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4차

겨울 교토 여행기 - 2일 교토 사가노2 (다이카쿠지大覚寺)

同黎 2013. 2. 3. 23:44



600미터 쯤 걷다보면 다이카쿠지(대각사) 총문 터가 나온다.


조금 더 걸으면 드디어 다이카쿠지 도착



사적 대각사 어소 유적 표석



입구로 가는 길에 있던 청동탑


조그만 개울도 흘러간다. 대각사의 해자이다.



표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다이카쿠지는 진언종 대각사파의 대본산이다.



왼쪽에 있는 지붕 높은 건물이 고리이다. 이 고리는 사카모토와 함께

아케치 미츠히데의 성이었던 카메야마성(구산성, 亀山城)의 일부를 옮겨온 건물이라고 한다.



다이카쿠지 입구. 천황가와 깊은 인연이 있는 절인 만큼 천황가의 문장인 겹국화문이 그려져있다.

다이카쿠지는 본래 사가천황의 이궁인 사가고쇼가 있던 곳이다. 그의 사후 사가천황의 딸이 이 이궁을 절로 바꾸었다. 그후 고사가법황이 여기로 옮겨오고, 고우다천황이 상황이 되어 다이가쿠지에서 출가함으로써 다이가쿠지는 여러 문적 사원 중에서도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에 고사가천황의 후손들 중 메야마천황, 고우다천황 등의 계통은 다이가쿠지 계통으로, 고후카쿠사천황의 후손은 지묘인(지명원) 계통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고우다천황의 다이쿠지계가 이후에 고다이고천황 등 남조의 천황들이 되고 고후카쿠사천황의 지묘인계가 이후에 고콘 천황을 위시로 하는 북조의 천황이 되는데, 남조와 북조의 강화도 바로 여기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여러 모로 일본사에 의미가 깊은 사원이다.

남조의 멸망으로 쇠락하였으나 지금의 건물들은 에도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황족으로 출가하여 법친왕이 되는 관습이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진 곳 또한 다이가쿠지여서 최후의 문적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문적 사원에서는 각기 꽃꽂이가 발달했는데 다이가쿠지의 사가파도 유명하다.

닌나지 역시 오무로파라는 꽃꽂이 유파가 있다.



꽃꽂이 작품들이 여럿 전시되어 있다.



참배 입구


다이카쿠지는 반야심경의 본산이라고도 한다.

사가천황이 홍법대사 공해에게 다이가쿠지를 국가 안위를 위한 근본도량으로 삼을 것을 명했다고 한다.

현재 일본 전역의 사원에서 반야심경을 필사해 바치는 사경이 행해지는데 그게 여기서 시작했다고 한다.


들어간다.


우리가 들어선 곳이 대현관이다. 고미즈노오 천황의 황후이자

에도막부 2대 쇼군인 히데타다의 딸인 도후쿠몬인 마사코가 살던 여어어소의 건물을 옮겨온 것이다.


대현관에는 고우다천황이 법황 시절 타고 다니는 가마(연)이 전시되어 있다.

 

9개의 국화문양이 들어간 연이다.





신전 앞 정원으로 간다. 여기서의 신은 자미성을 의미하는 별 신자를 쓴다.


낙수물이 떨어지는 곳에 자갈을 깔아 놓았다.



신전은 중요문화재이다. 고미즈노오천황이 하사한 건물인데 그의 황후이자

2대 쇼군 히데타다의 딸인 도후쿠몬인 마사코가 사용하던 여어어소의 자신전이었다고 한다. 


신전인 만큼 교토고쇼처럼 귤나무와 사쿠라가 심어져야 하는데 여기는 벚나무 대신 매화가 심어져있다.


매화나무


신전 앞

역시 자갈이 깔려있다.


칙사문




신전 마당 가운데에는 무슨 의식을 하기 위해서인지 단을 마련해 놓았다.


신전 안에는 여러 화려한 장벽화(후스마에)가 있는데,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원본은 따로 보관하는 것 같고 새로 그린 그림이 붙어있다.


유명한 가노 화파의 그림이다.


모란의 칸




유송의 칸 (버드나무와 소나무의 칸)



음 그림은 거의 같은데 도록보다 너무 선명하다.

재현품이 맞는 것 같다.




알아보니 원본은 수장고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유송의 칸 앞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


건너편에 어영당이 보인다.


어령전과 오대당



칙사문

에도시대 건물이다.



어영당

다이쇼시대 건물이다. 다이쇼천황(대정천황)이 즉위식을 올린 향연전을 이거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만 봐도 격이 높은 절임을 알 수 있다.


신전을 따라 한 바퀴 돈다.


학의 칸

여기의 후스마에는 중요문화재가 아니다.

선종화 식으로 담백하게 그렸다.


대나무와 학의 그림



정침전, 모모야마시대, 중요문화재

고우다천황이 원정을 통해 섭정하던 바로 그 건물이다. 아주 중요한 곳인데 잘 공개를 하지않는 듯하다.


신전과 어영당을 이어주는 회랑


지붕 설계를 통해서 비가 오면 소리가 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도 참 정원이 아름다웠다. 이끼와 나무, 바위의 조화


신전의 마지막, 홍매의 칸

여기의 후스마에 역시 중요문화재이다. 물론 재현품을 걸어놨다.


황금 구름과 붉은 매화





정침전이 보인다.


이제 어영당으로 건너 간다.



회랑에서 본 다이가쿠지의 정원


붉은 건물은 영명전이다.


어영당에서 바로 본 칙사문



기념샷



어영당 내부에는 사가천황과 고우다천황의 목상, 그리고 홍법대사와 항적입도친왕의 상이 모셔져있다.


어영당 내부




홍법대사와 항적입도친왕상


사가천황과 고우다천황상

둘 다 출가했기 때문에 승려의 모습이다.


수 많은 황족들의 위패들



잠깐 휴식을 취한다.



이제 다음 곳으로 향한다. 영보관이 보인다. 개관은 하지 않았다.



다음 간 곳은 어령전. 안에 모신 것은 고미즈노오(후수미, 後水尾)천황의 등신대 목상이다.

고미즈노오 천황은 2대 쇼군 히데타다의 딸을 황후를 맞았지만 쇼군의 천황권 간섭에 환명을 느껴 중간에 출가해버린다. 다이가쿠지 재건의 주역이기도 하다.

막부에 반항했던 남조 천황가에 쇼군의 딸인 부인이 쓰던 건물을 기증한 천황. 의미심장한 것 같다.


본래 히가시야마에 있던 연화광원이라는 사찰의 어영당을 이건한 것이다.

내부가 매우 화려하다.


어영당을 나와 본당이 오대당으로 간다.



해질녘의 교토는 곧 사찰을 나가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몽환적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4시부터 5시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디 앉아서 해지는 하늘만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오대당, 에도시대 중기


현재 다이가쿠지의 본당이다. 안에는 오대명왕을 모시고 있다.


여기 모셔진 오대명왕상은 중요문화재로 헤이안시대 후기의 것들이다. 다이가쿠지 창건기의 불상들이다.


대위덕명왕, 군다리명왕, 부동명왕


부동명왕, 항삼세명왕, 금강야차명왕



오대당 뒤편에는 생각치도 못한 큰 연못이 있다.

모두 탄성을 지른다.


대척지라는 이 호수는 헤이안시대의 것으로 일본 최초의 정원 연못이라고 한다.

가장 오래된 지천회유식 정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알고 보니 다른 쪽으로 내려가면 배를 탈 수도 있다고 한다.




해질녘의 대척지


경장, 쇼와시대 건물


이 통로를 지나면 정침전이다.

고우다천황이 원정을 행한 중요한 건물인데 늦어서인지 내부는 보지 못했다.


대신 문 아래를 장식하는 그림을 볼 수 있었는데,

나무 결을 이용하여 반입체적으로 조각을 하고 색을 칠한 것이다.

이래봬도 무려 중요문화재이다.





 

이제 영명전으로 간다.


전체에 붉은 칠을 한 신사풍의 건물이다. 에도시대 말기


정원이 정말 아름다웠다.



회랑에서 본 연못



분홍 동백


작은 폭포



정침전이 보인다.



이 계단식 회랑을 지나면 영명전이다.


영명전 내부



밀교 법구가 늘어서있다.


이제 슬슬 다이가쿠지를 떠날 시간이다.



잠시 사람들을 기다리는 중


이끼정원이 주는 특유의 편안함이 있다.



이제 고리를 통해 빠져나온다. 이 문은 아케치문이라고 불리는데,

바로 아케치 미츠히데의 성인 카메야마성의 성문 중 하나를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가이드북에서 내가 본 사진이 이거였다.

의문은 왜 이렇게 이 절에 아케치 미츠히데의 유구가 있느냐... 하는 건데 그 이유는 도통 모르겠다.


아케치문


성문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생각보다는 너무 작아서 좀 실망했지만


아케치문 전경


기념사진


좋단다...

노부나가를 치러 갈 기세



채홍병도 기념사진


이제 교토 일정이 끝난 줄 알았지?

아직도 더 남아 있다.... 

여행기를 쓰면서 드는 생각인데. 이날 나는 미쳐있었던 것 같다. 이러고 또 오사카에 갈 생각을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