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차

入倭求史記 - 3일 오사카 히라카타 (백제왕신사百済王神社·백제사지百済寺跡)

同黎 2013. 11. 14. 00:26



오늘은 어제 미뤄졌던 교토에 가는 날이었다. 교토가 가기 전 아침 일찍 일어나

오사카부 히라카타시에 있는 백제왕신사(구다라오진자)와 백제사지(구다라지)에 가기로 한다.

일요일 아침 일찍 나왔는데 일본의 중고등학생들은 클럽활동을 하러 나가고 있었다.

이런 건 참 신기하다. 한국에서 CA는 아무것도 아니다.


역에서 내려 15분 정도를 걸어 언덕 위로 올라가면 백제왕신사와 백제사지가 보인다.

이 둘은 붙어있다.


꼭두새벽부터 이런 데 찾아오는 우리를 고딩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백제왕신사. 백제왕신사는 백제왕족이자 아좌태자의 후손인 왕진이라는 사람이 일본에 정착하고

백제왕(구다라오)이라는 씨를 하사받으면서 그의 조상을 제사지내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일본에 남아있는 고대 한국의 흔적 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유적 중 하나이다.

백제왕씨는 후에 미마쓰(三松)씨로 바뀌어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제신은 백제왕·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男命, 우두천왕)

백제의 선광은 신라·당 연합군에 의해서 조국이 멸망했을 때 일본에 망명해 왔다.

이윽고 조정을 모시게 되어 백제왕씨라고하는 성을 받아 나니와(難波) 땅에 거주했다고 한다.

이후 무츠노카미(陸奥守)에 임명됐던 백제왕 경복(敬福)은 쇼무(聖武)천황의 동대사 대불주조 때

무츠노쿠니(陸奥國)에서 산출한 금을 헌상해 그 공에 의해 가와치노카미(河内守)에 임명된다.

경복은 츄구(中宮)의 땅을 받아 일족 결합의 상징으로서의 일족의 명복을 위한 절로서 백제사,

씨족신으로서 백제왕신사를 축조해 일족이 다 같이 이 땅에 자리 잡고 샀다고 생각되고 있다.

....(생략).... 덧붙여 배전에 걸리는 「백제국왕·우두천왕」의 목조 편액은 해당 신사가

백제왕씨의 조령을 모시는 신사인 것을 밝힌다.

하내수에 임명받아서인지 가와치(하내)지역에는 유난히 도래인 관련 유적이 많다.


배전. 최근에 새로 지은 것이다.



경내 안내도


구 배전

현재는 사무소로 쓰는 중


배전 안에 있는 현판. 백제국왕, 우두천왕이라고 써있다. 좀 헷갈린다.

백제국왕과 우두천왕을 나란히 모신 것인가? 백제국왕은 의자왕의 아들인 선광으로 보는 게

옳다고 한다. 근데 우두천왕은 신라 우두산에서 왔다고 전해지며, 현재는 스사노오노미코토와

동격으로 여겨진다. 무슨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백제와 신라계 신이 같이 모셔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전 정면



백제왕신사 개축기념비


배전 뒤의 본전



제사음식을 주관하는 이나리신을 모신 섭사


본전. 여기 신물이 있을 것이다.



백제왕신사 바로 우측에는 백제사지 공원이 있다.


신사 한쪽으로 나가면


이렇게 특별사적 백제사적이 나온다.

백제사는 대신이었던 백제왕 남전이 죽자 나라시대 쇼무천황(성무천황)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구다라지라고 읽는다. 2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헤이안시대 화재로 소실된 이후 복구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서탑지 표석


주춧돌



발굴조사와 정비가 진행 중이었다.







중문지



주변은 이미 주택이 들어섰다.

석촌동 백제고분군이 이렇다.





동탑지




기념사진


백제사지에 온 감회를 즐기는 백제사 전공자

일본에는 백제사가 3군데 있는데 오사카 히라카타시와

나라현 고죠정이 있는 것은 구다라지로 읽고,

시가현 오미하치만시에 있는 것은 햐쿠사이지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