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4차

겨울 교토 여행기 - 6일 교토 중부2 (도지東寺)

同黎 2013. 3. 4. 00:07



킨테츠선을 타고 가는 중에 창 밖으로 도지의 오층탑이 보인다.

교토역에서 도지까지는 한 정거장만 가면 된다.


도지역에 도착


역에서 나가는 중


역에서 7~8분 정도 걸으면 된다.

날씨가 참 좋네


걷다 보면 도지의 상징 오층탑이 딱 나타난다.


작년까지만 해도 공사 중이더니 다 끝났나 보군.


언제 봐도 늠름한 모습



도지를 둘러싼 해자를 지나서 입구로 간다.


중요문화재인 남대문



도지(동사, 東寺)의 정식 명칭은 교오고코쿠지(교왕호국사, 教王護国寺) 

이번으로 4번째이다. 나는 여기 있는 것은 거의 다 보았으니 역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지난 여행기 참조



도지에 입장



남대문의 상방


모모야마시대의 것이란다.


안에서 본 남대문

노준석이 매우 매력적인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다.


멀리 금당이 보인다.


신난 심보람새끼의 포즈

비켜


국보 금당. 모모야마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히데요리(실제로는 그의 어머니 요도도노겠지만)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금당의 2층 부분

가운데 창문을 열면 해가 들어와 부처의 얼굴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금당 뒤로 중요문화재인 강당이 보인다.


금당 측면


도지의 수호신사


신불분리로 사라졌다가 92년 다시 세운 친쥬하치만구(진수팔번궁) 


저 긴 담벼락 안에 있는 건물은 관정원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궁궐 안에 있던 진언원이 혁파되고 나서 여기에 여러 기물을 모셨다고 한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강당 뒷면


가마쿠라시대 후기의 금당. 중요문화재이다.

안에는 그 유명한 오대여래, 오대보살, 오대명왕상이 모셔져있다.


가는 길에 발견한 소자방의 입구

여기는 이따 장순기의 사진으로 소개한다.


도지 중심가람 옆쪽으로는 비사문당, 대일당, 어영당 등이 모여있다. 여기는 그 입구


들어간다


비사문당은 지금은 보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국보 도발비사문천상을 모시던 건물이라고 한다.


왼쪽이 비사문당, 오른쪽이 어영당(부동당)이다.


어영당. 남북조시대의 건물로 국보이다.

안에는 국보 공해대사상과 공해(구카이)의 염지불인 국보 부동명왕상을 모시고 있다.

그래서 부동당이라고도 불린다.


어영당 정면


측면


노송나무 껍질로 지붕을 한 격이 높은 건물이다.



비사문당 정면


한쪽에는 여러 스님들의 부도와 비석이 늘어서있다.


대흑천당

부의 신인지라 여러 사람의 신앙을 받는다.


장순기는 칸치인(관지원)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칸치인이 현재 비공개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겨울의 교토 여행으로 특별 공개중인 소자방이 들어간다.

남북조시대 건립되었으나 모두 불타고 1930년대 재건되어 도지의 귀빈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600엔 주고 입장



방장으로 가는 길



갑자기 눈이 내린다


정원으로 간다.

길에 놓인 돌이 팔괘 같다.


큰 거목과 석등롱


마당에 놓여있는 귀면와들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소자방의 건물들



정원이 그렇고 그렇다.


서원에서 바라본 정원


저 문의 이름은 연화문이다. 칙사가 드나들던 문이라고 한다.

국보로 지정되어있다.


음 좋은 정원을 너무 많이 봐서...




작은 연못




물이 참 초록색이네



어영당을 나와서 이제 강당과 금당 쪽으로 들어가려는데

일요일이라서 그런 지 예불이 끝나서 스님들이 나오고 있었다.

강당을 나온 스님들이 야차당 앞에 선다.


염불을 외는 스님들


오 신기하다


여러 신도들도 따라서 염불 중


무서운 야쿠자같은 아저씨도 있다


염불을 다 왠 스님들은 시크하게 사라지는 중

저 보라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이 도지의 법주인 듯하다.



덕분에 본 야차당 내부



무섭네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이다.


식당

1930년대 소실된 것을 복원한 건물이다.

애들을 들여보내고 나는 식당 안에 있는 여러 책과 기념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도지에 또 온 이유는 겨울의 교토 여행 특별 공개로 국보 오층탑 내부를 공개하기 때문에

채홍병과 노준석이 여기를 보고 싶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3. 채홍병과 노준석의 도지 오탑 관람 욕심


입장

도지의 유명한 사쿠라나무와 오층탑이 보인다.


금당 뒷면



언제나 멋있는 도지 오층탑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탑



잠깐 사이 또 눈이 내린다.


강당 출입구


간단하게나마 단청이 되어 있다. 아마도 헤이안시대의 전통을 그냥 고수한 듯


강당 정면

내부 사진은 지난 여행기들을 참조할 것


금당 뒷면


금당 출입구

역시 내부사진은 저번 여행기들을 참조


금당 창살과 공포, 처마


심보람새끼 가방에다 뭘 넣는 꽈장님


이제 오층탑으로 간다.


영도자 송혜영님이 주저앉아서 기념사진을 찍고 계신다.


단체사진

탑이 너무 커서 사람이 코딱지만하게 나오는 군


이건 무슨 구도인지;;;



오층탑의 승률감

풍경이 처마마다 붙어 있다.


오층탑 정면


오층탑은 국보이다. 에도시대 재건한 것이다.



1층 오층탑 입구


내부의 불상과 벽화 배치도


오층탑 투시도


오층탑 내부

남쪽 보생여래


서쪽 아미타여래


심보람새끼의 기념사진


식당을 구경하던 나는 낙양 33개 관음영장 순례 안내장을 발견하고 오호! 하며 33개소 순례를 시작하기로 했다. 낙양은 교토를 나타내는 다른 이름. 낙양 33개소 관음영장은 교토 안에 있는 33개 관음보살 신앙지를 순례하는 것이다. 서국 33개 관음영장 순례나 시코쿠 88개 영장 순례에 대한 로망이 있지만 비용이나

시간 때문에 불가능한 나에게 교토 시내에 있는 사찰 순례는 가능한 것이기에 난생 처음 납경장을 사고

300엔을 내고 주인을 받았다. 앞으로 일본에 갈 때마다 차곡차곡 납경창을 채워나갈 예정이다.


일본불교는 시기에 따라 화엄종, 율종, 법상종 등의 나라불교, 천태종, 진언종의 헤이안불교, 정토진종, 

일련종, 임제종 등의 가마쿠라 신불교로 나누어지는데 나라불교는 수적으로 왜소해졌고 천태종도

황실불교의 성격이 강해 수는 적은 반면 진언종은 지금까지 엄청난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봤다. 인도불교는 물론이고 한국불교나 중국불교에도 밀교가 이토록 발전했던 적은 없다.

티벳불교나 몽골불교야 접한 것이 밀교밖에 없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밀교가 인도에서 발생할 때 힌두교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힌두교에서

발전한 탄트라 철학은 우주 천체(대우주)와 일 개인(소우주)의 합체를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나 몸 안에

우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반에 이르지 않고도 즉 죽어서 육도윤회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성불할 수

있다(즉신성불). 석가모니조차 죽어서 완전히 성불했던 것을 뒤집은 것이다.(사실 초기 아함부 경전에서

설명하는 석가모니의 인간이나 부처냐 여부가 불분명하긴 하다. 아예 설명을 하지 않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우주의 비밀에 접근하기 위한 방식으로 주문과 성교를 강조한다.  중국 고승들의 인도불교에 대한

경악과 지탄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철학이 인도불교와 결합되면서 인도의 여러 불교대학에서는

대단히 난해하고 현학적인 (부처의 비밀에 바로 접근하기 위한 것이니 얼마나 난해하겠는가) 철학이

발전하고 이러한 철학은 전수하기 위해 엘리트주의가 팽배한다. 결국 대중적 지지를 잃은 인도불교는

사실상 괴멸된다. 중국불교는 탄트라불교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탄트라 불교의 수행법인

삼밀(몸의 신밀, 말의 구밀, 생각의 의밀)에서 신밀은 성교에서 수인(인계)로 바뀐다.


공해(구카이)는 두 가지 방식에서 성공적으로 밀교를 일본에 정착시킨다.

우선 즉신성불에 대한 강조이다.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일 중 하나는 죽음이다.

즉신성불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공포를 극복하게 해줌과 동시에 밀교 특유의

엘리트주의를 정당화시켜준다. 때문에 공해 스스로 부처가 되고 그의 죽음도 부정될 수 있었다.

(실제로 많은 진언종 신자는 공해가 아직도 고야산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고 믿는다.)

두 번째는 불교 의례의 강조이다. 그는 좌도밀교라고 폄하되던 갖가지 기복적인 성격의 가지기도를

의례라는 세련된 형식으로 포섭한다. 이런 방식으로 탄트라불교에서 받아들인 다신교적 성격의 갖자기

주문과 기복적 기원을 국가나 귀족, 기존의 불교계가 불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정비된 불교의례의 수용에 열광하게 만든다.

매우 개인적인 의견이니 틀릴 수도


도지를 나설 시간



심보람새끼가 나에게 기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