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1차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동육궁)

同黎 2015. 9. 8. 00:54



이제 종표관(봉선전)을 나와 동육궁으로 간다.


영수궁 옆에 있는 동육궁은 서육궁과 마찬가지로 황제의 비빈의 처소로 활용되던 곳이다.

서육궁에 비해서 중요도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곳이

무엇보다 진보관을 보고 나면 기운이 빠져서 보기 어렵게 된다.

지금은 대부분 청동기관, 도자관, 불상관 같은 전시관들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유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보면 좋지만 우리는 너무 지친 나머지 가장 유명한 연희궁(延禧宮) 정도만 보기로 했다.


함화좌문을 지나면 동육궁이 모여있는 골목이 보인다.


연희궁으로 가는 도중에 보이는 경인궁에 잠깐 들리기로 한다.

정문인 경인문(景仁門)을 지나면


이렇게 옥으로 된 영벽이 나오고


경인궁(景仁宮) 본전이 나온다.

경인궁은 영락제 때 장안궁이었다가 가정제 때 지금의 이름을 지녔다.

순치제 때 복구되었고 이후 몇 번의 수리를 거쳤다.

여기를 거쳐간 유명한 이는 강희제의 생모인 순치제의 황후 효강장황후와 광서제의 애첩 진비가 있다.

강희제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별히 누런 기와를 써서 격을 높였다.

지금은 청대 황실에 헌납된 보물을 전시하고 있다.


유리로 장식된 연희문(延喜門)을 들어서면


이렇게 건축하다 만 건물이 나온다.

이게 연희궁이다. 정확히 말하면 연희궁의 정전으로 영소헌(靈沼軒)이다. 수정궁(水晶宮)이라고도 한다.


연희궁은 원래 명대에는 장수궁이었다가 강정제 때 연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강희제와 가경제 때

중수했다가 청 말기인 도광제 때 원래 건물이 모두 소실되어 재건했지만 함풍제 때 또 타버렸다.

그래서 동치제 때 연희궁을 재건하려 했으나 알다시피 동치제 때는 거의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었고...

결국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원년에 서양식 3층 건물인 수정궁을 짓도록 명했으나 나라가 망했다...


그래서 지금도 미완의 모습으로 남아있으며, 좌우와 뒤의 건물 역시 서양식 느낌을 지니고 있다.


건물 뼈대는 철골로 만들고 석재로 벽채를 만든 건물


공사하다가 중단된 건물

망한 나라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씁쓸하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의 모습

이것이 2층이다.


현재 보수공사에 들어간 듯하다.

하긴 이런 건물이 위험하지


뒤에 있는 빨간 벽돌은 동,서 배전으로 현재 각각 도자관과 서화관으로 쓰이고 있다.

왠만하면 들어갈텐데 너무 힘들어서 그럴 엄두가 안 난다.


연희궁 1층의 모습

1층이 아래로 쑥 들어가있다.

원래 계획은 1층에 물을 채워 아쿠아리움을 만들고 2층과 지반 사이에 유리를 깔려고 했다고 한다.

나라가 망해가는데 그런 최신 건물을 지으려고 했다니 될 리가 없지


아래에서는 동육궁 중 못 가본 4개 궁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승건궁(承乾宮). 명대 영녕궁이었는데 명 숭정제가 승건궁으로 바꾸었다. 순치제 때 다시 지은 건물이다.

승건궁은 동서 12궁 중에서 원래 가장 격이 높은 건물로 명대에는 혹 태자가 머물기도 했고

청대에는 강희제의 황후 효의장황후, 도광제의 황후이자 함풍제의 어머니 효전성황후가 머물기도 했다.

현재 청동기관으로 쓰이고 있다.

 



종수궁(鍾粹宮). 영락제 때는 함양궁이었으나 가정제 때 종수궁으로 바뀌었다. 건륭제 때 황태자의 거처로 만들기 위해 전전을 흥룡궁(興龍宮), 후전을 성철전(聖哲殿)으로 개칭하기도 했다. 숭정제의 태자, 즉 명의 마지막 태자의 거처였고 광서제 때는 동태후의 거처이기도 했다. 현재 옥기관으로 쓰이고 있다.

태자의 거처로 개조되었던 만큼 전전과 후전에 각각 배전이 두 개씩 총 4개 딸려있다.


영화궁. 처음 영안궁이었다가 가정제 때 영화궁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건물은 강희제와 광서제 때 중건한 것이다.

청나라 때 강희제의 황후이자 옹정제의 어머니인 효공인황후가 오래 머물렀고 여기서 옹정제가 태어났다.

여기 역시 건륭제에 의해 증축되었고 4개의 배전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청동기관으로 쓰이고 있다.


경양궁. 동육궁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영락제 때 장양궁이었으나 가정제 때 경양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 건물은 강희제 때 중수한 건물이다.

다른 11궁의 건물들이 정면 5칸인데 비해 이 궁은 3칸으로 매우 소박하다.

여기 머물렀던 인물은 만력제의 비빈이자 비운의 황제 태창제의 어머니인 공비 왕씨가 있다.

만력제는 장남이었던 태창제를 태자로 삼았음에도 싫어하고 3남 주상순을 황위에 앉히려고 했다.

공비 왕씨를 신분이 미천하다고 30년 넘게 여기에 유폐시켰는데 왕씨가 죽기 직전에야

당시 태자였던 태창제가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태창제가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고

하지만 정격안(梃擊案)이라는 일련의 왕위 계승 소동을 겪으면서 겨우 황위에 오른 태창제는

겨우 29일만에 의문의 죽음을 겪으면서 허무하게 죽었다.


경양궁


이렇게 동서 12궁을 대충 살펴보고 이제 후삼궁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