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그 외

역사 발전 과정에서의 보편성에 대하여 - 근현반

同黎 2013. 3. 12. 00:08

역사발전의 보편성이라...그렇게 진행되면 좋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겁니다.....

 

 

옛날에는 "세계사의 자연사적, 합법칙적 발전"이라고 배웠는데,

 

어쨌든 맑스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이나, 맑스는 인간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모두 설명하려는 시도는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류정환 군 말대로 맑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종국에는 폐절하는 것이었죠.

 

내 생각에 역사발전 5단계설 등으로 표현되는 '완결적/총체적' 맑스주의는

 

1. 스탈린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 의 이론 체계에서 특화되었거나,

 

2. 사회주의 운동을 비판하는데 급급한 지식인들이 맑스주의에 흠집을 내기 위해 자구 하나하나를 전체 내용에서 뜯어내어 특화한 데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2는 그렇다 치더라도 1은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일단 스탈린주의에 대해서 과도한 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간단히 설명하면, 맑스주의가 '운동과 변혁의 이론'이라고 한다면 스탈린주의는 '통치와 지배의 이론'이라고 할까요, 즉 '혁명러시아'를 유지하기 위한 통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통치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바꿔말하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총체성과 완결된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데올로기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거나, 체계가 불완전하면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매우 큰 일 아닙니까?

 

나중에 '스탈린주의적' 저작을 보시게 되면 아시겠지만 매우 완벽한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역사적 유물론' 두 가지 책에 입각하여 이 세상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선배들도, 저도 그렇게 공부했었죠. 예전에 그 두 책을 가지고 공부할 때, 한 선배가 '담배가 타는 과정을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설명하라'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설명'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통치 이데올로기의 주된 역할입니다. 맑스주의는 주체화와 봉기의 이론이지 설명과 분석의 이론이 아닙니다. 물론 맑스주의도 '설명과 분석'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봉기' 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맑스주의의 외양을 한 스탈린주의라는 통치이데올로기가 나타났을까요?

 

혁명이 성공한 후 부르주아지의 반격과 서구 열강의 간섭에 직면한 볼셰비키에게 혁명의 성과와 러시아를 방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방식과 경로는 매우 좁았습니다.

 

수년간의 내전과 2차대전으로 '선진활동가'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안그래도 열악한 국내 산업 시설은 초토화되었습니다. 추방당한 부르주아지와 그 하수인들은 영국, 프랑스 등의 지원을 등에 업고 끊임없이 러시아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지금 학교에서 무언가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들, 학생회장, 집행부 일꾼, 학회장 등이 갑자기 없어졌다고, 그리고 과실도 없어지고 학생회비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나라당과 보수교회에 지원을 받는 '반운동권'세력이 여러분의 활동을 줄기차게 방해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계속 데모를 하고 학회활동을 해야 한다면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비민주적이고 엄격한 통제와, 군사조직을 방불케 하는 사회의 조직화를 이루어냅니다. 계속적으로 사회를 변화하기 위한 실험과 운동이 지속되어야 했지만 주변 상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방어 과정 속에서 혁명은 변질되고 만 것입니다.

 

 

다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군요,

 

그런데 남한에서의 맥락은 조금 다릅니다.

6, 70년대부터 시작되어 80년 광주를 거치면서 분출하기 시작한 대중운동은 이전의 낭만적/양심적 운동사상이나 단편적인 지식 몇 가지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회를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나아갈 바를 가르쳐주는 새로운 '대항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던 것이죠, 거기다 군사정권의 탄압은 강고한 의식으로 무장한 지하 활동가 집단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맑스-레닌주의'(지금은 스탈린주의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이렇게 불렀죠)가 이러한 조건에 딱 맞았습니다.  그래서 소련과 동독의 교과서들, 스탈린적으로 윤색된 맑스의 이론과 레닌의 조직활동지침이 대거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면 스탈린주의를 받아들인 폐해 등이 궁금할 것 같습니다. 잘못된 점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사실 80년대 남한에서는 그 이론이 긍정적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스탈린주의 교과서를 읽고 신봉했으니까 그들은 모두 스탈린주의자'리고 말하는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여기서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80년대 운동의 결과야 어찌되었던 당시에는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운동이 없었다면? 현재는 더욱 암울했겠죠. 전두환이 영구집권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는 '역사발전의 보편성'과 관련하여 간단히만 설명하겠습니다. 

 

이 '맑스레닌주의'의 세례는 활동가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다닌다면 관련된 지식을 잘은 몰라도 적어도 몇가지는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고대 동아리 중 타임지 읽기 모임이 아직 있죠? 과거에는 거기서도 신입생들에게 '변증법적/역사적 유물론'을 읽도록 시켰다고 하니까 그 영향이 어느정도인지 알겠죠,

 

물론 학계에도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맑스레닌주의가 받아들여집니다. 실증주의적 역사연구과 자유주의적 근대화이론에 회의를 느끼던 그들은 맑스레닌주의에 입각하여 연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역사발전의 보편성'에 대한 많은 연구가 쏟아져 나옵니다. 들어봤는지 모르겠는데,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론'이 대표적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조선도 주체적으로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봉쇄되었다는 거죠.

 

이뿐만이 아니라 한국역사를 '역사발전 5단계설' 즉, 원시공산제-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근대자본주의-사회주의에 입각하여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저작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과거엔 근현반도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맑스주의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듯 공부했었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이러한 이론들은 현재에 와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보수적 학자들이 방해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일국의 특수한 역사를 맑스주의적으로 무리하게 해석하려다 보니 억지와 끼워맞추기가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질문한 학형이 느낀대로 '역사가 '보편적으로' 착착 진행된 건 몇 없습니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또 연구 결과까지 보지 않고 곰곰히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현상은 서유럽에서만 고유하게 발원한 것이고 제국주의로 화한 자본주의는 자신들의 체제를 무력과 강제로 전 세계에 확장했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꼭 맑스주의적으로 해석하려고 했을까요? 글쎄요, 제가 한 것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생각해보건대, 그들은 숨막힐 것 같은 억압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맑스주의(스탈린주의였건 아니건 간에)를 통해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물론 그들이 자위적 행위에 머물렀을 뿐이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그들에게 그 작업은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과 교육을 부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행동의 일부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했고 철저했다고 생각됩니다. 흔히 생각하듯 '맑스주의'와 '노동-자본간 모순'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출간된 수많은 사상서적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건드리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노동, 정치, 경제, 역사를 비롯하여 환경, 여성, 매매춘 문제, 농업문제, 도시빈곤의 문제, 남미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문제, 예술과 미학, 건축, 음악, 교육, 과학기술...오히려 지금은 이렇게 하지 않죠. 요즘은 뭐, 유행따라 수박겉햝기로...

 

그들은 모든 것을 변혁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이라면 맑스레닌주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뿐'이죠. 사실 당시엔 그들에게 다른 대안이 없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습니다.

 

 

p.s.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가 강제로 전세계에 이식된 현재에는,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인 양대계급을 기본 구성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전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초국적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고 전세계가 보다 가까워지고 밀접하게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그 '보편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인간사회가 자본주의로 발전할 맹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간에 비슷한 자본주의 체제가 된 세계라면,

 

어디나 결말도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