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차

入倭求史記 - 2일 아스카4 (아스카데라飛鳥寺)

同黎 2013. 11. 14. 00:22



다시 길을 걸어 아스카데라(비조사)로 향한다. 본래 만엽문화관에 들릴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늦어져 4시가 넘었기 때문에 더 중요한 아스카데라부터 들리기로 했다.

오카데라를 내려와 한참을 걸어야 아스카데라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아스카데라에 쓰였던 기와를 구웠던 와요터를 보았다.

백제의 와박사들이 와서 구웠겠지?


아스카데라에 도착한 건 무려 4시 반. 4시 45분에 문을 닫는데,

다행히도 마음좋은 아저씨가 배려를 해줘서 입장도 하고 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다.


아스카대불.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아스카데라는 본래 소가씨의 씨족사로 지어져

많은 백제인들이 동원되는데 그 중 하나인 백제인 기술자인 구라츠쿠리노 도리를 불러 지은

사찰이다. 그러나 수도가 나라로 옮겨가면서 아스카데라도 옮겨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다이안지(대안사)이다. 가람배치가 백제 위덕왕 때 지은 왕흥사와 비슷하단다. 아스카대불은 많은

화재를 당하여 얼굴의 일부와 몸통의 절반 이상은 아스카시대의 것이 아니다. 특히 에도시대

초기의 화재로 큰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5미터 정도의 거대한 불상, 그것도 1300여 년 이전의

불상을 직접 면대하는 것은 대단한 감동이었다. 모두 삼배를 올리고 정신없이 사진 촬영을

했다. 나는 불상 앞에 앉아서 음미하였다. 전공시대와 관계 없이 역사의 흔적을 면대하는

일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아스카대불은 직접 봐야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수리하면서 잘못되었는지 목이 약간 삐뚤어져 있다.






아스카대불의 상호

수리한 흔적이 있다.



아스카대불의 복원도. 대부분의 백제 불상과 마찬가지로

일광삼존(한 광배에 본존과 좌우 협시가 함께 있는)의

형식이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광의 일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쪽에 있는 쇼토쿠태자상


아미타여래



본당과 좌우의 승방에는 아스카데라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 최초의 가람인 아스카데라는 나라 천도 후 나라로 옮겨가는데, 그게 바로 간고지(원흥사)다.

그러나 여전히 절은 유지되고, 점차 쇠락하다가 아스카대불이 있는 자리에 에도시대 다시 절이

세워졌다. 그래서 에도시대 안거원이라고 불리다가 다시 아스카데라라고 불리고 있다.


토기편들






삼파문 와당


타치바나데라에서 출토된 기와편






백제의 것과 비슷한 연화문 와당


백제 것과 정말 비슷하다.


아스카데라 발굴 당시의 사진들






목탑의 심초부분


심초석 내부의 사리용기를 담은 목함


사리구


아스카대불의 내부


불상의 대좌


아스카시대 축국과 관련된 것들도 있다. 나중에 교토고쇼에 갔더니 축국의 정원도 있었는데,

고대 전통이 에도시대까지 이어졌나보다. 신라도 축국은 좀 했지 아마?


축국에 쓰는 공


백제와의 관련성 때문인가? 예산 수덕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세지보살과 심사대장



아스카데라 복원도


아스카데라를 나와 만엽문화관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문을 닫았다.

아쉬운 대로 바로 앞에 있는 거북형 석조물만 구경하였다.

역시 아스카시대의 석조물인데, 제사 건축물에 물을 대던 시설로 추정하고 있다.



이제 만엽문화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카시하라진구마에역으로 간다.

저녁 6시가 안 됐는데 막차다. 처음 타보는 일본 버스는 그냥 재미있었다.

뒤로 타고 앞으로 내리는 것도 한국과는 달랐다.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으며 둘째 날 일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