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4차 東京, 東北

동일본대탐험 - 8일 가마쿠라2 (켄초지建長寺)

同黎 2018. 7. 19. 23:03



이제 버스를 타고 켄초지로 간다.


차가 많지는 않다.


뭐 못 기다릴 정도는 아니다.


켄초지 하차


가마쿠라역 방향 버스시간표

20분에 한 대 꼴


가마쿠라학원이라는 중고등학교

아마 절에서 운영하는 듯


외문

임제종 가마쿠라오산 1위 건장사라는 표석이 보인다.


켄초지(建長寺, 건장사, 겐초지, 켄쵸지)는 임제종 건장사파의 대본산이다.

가마쿠라에서 가장 큰 사찰로 가마쿠라오산의 제1위에 해당한다.

가마쿠라 막부의 제5대 싯켄인 호조 토키요리가 남송의 승려 난계 도륭(난케이 도류)를 모셔 지은 절이다.

당시 일본은 미나모토가 쇼군의 몰락을 틈타 고토바상황이 호조씨에 대립하여 군사를 일으킨 조큐의 난을 진압하고 호조씨의 권한이 강해진 상태였다. 호조씨는 사실상의 관사로 가마쿠라 북쪽의 출입구이며 호조씨의 본거지였던 가마쿠라의 야마노우치에 거대한 사찰을 지었다. 원래 이 지역에는 심평사라는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는 사찰이 있었는데 그 본존이 지금까지 이어져 선종사찰임에도 지장보살이 본존이 되었다.

켄쵸(건장)라는 사명은 당시의 연호를 하사받은 것이다. 연호를 받은 사찰은

예사롭지 않은 사찰들이 대부분이다. 닌나지, 엔랴쿠지, 다이고지 등등이 그렇다.

그러나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발생한 가마쿠라대지진으로 건조물이 대부분 무너졌고,

원에서 건너온 승려 일산 일녕(잇산 이치레이)에 의해 재건된다. 그러나 가마쿠라시대 말기에

대화재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고 이후 막부에서는 무역선을 통해 비용을 마련해 재건했다.

지금의 건물은 에도막부 초기에 재건된 것으로 특히 다른 곳의 주요 건물을 이축하였다.

관동대지진으로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주요 건축은 살아남았다.



경내도


외문은 최근 지은 것


내부에는 주차장이 있다.


총문


관동대지진으로 사라진 것을 교토의 한쥬인이라는 사찰의 것을 이축했다.


총문 전경

18세기의 건물이다.


거복산이라는 현판


안내문


입장하는 곳


활짝 핀 작약


총문 앞 화단을 지나가야 산문이 나온다.


환하게 핀 작약


삼문이 보인다


옆에는 탑두


건장흥국선사라는 현판

에도시대에 재건한 것이다.


엔가쿠지 산문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좀 더 크다.

2층에는 보관석가여래와 십육나한, 그리고 동조오백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


복사꽃


한쪽에 모셔진 빈도로존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산문 뒷면


한쪽에는 초가로 된 종루가 있다.

모셔진 범종은 국보이다.


범종 안내문


이 종도 높이 2.1미터의 큰 종이다.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동종으로 희소하게 남은 창건의 유품이다.

명문은 난계도륭이 작문하여 직접 쓴 것이다.


명문에 건장선사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선사라는 명칭을 쓴 최초의 예이다.


다른 쪽


전형적인 가사형 동종이다.


산문의 측면


한쪽에는 향나무가 서 있다.


개산 당시에 심었다는 나무이다.

불전 앞마당은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제 불전으로 간다.

유서가 깊은 건물이다.

2대 쇼군 히데타다의 부인이자 3대 쇼군 이에미츠의 친모,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친모인 요도도노의

동생인 스겐인의 에도 죠조지 영옥을 교체하는 김에 그 영옥의 본전을 불전으로 하사한 것이다.

이래저래 역사가 깊은 건물로 중요문화재이다.

에도의 영묘건축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남은 유일한 유물이다.


안내문


내부에는 본존 지장보살이 있다.


무로마치시대의 유물로 높이 2.4미터의 대작이다.


내부는 영묘건축인만큼 조각과 채색으로 가득하다.


본존의 확대


금박 입힌 벽화에 채색이 그대로 남아있고

거기에 천개를 올렸다.


좌우의 모습


이제 뒤편의 법당으로 간다.

역시 중요문화재로 19세기에 재건됐으나 가마쿠라시대 최대의 건물이다.


안내문


법당 뒤편으로 보이는 방장과 당문


화려하다


법당 내부에는 천수관음보살과 함께 인도 간다라풍의 석가모니고행상이 모셔져 있다.


천수보살상

못생겼다


천장의 운룡도는 2005년 작


뒤편으로 보이는 탑두들


에도시대 건물인 듯


법당 뒷면

크다

확실히 크다


당문

최근에 복원을 끝내서 화려하다.

역시 스겐인의 영묘 정문이었던 건물을 하사한 것

중요문화재


안내문


금박이 잔뜩 입혀져 있다.


조각도 세심


문의 모습


향배 부분의 조각


뒤편에서 바라본 법당과 불전


당문 옆으로 지나


방장으로 들어간다


당문 측면


방장은 에도시대 건물로 역시 교토 한쥬인에서 옮겨온 것이다.

참고로 이 한쥬인이라는 절은 본래 천태종 사찰로 황실의 역대 위패를 안치했는데 신불분리령으로

위패는 센뉴지에 반납하고 그나마 있던 건물도 대부분 켄쵸지로 옮겨져서 흔적만 남았다.

그나마도 2011년 파산해서 토지와 건물은 경매로 넘어가고 중요문화재인 불상 3개는

다른 사찰에 보관했는데 이를 전 주지가 무단으로 가져와 은닉하는 바람에 구속되는 막장상태이다.

 

방장으로 들어선다.


옆은 사무소


방장에서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상대로 참선체험을 하고 있다.


방장에서 본 당문


당문 정면

멋있군



방장 앞마당


방장 안내문


멀리 법당과 불전이 보인다.


마루를 따라 뒤편으로 가면


정원이 나온다


정원은 무소 소세키가 만든 것이라고 하며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쪽을 신축건물로 덮은 게 애석하다.


구불구불한 연못


끝에 심긴 소나무


원경



정원 건너편으로 봉래산을 의미하는 작은 언덕도 만들었다.



새로 지은 건물에서 보기는 좋겠다만...


정원을 나선다


정원 옆으로 가는 길


한 탑두로 통하는 길에


조선에서 건너온 문인석이 서 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왔을까


아름다운 복사꽃


이렇게 켄초지를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