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차

入倭求史記 - 2일 아스카2 (타치바나데라橘寺·이시부타이 고분石舞台古墳)

同黎 2012. 7. 29. 02:04



덴무-지토 천황릉을 지나 이시부타이 고분쪽으로 길을 잡는다.

그러던 중에 타치바나데라(귤사)라는 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들리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매우 잘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밥 먹을 곳이 없다는 것.

너무 시골이라서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을 넘게 걸었을 때 겨우 세븐일레븐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서 급히 식사를 해결한다.

첫 일본 편의점 도시락은 나쁘지 않았다. 반찬은 한국과 비슷한데 밥의 수준이 현격하게 달랐다.

한국 편의점 도시락은 밥이 푸석푸석한데, 여긴 정말 탄력이 있었다. 내내 먹을 만했다.

 

타치바나데라로 가는 길에 카와라데라(천원사)라는 절터를 만났다.

 

절은 거의 사라지고 유적만 남아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가 없다.

아스카시대의 유적 위에 현대 미술품 같은 것을 전시해 놓았는데 그닥 볼품은 없었다.

 

카와라데라 전경


카와라데라 바로 옆에 타치바나데라(橘寺)가 보인다.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귤사.

본래 여기에는 요메이천황의 별궁이 조성되어 있었다는데, 쇼토쿠태자가 이 곳 또는

이 근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 후 쇼토쿠태자가 이 궁을 헌납해 절이 들어섰다고 전해진다.

지금 건물은 거의 에도시대의 것이지만, 안에는 아스카시대의 목탑지도 남아있다.

 

처음 가 보는 일본의 절이었다. 보이는 풍경도 아름답다.

 

성덕태자 탄생지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타치바나데라(귤사)는 현재는 천태종 사찰이고 본존은 쇼토쿠태자이다. 쇼토쿠태자가 세운 7대

사찰 중에 하나인데, 실화로 사찰 전체가 불탔고 지금의 건물은 대부분 에도시대 말기의 것이다.

귤이라는 이름은 이른바 일본의 4대 귀족성씨라고 하는 평원등귤(平源藤橘)중 하나인 귤씨(타치바나씨)를 연상하게 한다. 무슨 연관이 있을까? 쇼토쿠태자의 외척에도 타치바나씨가 있는데...


오미즈야. 손을 씻는 곳

 

사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약수터인 줄 알고 시원하게 물을 마셨다.


아스카시대의 타치바나데라는 호류지와 같이 회랑 안에 탑과 금당이 있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안내문의 붉은 선이 아스카시대 가람 배치를 나타낸 것이다.

 


빗물 저장소


본당(태자전) 전경

 

관음당


본당 앞에는 성덕태자의 애마였다는 흑마의 동상이 서 있다.



본당(태자전) 안에는 가마쿠라시대의 쇼토쿠태자 섭정상이 모셔져있다.

불상 대신 성덕태자를 주존으로 모시고 있다. 중요문화재이다.


몰래 찍었다.

병환이 든 아버지 요메이천황을 대신하여 국정을 돌봤다는 고사에서 연유한 도상이다.


태자전 편액

일본에서는 쇼토쿠태자를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본은 신사나 절마다 앞에 와니구치라는 쇠로 된 징이나 방울을 달아 놓았다.

밧줄을 흔들어 소리를 내어 신을 깨우고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본당 입구





이제 본당 뒤편으로 간다.


본당 옆에는 이면석이라는 아스카시대의 석조물이 있다.

아스카에는 이렇게 아스카 시대의 이색적인 석조물이 많이 있다.

주선석이나 귀석 등등이 그것인데, 아스카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불교가 전래되기 전 일본 고유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면석은 말 그대로 얼굴이 두 개인 석상인데, 하나는 선, 하나는 악을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찡그린 얼굴로 보아 악을 상징하는 듯하다.



반대편

웃고있는 모습으로 선을 의미한다.





본당 한켠에는 이렇게 탑지에서 발견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관음당에서 바라본 아스카. 구릉과 산으로 둘러싸인 포근한 분지



본당에서 바라본 아스카의 풍경


높은 산이 아스카를 둘러싸고 있다.


오층탑 유적


아스카 시대에는 커다란 오층탑이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탑의 심초석이다.


타치바나데라를 나선다.


여기서 이시부타이 고분까지는 아름다운 길이 계속된다. 아스카는 보도나 자전거로

둘러보기 참 좋게 길을 잘 만들었다. 또 길 중간중간에는 겨울철이라 농가에서 귤을 판다.

100엔이면 한 묶음을 살 수 있는데 정말 달고 맛있다. 아스카를 걸으면서 내내 귤을 먹었다.



귤사 옆에 있는 가정집. 처진 소나무를 멋지게 길러 놓았다. 기념샷



타치바나데라에서 숲으로 난 길을 10분쯤 걷다 보면 아스카천이 나온다.

1급수라고 한다. 보기에도 아주 깨끗했다. 이미 많이 걸었지만, 헤어지기

아쉬울 정도로 매력적인 길을 뒤로 하고 이시부타이 고분으로 향한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 숲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이시부타이 고분에 도착



사적 중에서도 특별사적이다.


이시부타이 고분은 덴무-지토 천황릉처럼 하단은 네모지고 상단을 원형인 고분이다.

상단 원형의 봉분은 흙이 모두 사라지고 석실이 노출되어 있으며,

사각 하단 아래에는 해자 같은 것이 있다.


이시부타이 고분은 소가노 우마코의 무덤이라고 전해진다. 소가 씨족은 성덕태자와 함께 모노노베

씨족에 대항해 불교를 일본에 들여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도래계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다이카 개신으로 천황권을 확립하려던 나카노오에 황자(후의 덴지천황)에 의해 강력한 귀족으로

성장한 소가 씨족이 제거되는데, 이 때 암살당하는 소가노 이루카가 마지막으로 권력을 움켜진

소가 씨족이다. 소가노 우마코는 그의 할아버지로 4대에 걸쳐 대신(오오미)을 지내며 성덕태자와

함께 불교를 수용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는 모노노베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천황가와 혼인을 맺고 자신의 손자를 천황으로 옹립했는데, 그가 스슌 천황(숭준 천황)이다.

그러나 스슌 천황이 소가 씨족에 저항하자, 그를 암살하고 자신의 질녀이자 비다쓰 천황의

부인인 스이코 천황(추고 천황)을 천황으로 옹립하기도 했다.


이시부타이 고분의 석실이 노출된 것은, 다이카 개신으로 소가씨가 제거된 이후

사람들이 소가노 우마코에 원한을 품고 봉분의 흙을 파내서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가야 석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이시부타이 고분을 배경으로 한 설치미술이 시작되고 있었다.

해자 부분에 안개를 채우는 '아스카의 안개'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덕분에 전체가 뿌연 안개로 가득차기 시작한다.


고분의 석실, 30개 정도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덮개돌의 무개는 75톤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차라리 왕릉이 아닐까 한다.



서서히 가득차는 안개


무시무시하다.



꽃을 바친 게 보인다.


석실의 틈



연도


입구


들어갈 수 있는데 좀 무섭다.



재현. 답사수업 PPT에 횡혈식 석실분을 넣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석실 안까지 안개가 가득 차 탈출한다.











고분 근처 언덕으로 올라가 다시 고분을 바라본다. 워낙 거대하니 정말 볼 만하다.

고분에 별 관심 없는 나도 괜찮게 느껴졌다. 역시 크기의 미학이라는 게 있다.


이제 다시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