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1차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4: 창음각, 낙수당)

同黎 2015. 9. 6. 17:42



이제 양성전 뒤를 돌아 옆으로 가면 창음각이 나온다.

 

창음각(暢音閣)은 3층의 건물로 경극 무대이다. 건륭제가 이곳으로 이어하면서 지었는데 후일 서태후가 영수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공사가 이루어졌다. 높이가 약 2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로 이화원에 있는 경극무대와 함께 대표적인 중국 경극무대에 속한다. 앞에는 열시루(悅視樓)라는 경극 관람장이 있는데 현재 청대경극유물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현존하는 경극 고건축으로는 가장 큰 건물이며 건물 뒤쪽으로는 일종의 와이어 장치가 되어 있다.

경극 배우들이 입체감 있게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이 3층의 건물에는 각각의 층마다 별칭이 있는데

1층은 수대(壽臺), 2층은 녹대(祿臺), 3층은 복대(福臺)라고 한다.


너무 높은데 공간이 좁아서 카메라에 안 들어온다.


1층의 모습


가능한 잘 찍어보려고 한 건물

 

1층 현판

호천선예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1층의 모습

 

1층 내부 천정의 파란 부분이 위 공간과 통해져 있는 곳인 것 같다.

 

너무 안 보여서 사진을 가져왔다. 역시 디카가 좋네

 

내부 모습

무대가 보인다


반대편의 열시루. 현판은 건륭제의 친필이다.

2층에 마루를 한껏 빼었는데 저기서 황제나 서태후가 경극을 관람했다고 한다.

서태후가 경극을 그리 좋아했다니 참...



열시루 내부의 보좌


다른 자리들

여의와 거울도 전시되어 있다.


안에는 경극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경극 대본들


경극 소품들

 

창음각 모형

 

당시 와이어 액션이 가능했던 내부를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관람석

광서제의 자리로 앞에 놓인 것은 광서제의 유품이라고 한다.

서태후의 아들 동치제가 죽은 후 서태후의 선택으로 황제가 된 인물로 어머니가 서태후의 동생,

즉 서태후가 이모가 된다. 변법운동을 시도하다가 결국 원세개(위안스카이)에게 뒤통수 맞고

서태후에게 유폐되는 슬픈 인생을 지낸다.

 

광서제는 무슨 마음으로 경극을 봤을까


여러 경극 소품들

우리가 아는 건 패왕별희 정도라서 별 감흥은 없다.

 

악기들

 

소품용 무기들

 

이제 창음각을 나와 양성전 뒤의 낙수당(樂壽堂)으로 간다.

정면 7칸의 단층건물인 낙수당은 태상황후의 침전으로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광서제 때는 서태후가 60세 이후 이 건물의 한 칸을 자신의 침실로 개조하여 살았던 곳이다.

광서제가 아직 유폐되기 전에는 여기로 출근해 아침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건륭제가 지었던 건물답게 최고급 자단목과 남목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뒤편으로는 영수궁의 화원인 건륭화원이 있다.

나무에서도 보이듯이 여기서부터 자신의 휴식을 위한 안락한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건물 앞에는 동항과 함께 괴석들이 놓여 있다.

이러한 특이한 괴석은 당시로도 엄청난 값을 자랑하는 최고급 수장품이다.

 

낙수당 현판

건륭제의 친필이라고


낙수당 안에는 주로 옥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단 들어가면 대형 옥기들이 주는 박력이 대단하다.

 

이것은 대형 술잔인데 이와 비슷한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의 작품이 북해공원 안에 전시되어 있다.

아마 그것을 모방한 듯하다.

 

거대한 옥석으로 조각한 산 모형의 완성품

이런 것은 산자(山子)라고 한다.


옥석 원형의 모습을 살리면서 세세한 부분을 조각하여 산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우측 하단 깨끗하게 떨어져나간 부분을 절벽처럼 배치하고 그 곳에 글을 새겼다.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다. 역시 명품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금과 진주로 만든 천구의

지구의가 아니라 땅에서 보이는 하늘의 별자리를 그려 넣은 천구의이다.


거대한 천구를 화려한 용들이 떠받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당시 서양 기술도 반영된 작품이다.

 

금에다가 보석을 상감한 여의

 

산호 장식

 

역시 산호로 만든 대나무 모형 장식품



마노로 만든 장식품


청금석, 즉 라피스 라즐리로 만든 산자

엄청 고가일 듯


역시 청금석 산자


옥으로 만든 산자


옥을 깎아 만든 옥패


수정 주전자


금과 칠보로 만든 꽃병


안은 금으로, 밖은 산호로 만든 복숭아형 표주박

이 정도 크기의 산호를 구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소의 뿔로 만든 장식품

 

옥으로 만든 대형 산자


엄청 큰 산자

자단목으로 기단을 만들고 여러 종류의 옥과 마노, 산호, 자개 등으로 장식했다.

 

측면


산에 여러 인물상들이 올라와 있고 옥과 나무로 산림을 조각했다.


정면

자개로 강을 표현하고 자단목으로 다리도 표현했다.


정면


낙수당의 침실 부분


다른 내부


한쪽에는 초대형 장식장이 있다.

여기 있는 산자나 각종 장식품, 서적이 여기에 장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의 로망으로 조선의 책거리도에도 이런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뒤편으로 나가면 대향 산자들이 보인다.

 

낙수당의 하이라이트인 대우치수도옥산자()

 

하나라의 시조인 우(禹) 임금이 순 임금 때 넘치는 황하를 치수하는 장면을 옥으로 묘사한 것이다.

영자영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뒤편에는 명문이 남아있다.

 

이 대형 산자는 높이가 224cm이며 너비는 96cm, 무게가 5톤에 이른다.


다른 부분


일하는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위쪽은 벽옥이고 아래쪽은 까만 흑옥이다.


이건 또 다른 대형 산자

 


옆에는 거대한 코끼리 상아가 전시되어 있다.

 

금으로 만든 모형 화분


금과 진주로 나무를 만들었다.


옥과 비취로 만든 수선화 모형 화분



옥과 비취로 만든 대나무 화분

이제 영수궁의 가장 깊숙한 부분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