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6차

일본횡단기 - 12일 나가노 마츠시로1 (마츠시로성松代城)

同黎 2020. 4. 11. 23:53



이제 마츠시로로 간다.


마츠시로는 현재 나가노시에 속해있지만 역사적 배경이 다른 곳이었다. 젠코지의 사하촌으로

시작한 나가노와는 달리 10만석 사나다 마츠시로번의 거점으로 성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였다.

그러나 1966년 마츠시로정이 나가노시와 합병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젠코지 주변의

나가노와는 달리 인구도 계속 줄어들면서 구 정역 인구가 2만명 가까이 되면서 이곳을

지나던 사철 나가노전철의 야시로선도 폐선이 되면서 점점 더 쇠락하고 있다.


그러나 역덕들에게는 무려 사나다의 근거지가 있던 곳이자,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의

전설적인 전투인 카와나카지마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카와나카지마 전투지도 유명하지만 버스가 흔치 않기 때문에

시간상 마츠시로 성 주변만 가기로 한다.


버스 도착


마츠시로 행


아예


행선지가 카와나카지마 고전장 행이다.


30분 정도 길을 달리니


오래된 건물이 눈에 띈다.


폐역이 된 마츠시로역

지금은 주차장과 버스정류장이 되었다.


자판기에도 사나다 가문의 육전문이


마츠시로 관광안내도

산 쪽에 유사시 천황이 대피할 마츠시로 대본영 혹은 나가노 대본영이 있는데

시간이 안 되서 거기까지 가진 못했다.


버스 정류장


나가노행 버스 시간표

많지 않다


주변 안내도

뭐가 대단히 많다.


이번엔 주로 사나다 관련 유적만 볼 예정


날이 좋다


이제 역을 나가면 바로


성이다


펜스가 쳐져 있는데 발굴조사 중이다.


현재는 혼마루만 남아있고 나머지 니노마루, 산노마루와

어전이 있던 하나노마루는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니노마루로 들어간다


마츠시로성(松代城, 송대성)은 이곳을 다스리던 10만석 마츠시로번의 거성이다. 본래 나가노가

위치한 북 시나노 지역은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이 대립하던 곳으로 뚜렷한 지도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코쿠진이라고 불리는 막부로부터 조세를 대행하여 거두던 중소 영주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지역이었다. 마츠시로성도 그러한 중소 영주의 성 중 하나로 카이츠성(海津城)

이라는 성이었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카와나카지마 전투 당시 다케다의 가신인 야마모토

칸스케의 명으로 세워진 성 중 하나라고 하지만 정확한 것을 알 수 없다. 다만 전투 이후 이 성이

다케다 측의 성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케다의 멸망 이후 이 지역은 오다의 가신인 모리

나가요시의 거성이 되었다가 혼노지의 변 이후 비어졌다가 다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인

타마루 나오마사의 성이 된다. 지금의 성은 다케다 당시의 성을 타마루가 개축한 것을 기초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사나다 노부유키가 이곳에 입성하면서 부터이다.


시나노의 코쿠진 출신인 사나다씨는 다케다가의 편에 서서 싸웠다. 사나다 노부유키의 아버지인

사나다 마사유키는 전설적인 전략자로 지금의 우에다를 중심으로 하였으며 다케다의 멸망 이후

오다 노부나가를 섬겼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때문에 세키가하라에서는

차남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와 함께 서군에 서는 선택을 했으며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우에다

성에서 막아서 본군 합류를 지연시키기도 했다. 세키가하라 이후 이에야스는 사나다 마사유키와

노부시게를 고야산 아래 쿠도야마에 유배 보냈고 노부시게는 이후 탈출하여 오사카 전투 당시

사나다마루를 세우며 전설적인 활약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버지 및 동생과는 달리 사나다 노부유키는 세키가하라에서 도쿠가와군에 협력했고 혼다

타다카츠와 결혼하여 막부에 협력한다. 그 결과 아버지의 우에다 3만5천석은 빼았겼으나

따로 영지를 받아 누마타번을 다스리다가 다시 이곳 마츠시로 13만석으로 이봉된다.

메이지유신 이후 지금도 이 지역에서 사나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후 번의 사정은 좋지 못했다. 상인들은 젠코지 사하촌에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츠시로성 아래는 조카마치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나마 있는 성 아래 마을도 수해도 번번히

휩쓸려 18세기에는 아시가루의 파업까지 일어났으며 부채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화재로 성

전체가 소실되기도 했고 지진으로 대부분의 성이 대파되기도 했다고. 결국 메이지시대 직전 성

밖으로 어전이 새로 세워졌다. 메이지시대에는 폐성이 되어 부지는 불하되었고 모든 건물이 파각

되거나 화재로 소실되었다. 성이 공원화되면서 수영장이 들어서기도 하는 등 파괴가 극심했다가

전후 사나다씨의 후손이 성의 부지와 어전 건물을 기증하여 사적으로 지정되고 정비된 것이다.


니노마루

아무것도 없다


니노마루의 석장문 터


니노마루 어전이 있었다는 터


혼마루로 가는 길


해자에 다리가 놓여있다.


해자와 성


석단이 생각보다 낮다.


해자 바깥쪽은 아직 복원이 안 되었다.


혼마루는 개방 시간도 있다.

9시부터일 이유가 있나


혼마루로 가는 문


히가시아카즈노몬(동불명문)


혼마루의 동문


야구라 터만 있다.


카이츠성이라는 비석


멀리 천수대가 보인다

이미 에도시대 중에 천수각은 소실되고 재건되지 않았다고


들어온 문


안쪽에서 본 모습


총안이 뚫린 성벽


안으로 들어간다


중간 중간 있는 문


이건 북문이다


안내문


우물


북문으로 나간다


이중문


혼마루 내부


한가하다


멀리 보이는 산


다시 밖으로 나와


역으로 간다


반대편으로 가야 사나다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