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6차

일본횡단기 - 12일 나가노1 (젠코지善光寺1)

同黎 2020. 4. 7. 01:51



12일째 아침

호텔을 나와 젠코지로 간다.

숙소가 많이 없어서 너무 좋은 데서 묵었다.


역으로 가는 길


나가노역


반대편의 젠코지구치로 나간다.


어제 지나갔던 올림픽 포스터


98년

벌써 그렇게 오래되었나


젠코지구치

아예 서쪽 출구 이름이 젠코지이다.


나가노 자체가 젠코지의 사하촌으로 시작한 도시이니


사찰 풍의 거대한 기둥과 장식들


크다


육교 건너 7번 노리바 근처에서 티켓을 산다.

젠코지는 시내에서 버스타고 금방 가지만 우리는

더 멀리 마츠시로까지 가기 때문에 티켓을 사는 게 이득이다.


역에서 육교를 건너면


알피코 하이웨이 익스프레스 버스 사무소가 있는데

여기서 티켓을 산다.


역의 버스 노선도

1번 노리바가 젠코지, 3번이 마츠시로


버스 시간표

젠코지행은 뭐...


주말


버스 출발


젠코지 입구인 젠코지 다이몬에서 하차


오래되어 보이는 여관

근처에 숙소가 참 많다.


들어가자


멀리 보이는 인왕문


여기서 한참 들어가야 한다.


한쪽에 나가노시 도로원표가 있다.


과거 탑두가 지금은 대부분 숙방에서 여관 같은 숙소가 됐다.


오래되어 보인다


젠코지 참도라는 목표


젠코지 참배로 전체가 사적이다.


여기도 료칸


탑두인 다이혼간


정토종과 천태종의 합작으로 운영되는 젠코지에서 정토종의 중심지


참도에 세워진 등롱


48개를 세우면서 아미타여래의 사십팔대원을 새겼다고

 

이렇게 번호와 아미타여래의 대원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다이혼간 입구


대이혼간(대본원)이라는 표석


입구


당문 형식이다


멀리 보이는 인왕문


크다

젠코지는 다 크구나


당명방이라는 숙방


이건 미륵인가? 포대인가?


하여튼 많다


드디어 인왕문에 도착

젠코지(善光寺, 선광사)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성지 중의 하나이다. 초교파 사원으로

단립사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천태종과 정토종의 관리 하에 놓여있으며 다이칸진을 중심으로

한 천태종 14개 자원, 다이혼간을 중심으로 한 정토종 25개 자원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젠코지가 이렇게 큰 이유는 이곳의 본존 일광삼존아미타여래상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불상은 인도의 월개장자가 만들었으며 그 후 월개장자가 백제의 성왕으로 환생했을 때 성왕에게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 성왕이 일본 긴메이천황에게 불상을 보냈으며 일본에 전해진 첫 번째

불상으로 전해진다. 이후 불교 도입으로 일어난 소가씨 및 쇼토쿠태자와 모노노베씨의 싸움에서

모노노베씨에 의해 절에서 버려졌으나 혼다 젠코라는 농부가 나니와 앞바다에서 이를 발견하고

자신의 고향인 나가노로 옮겨서 절을 세운것이 지금의 젠코지이다. 혼다 젠코의 이름에서 사찰의

이름이 정해졌다. 이 본존은 절대비불이고 전립상만 공개하기 때문에 불상의 존재 자체가

의문에 쌓인 적이 있으나 메이지시대 학자들의 조사로 존재는 한다고 한다.


호류지 헌납보물 중 일광삼존상. 아마 이런 불상이라고 생각된다.


일설에는 이곳이 백제계가 세운 사찰로 추정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 창건으로는 9세기부터는

명확하며 나라시대 초기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하여튼 이후 젠코지는 계속 성장하는데

특히 헤이안시대 후기 원정기부터 대가람이 되는데 이후 겐페이 전쟁 때 화재에 휩싸이기도 한다.

가마쿠라시대에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직접 재건을 명하고 가마쿠라에 신젠코지를 세우기도

했고, 무로마치시대에도 다툼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전국시대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의

전쟁터가 되어 황폐화되었으며 이 때 다케다 신겐에 의해 일시적으로 본존이 카이로 옮겨지기

했다고 한다. 이후 오다 노부나타의 코슈 정벌 당시 오다 노부타다에 의해 전소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 내로 본존을 옮겨 전전하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이후에야 나가노로

돌아간다. 현재의 나가노라는 도시도 원래 젠코지의 문전마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에도막부에 의해 본당이 재건되며 지금의 거대한 가람이 완성되는데, 특히 18세기에 이어진

화산과 기근 때 천태종 관주에 의해 전국에 혈맥이라는 이름의 부적이 유포되며 서민들의 엄청난

신앙을 받았다. 이후 18세기 중반 젠코지 지진이라는 강진으로 본당, 산문, 경장을 제외한 거의

전체가 소실된다. 젠코지에 규모에 비해 문화재가 적은 건 그 이유. 이후 메이지시대에

인왕문과 종루 등이 재건되고 현재에 이른다.


인왕문

1918년에 재건된었고 등록유형문화재

엄청 거대하다

높이 14미터


정액산 현판


안내판


인왕상


거대하다


반대편


허허


멀리 삼문이 보인다.

엄청 크네


뒤쪽의 천부상


잘 안 보이네


반대


범천과 제석천 같은데


삼문이 보이는 경내


가게들이 아직 닫았다.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삼문


한쪽에 있는 에도시대 지장보살상


연명지장

구 여래당 터라고 한다.

과거 본당 터라고 전해지는 곳에 세운 것이라고


안내판


뒤로 보이는 석가당


건물이 엄청 화려하다.


내부에 중요문화재가 있다고


석가열반상이 중요문화재이다.


가마쿠라시대의 것으로 길이 1.6미터의 등신대이다.


안내문


본존상 개방일


이제 삼문이 가까워졌다.


삼문에서 인왕문 사이 400미터의 돌길을 신슈 젠코지 나카미제도리라고 한다.

1707년 이전까지는 본당의 위치가 이 길 중간이었다고도 하는데 명확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아까 지장존도 그런 설명이긴 하지만


거대한 삼문


최근 지은 건물인 듯


삼문

에도시대 건물로 중요문화재


삼문 앞에 있는 육지장존


본래 에도시대 아사쿠사의 상인들이 세운 것인데 2차 대전 때 공출된 것을 다시 세웠다고 한다.


안내판


여기가 천태종의 다이칸진


삼문


옆에는 거대한 지장보살이 있다.


18세기의 대형 지장보살로 중요미술품

에도의 대화재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것인데 전승에 따르면

일본의 유명한 이야기인 야오야 오시치(八百屋お七)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야오야의 오시치는 에도의 야채가게 집 딸인데 대화재 당시 피난갔던 곳에서 만난 청년에게

한눈에 반해 그를 다시 보고 싶다고 다시 불을 질러 처형당한 인물이다. 싸이코패스 같은데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가 사랑이야기로 널리 퍼져 가부키의 주제가 되었다.


그 때의 화재라고 한다.


올려다 본 모습


중요미술품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젠코지 입장료는 3가지인데, 본당, 삼문, 경장에 각각 들어갈 수 있는 표가 있고

이것에 더하여 사료관까지 더할 수 있는 세트권이 있다.


당연히 세트권을 끊었다.


먼저 삼문으로 가자

높이 20미터의 초대형 건물


안내문


본격적으로 젠코지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