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3일 교토 동부2 (묘호인妙法院)

同黎 2018. 5. 17. 01:41



지온인에서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간다.

묘호인 특별공개가 3시 반이면 문을 닫기 때문에 미친 듯이 가야 한다.


묘호인 특별공개


묘법원문적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묘호인은 몇 번 왔지만 항상 배관 사절인 곳이라 내부는 처음이다.



묘호인(妙法院, 묘법원)은 천태종 문적사원이다. 천태종은 다른 종파와 달리 매우 중앙집권적이다. 그래서 동북대본산 주손지, 관동대본산 칸에이지 같은 곳은 있지만 정작 명찰이 모여있는 간사이 지방에는 본산급 사찰이 없다. 대신 과거 황족들이 대대로 문주를 하던 교토의 다섯 사찰 묘호인, 산젠인, 쇼렌인, 만슈인, 비샤몬도를 천태오문적이라고 해서 총본산 엔랴쿠지 바로 아래 두었다. 후에 잠시 문적이면서 엔랴쿠지 산하 사무소 역할을 하는 시가인이 추가되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묘호인은 가장 높은 격에 속하는 사찰이다.

묘호인은 본래 고시라카와천황의 이궁인 호주지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사찰이다. 본래는 천태종의 사찰이 다 그렇듯이 히에이잔의 승방에서 시작하여 후의 천태좌주가 된 황족이 묘호인 문주가 되면서 문적사원이 되었다. 그 후 고시라카와천황이 자신의 이궁 근처에 히요시대사를 권청해 이마히에신궁을 세우면서 이 별당사찰로 묘호인을 산에서 교토로 이전했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는 정확히 아니지만 멀지는 않았다고 생각되며 기온 근처로 생각된다. 이후 호주지는 세월이 흘러 작은 사찰로 변했고 고시라카와천황이 세운 산쥬산겐도는 본당만 남았는데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호코지를 세우면서 인근을 관리하기 위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리고 호코지의 천승공양을 하기 위해 거대한 부엌을 세웠는데 그것이 지금 국보로 지정된 묘호인의 대고리이다. 이후 쇠락한 호주지, 산쥬산겐도, 이미히에신궁을 관리했고 이후 호주지와 신궁은 독립했지만 산쥬산겐도는 지금은 묘호인 소유이다.

에도시대에는 도요쿠니신사가 막부에 의해 혁파되자 신사의 유물들을 모셔가 대신 보관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사찰에 명나라가 히데요시에게 하사한 명나라 관복류 등 유물이 대단히 많다.


대고리의 모습이 보인다.


국보


모모야마시대의 작품


대고리 내부


보이지도 않는 높은 천정

내부에 들어와 보는 건 처음이다.


묘호인 서원


내부의 후스마에는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히데타다의 딸인 고미즈노오 천황의 부인 도후쿠몬인이

자신의 건물을 기증한 것으로 중요문화재다.


정원



후스마에들


화려하다


작은 정원


호마당


부동명왕을 모시고 있다.


호마당 옆의 작은 불당


뒤편에는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다완들


센노 리큐의 차샤쿠


고려다완


차이레와 라쿠다완


차이레들


차츠보


중요문화재 고시라카와천황상


히요시만다라


중요문화재인 고코마츠천황의 편지


히데요시의 갑주


국보인 포르투갈 인도부왕의 신서

양피지에 써진 문서로 인도 고아에 있던 포르투갈의 부왕이 히데요시에게 그의 통일을 축하하고

천주교 포교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는 문서이다. 텐쇼견구소년사절이라고 해서 키리시탄 다이묘인

오토모 소린, 오무라 스미타다, 아리마 하루노부가 이탈리아 로마에 4명의 소년을 파견했고

이들이 돌아왔을 때 히데요시에게 헌상된 물건 중 하나이다. 진본이 나왔다.


석가여래상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과 아미타여래상


아미타불과 석가여래상

각각 헤이안시대와 무로마치시대의 것이라고


아미타여래상


앞에서 조선시대 연적이 있다.


산조 사네토미의 상

아이즈와 사츠마번의 공무합체파가 득세하자 위험해진 교토의 일곱 공경이 여기서 모여

조슈번의 호위 아래 조슈로 내려갔는데 그 중 산조 사네토미가 있었다.


말 그림의 가리개


보현연명상


정원의 모습


이제 밖으로 나왔다.


서원



서원의 현관


대현관이다



메이지천황의 행재소라는 기념비


당문

당문 형식은 아니지만 메이지천황이 이 문으로 들어왔다고


신전



칠경의 탈출 기념비


신전


신전 앞의 홍매화



백매화



때 이른 봄에 만나는 꽃


신전 정면


본당


보현당으로 아주 작은 건물이다.

18세기 후반의 건물로 중앙에는 중요문화재인 본존 보현보살상을, 뒤에는 원삼대사와 오대명왕을 모셨다.


멀리 보이는 본존상

중요문화재이다


신전


앞에 칠경의 탈출에 관한 안내문이 써 있다.


당문


고리


이제 나간다


표문 앞 계단은 과거 호코지의 석축을 재이용했는지


각 다이묘들이 바쳤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