성(중국어로 쯔진청)이라는

명칭은 천자가 머무는 우주의 공간인 자미원(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는 하늘로 1년 내내 중국 어디서나

관측되기 때문에 천자의 공간으로 상정되었다.)의 자(紫)와 아무나 들어오는 것을 금한다 혹은

그 자체로 궁궐을 뜻하는 글자인 금(禁)자를 써서 그렇다. 영어로는 Forbidden City다.

대다수의 목조 건축물들이 그렇듯이 화재와 재건도 많았는데 이자성의 난으로 1420년에 지은 궁궐은

거의 불탔고 이후에 입관한 순치제는 자금성을 대략 중건하고 그대로 썼다. 그 후 강희제 때 대규모

중건을 하고 건륭제 때 다시 화려하게 중건하면서 지금의 자금성이 남았다. 물론 뭐 광서제 때 일부

불타고 어쩌고 했지만 대부분 잘 보관되었는데, 국공내전의 와중에 유물들의 상당수가 대만으로

옮겨져 국립고궁박물원에 보관되어 있고, 그 후 고궁박물원이라는 이름으로 개관되었다.

이후에도 문혁 과정에서 불탈 뻔 했지만 주은래의 제재로 살아남았으며 2000년대 이후로는

중국 민족주의의 급속한 강조와 더불어 많은 부분이 복구되고 또 활용되고 있다.

고궁인 동시에 박물관으로써의 역할도 하는데 소장품은 180만 점이 넘는다.


눈 앞에 보이는 태화문(太和門)

태화문은 명 왕조 때는 황극문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가경제 연간에 중건하였다가 화재로 소실되고 광서제 때 다시 중건한 것이다.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가례나 황제, 황후, 황태후의 거둥 시에만 열렸다.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목조 문이다. 원래는 더 컸다고 하는데 광서제 때는 한창 서양에

배상금을 주느라 힘이 들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규모가 조금 축소된 것이라고


좌측이 정도문(貞度文), 우측이 소덕문(昭德門)이다.

평소에 백관이 드나들던 문이며 숙직처이다.


협화문(協和問)

문화전으로 통하는 문이다. 명대 황태자의 정전이었던 건물이 문화전이다.

문화전 뒤에는 문연각이 있어 사고전서를 보관했다. 현재는 도자관이 되어 있다. 이번에는 생략


오문과 태화문 앞에도 물이 흐르고 한백옥으로 만든 다리가 다섯 개 놓여져있다.

이 물은 내금수하라고 한다.


다리 앞에서는 누구나 인증사진을 찍는다.


내금수하를 지나는 내금수교


가운데 다리는 황족들이, 그 좌우의 다리는 종친들만 드나드는 왕공교이다.

그 밖의 좌우 두 다리가 3품 이상의 관인만 건너는 품급교라고 한다.


상태로 보아 아마 명나라 때 것이 아닌가 싶다.



다리 건너 보이는 태화문


태화문 앞을 가로지르는 내금수하(內金水河)


아름다운 곡선으로 휘어지면서 흐르고 있는데,

당시의 허리띠인 옥대를 닮았다 하여 옥대하라는 별칭도 있다고 한다.


협화문과 각루가 보인다.


반대편의 희화문(熙和門)

무영전으로 통하는 문이다. 무영전은 문화전에 대응되는 건물로 대신들의 집무공간 중 하나이다.

명대에는 황제의 편전 중 하나였으며 이자성이 여기서 즉위식을 가지기도 하였다. 청대에는

흠정본(황명에 의해 편찬되고 감수된 책)을 만들어내고 그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 되었다.

현재는 회화관으로 쓰이고 있다. 역시 이번엔 생략


이종욱은 기념사진


나는 지쳐서 앉아 쉬고 있다.

한 2시간 넘게 서 있었으니...


뒤돌아 보이는 오문


午門


빨간 벽이 인상적이다.



파노라마 사진



정광조도 기념사진


이제 태화문 쪽으로 접근해본다.



태화문 앞의 청동사자상

이놈은 수컷이다.


가이드북에는 건륭제 때의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중국어 위키에는 명대의 것이라고 되어 있다.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이 사자들은 문무백관을 감시하는 하늘을 상징한다. 비리가 있는 관원을 물어 뜯어 죽여버린다는 점이다.

태화전 앞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사자상이니 대단히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공 조각을 보면 정말 섬세하다.

어깨에 있는 술의 표현도 정교하다.


뒷모습



태화전 계단 사이에는 이렇게 한백옥으로 만든 석등도 있고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鼎)도 보인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해 9주로 만들고 전국의 무기를 모아 각 주를 상징하는 큰 정 9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로 정은 황제를 상징한다.


태화문 문루 모습


정면

예전에 왔을 땐 열려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닫혀있다.


태화문 현판


중국어로는 타이허먼


태화문의 답도


간신히 관광객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간다.


파도 위로 떠오른 천하의 명산을 상징하는 오악(五岳) 위로 용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그렸다.


태화를 많이 당해서인지 상태가 아주 좋지는 않다.



겨우 사람들을 피해서 찍은 답도의 모습

중국에서는 단지(丹墀)라고 불린다.

본래 한대의 답도를 붉은색이었다고 한다.


하단의 파도와 오악 부분



오악 아래의 물결 부분


중간에 때운 부분도 보인다.


계단 부분


상서로운 칠보무늬가 새겨져 있다.


태화문에서 바라본 오문의 풍경



내금수교


이제 태화전으로 향하기 위해 태화문 옆의 문 중 하나인 소덕문으로 향한다.


소덕문 전경


소덕문 정면



소덕문 현판


소덕문을 나서니 자금성의 중심 건물이다. 외조 삼대전의 가장 큰 건물 태화전(太和殿)이 나온다.


파노라마


태화전은 자금성의 중심 건물이다. 명대에는 봉천전이라고 불렸다가 황극전으로 개칭되었고

청 순치제 때 태화전으로 바뀌었다. 이자성의 난에서도 살아남았으나 강희제 때 실화로 불타서

다시 지어진 것이 지금의 건물이다. 금란전이라는 이칭도 있다.


높이는 27미터에 달하고 정면은 11칸으로 64미터, 측면은 오칸으로 37미터이다.

도다이지 대불전이 높이 49미터, 정면 57미터, 측면 50미터인데 서로 동양 최대 목조 건축이라고 시끄럽다.


태화전 인접샷


태화문을 바라보는 기준에서 오른쪽에 있는 서쪽의 홍의각

영락제 때는 영락대전이 편찬된 곳이다.

청대에는 내무부로 쓰였던 건물로 황실의 보물을 보관했던 건물이기도 하다.


좀 더 태화문 정면 쪽으로 가서 찍어본 태화전


도다이지 대불전과 비교해본다면 높이야 절반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앞의 넓은 광장에 혼자 산처럼 솟아 있는 느낌이라 위압감을 더해 보인다.


특히 용마루가 직선이고 처마의 반전도 훨씬 적어 전반적으로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3단의 월대 위에 올라가 있다.

기둥이 총 72개라고 하는데 모두 운남성의 녹나무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조회와 가례 등의 행사들이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완전한 정면 모습


좌측의 문은 중우문(中門), 우측의 문의 중좌문(中左門)이라고 한다.

문의 이름에서 보이는 좌우는 황제의 시점이다.


태화문의 단지(답도)와 함께 나왔다.



태화문의 답도

이런 뒤쪽의 답도는 그냥 운룡석조라고 하는 듯하다.


태화전 정면


태화전 정면

뭔가 모르겠지만 압도적인 느낌이 있다.


왼쪽, 그러니까 동쪽의 체인각(體仁閣)

서쪽의 홍의각과 대응하는 건물이다.

명대에는 역시 학사들의 공간으로 쓰였고, 청에서는 여기서 143명의 학사들이 모여 명사를 썼다.

그 후로는 내무부에서 사용했는데 황실에서 쓰이는 가마 143개를 보관했다고 한다.



체인각 모습


반대편의 홍의각(弘義閣)




다들 태화문 난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정광조



나도 하나



이종욱이




정재현만 없네


이제 태화전으로 접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