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그 외

답사수업교재 - 불교 작성중

同黎 2010. 1. 11. 01:50

아놔 이거 언제 다한댜




불교문화의 이해

1. 개관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를 가리킵니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로 천 수백여년동안 불교는 한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도 한국인의 절반 정도가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정부에 등록된 전통사찰만 수 천 곳에 달할 만큼, 불교 문화유산 역시 많습니다. 따라서 불교문화를 파악하는 것은 답사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불교문화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여러 불교와 불교문화재의 용어들이 한자로 되어있고,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기보다는 무조건 외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불교는 답사수업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치를 떠는 부분이 되어가는 것 같네요. 하지만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본 의미를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답사지 중 많은 곳이 불교와 관련된 곳이니 만큼 불교문화에 대하여 이해한다면 답사를 더욱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1-1. 한국불교 약사(略史)

①불교의 탄생과 분열

불교는 기원전 6세기 경 북인도 룸비니에서 샤카족(석가족)의 왕자로 타어나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하여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계급차별적이었던 기존의 브라만교를 넘어 계층과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구도를 통해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을 펼쳐 많은 제자들을 모았습니다. 그의 사후에 500명의 제자가 2차례에 거쳐 결집하여 불경이 탄생하고 계율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리와 계율에 대한 차이가 드러났고, 결국 불교는 상좌부(上座部), 즉 소승(小乘)불교와 대중부(大衆部), 즉 대승(大乘)불교로 분할되게 되었습니다.

②불교의 동전(東傳)과 융성

기원전 3세기 인도의 통일왕인 아소카왕이 불교를 국교로 선포함에 따라 불교는 인도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그러나 불교의 융성에 따라 도덕적 결함이 생기게 되고, 교리가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변하게 되면서 인도에서 불교는 수세기에 걸쳐 점차 쇠퇴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기원후 1세기 경 중국 후한(後漢)에 불교가 처음 전래되면서 불교는 차츰 그 중심을 동아시아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대략 4세기 말로 추정하고 있으며 삼국이 각각 중국의 남북조(南北朝)를 통하여 받아들였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 (372년) 전진(前秦)으로부터, 백제는 침류왕 원년 (384년) 동진(東晉)으로부터, 신라는 눌지왕 때 처음 불교를 접했습니다. 불교의 수용은 국가의 중앙집권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신라처럼 오랜 저항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삼국 모두에서 불교는 성공적으로 정착하였고, 중국과 인도로 구법(求法) 여행을 떠나는 유학승도 많았습니다.

통일신라에서는 불교문화가 정점에 달했습니다. 진표로 대표되는 법상종(法相宗)을 대신하여 의상과 원효로 대표되는 화엄종(華嚴宗)이 크게 융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찰과 승려는 종교적 의미와 동시에 경제적, 사회적 지배층으로 변질되었고, 스스로가 대지주(大地主)가 되었고, 불교 행사나 사찰 건축에 지나치게 많은 경제적 소모가 있기도 하였습니다.

③나말여초와 고려의 불교

신라와 고려의 왕조교체기는 한반도의 불교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시기였습니다. 중국에서 교리의 해석보다 실천과 수행의 기풍을 강조하는 선종(禪宗)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불교종파는 교종(敎宗)이라는 이름으로 재정립되었습니다. 선종은 그동안 경주와 왕과 귀족의 이해만을 대변했던 교종을 대체할 종파로 지방호족세력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려의 통일 이후, 불교는 왕과 귀족에게 익숙한 교종을 중심으로 돌아갔고, 선종과 교종의 대립이 빈번해졌습니다. 이러한 갈등을 통합하기 위해 왕족 출신인 대각국사 의천은 천태종을 도입하여 교종중심의 불교 통합을 이루려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무신정권의 후원을 받은 보조국사 지눌은 타락한 불교계를 쇄신하기 위한 결사운동을 진행하고, 조계종을 세워 선종 중심의 불교 통합을 꾀하였습니다. 원간섭기에는 몽골의 영향으로 티베트불교가 들어오기도 하였는데, 이 결과로 불교에 대한 사대부계층의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④조선에서 현대의 불교

숭유억불의 기치로 일어난 조선에서 불교는 당연히 쇄락할 수밖에 없습습니다. 그러나 태조부터 세조에 이르는 기간까지는 왕실의 후원으로 급격한 쇄락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성종대에 이르러 불교에 대한 유가의 탄압이 본격화되고, 가속화되면서 전국의 수많은 사찰이 파괴되거나 기울어지고, 승려들은 성역(城役)과 잡역(雜役)에 시달렸습니다. 이 시기에 특별히 불교 탄압이 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양란을 거치면서 승병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또 승려들의 공이 일부 인정되면서 불교는 과거와 같은 탄압을 받지는 않게 됩니다. 승려들이 각종 역(役)에 동원되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많은 승려들은 승직(僧職)을 받기도 하였고, 전쟁으로 파괴된 사찰을 복원하는 불사(佛事)도 활발해졌습니다.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불교 문화재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승려와 유학자들의 교류도 활발해졌는데. 학승(學僧)들은 이 시기 주로 성리학과 불교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기 때문에 경전연구보다는 철학연구에 전념하였고, 그 결과 불교 교리는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불교계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던 서산-사명 계열로 정리되면서 선종과 교종이 선종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교종과 밀교의 특징까지 고루 갖추게되는, 한국 특유의 통불교가 형성됩니다.

이후 일제시기 불교는 조선총독부의 사찰령 등을 통하여 일본 불교에 종속되어 결혼을 하는 대처승(帶妻僧)들이 늘어났습니다. 해방 후 이들에 대한 처리 문제가 큰 논쟁거리가 되었는데, 결국 지금은 비구승들을 중심으로 한 대한불교 조계종과 대처승들을 중심으로 한 대한불교 태고종으로 정리되었습니다.

 

1-2. 불교의 교리와 종파

①불교의 주요 교리

불교의 교리는 매우 깊고 오묘하면서도 다양하기 때문에 글 하나로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낟,

1)사성제

2)팔정도

3)유식사상

4)윤회사상

②불교의 주요 경전

③불교의 주요 종파

 

1-3. 한국에서 불교문화의 위치

 

2. 불상의 도상과 특징

 

2-1. 불상 개관

①불상의 전래와 역사

②불상의 종류

1)주인공에 따라

2)재료에 따라

 

2-2. 부처의 도상

①부처의 일반 도상

1)불상의 구성과 용어

2)불상의 수인

②석가모니불

③비로자나불

④아미타불

⑤약사여래

⑥미륵불

⑦노사나불

⑧기타

⑨삼세불, 삼존불, 삼신불

 

2-3. 보살의 도상

①보살의 일반 도상

②관세음보살

③지장보살

④미륵보살

⑤문수, 보현보살

⑥일광, 월광보살

⑦기타

 

2-4. 기타 권속의 도상

①사천왕

②나한과 조사

③신장

④시왕

⑤칠성, 독성, 산신

⑥팔부중

⑦기타 권속

 

2-5. 불화의 이해

①불화 개관

②후불탱화

③괘불탱화

④팔상탱화

1)도솔래의(兜率來儀)

2)비람강생(毘藍降生)

3)사문유관(四門遊觀)

4)유성출가(踰城出家)

5)설산수도(雪山修道)

6)수하항마(樹下降魔)

7)녹원전법(鹿苑轉法)

8)쌍림열반(雙林涅槃)

⑤감로탱화

⑥신중탱화

⑦고승진영

⑧벽화와 단청

⑨칠성탱, 독성탱, 산신탱

⑩불화기타 (시왕탱, 조사탱, 삼장탱, 예불도)

 

3. 사찰건축의 이해

 

3-1. 한국의 가람배치

①고구려의 가람배치

②백제의 가람배치

③신라의 가람배치

④통일신라의 가람배치

⑤고려 이후의 가람배치

 

3-2. 가람배치의 실제

①일반적 가람배치

②산문(일주문과 불이문, 해탈문)

③천왕문, 금강문

④누각

⑤대웅전, 대웅보전

⑥극락전, 미타전, 무량수전

⑦비로전, 화엄전, 대적광전, 대광명전, 보광명전

⑧약사전, 유리광전, 만월전

⑨관음전, 원통전

⑩지장전, 명부전, 시왕전

⑪영산전, 팔상전

⑫응진전, 나한전, 조사당, 국사당, 영각

⑬미륵전, 용화전

 

⑭적멸보궁과 계단

⑮삼성각, 칠성각, 북극전, 독성각, 산신각, 용왕각

이 전각들은 불교와 민간신앙의 합일을 보여주는 것으로, 칠성과 독성, 산신 등을 모시는 곳입니다. 주로 가람배치에서 가장 뒤쪽에 위치하며 전각의 크기 역시 매우 작는 것이 보통입니다. 칠성과 독성, 산신 등을 한꺼번에 모실 때에는 삼성각(三聖閣)이라고 하면, 독자적으로 모실 때에는 각각의 이름을 부칩니다. 절에 따라 산신 대신 용왕을 모신 곳도 있습니다. 전각의 크기는 작으나 가장 기복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찾는 곳입니다.

⑯경판각

 

⑰요사채

⑱종각, 사물각, 법고각

⑲기타 건축물

⑳불전의 내부

 

4. 탑파의 이해

 

4-1. 탑의 이해

①탑 개괄

②탑의 역사

③탑의 종류

④기단부

⑤탑신부

⑥상륜부

탑의 가장 윗부분에서 탑을 장엄하게 꾸며주는 것을 상륜부(相輪部)라고 합니다. 상륜부는 부처의 사리가 모셔진 탑을 장엄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동시에 인도의 스투파를 재현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인도의 스투파는 대표적인 스투파인 산치대탑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둥근 봉분 모양의 탑신부 위에 부처를 상징하는 법륜(法輪)을 올려놓아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것을 축약하여 놓은 것이 상륜부인데, 예외적으로 고려후기의 마곡사 오층석탑 상륜부처럼 티베트식의 스투파를 그대로 올려놓은 것도 있습니다. 상륜부의 구성 부분이 많고 이름이 어려워서 외우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분이 많은데, 실은 상륜부 각부가 모두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생각하시면서 외우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륜부는 스투파를 재현하는 동시에 보륜(寶輪)으로 상징되는 부처님을 모시기 위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찰주(刹柱) : 상륜부 각부를 설명하는 그림에서 찰주를 애매하게 표시하여 이것을 보개나 보륜 사이의 부재로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찰주는 쇠나 돌로 만든 꼬챙이로 상륜부의 각 부재들을 여기에 꽂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에는 쇠로 만든 찰주가 잘 남아있습니다.

-노반(露盤) : 노반은 상륜부 제일 아래의 네모반듯한 부재로 상륜부 전체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며 스투파의 기단부분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복발(覆鉢) : 복발은 한자 그대로 뒤집어진 사발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타원형의 원구 모양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스투파의 둥근 탑신 부분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앙화(仰花) : 복발 위에 피어있는 연꽃모양의 부재로 부처님을 모시기 위한 대좌(臺座)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보륜(寶輪) : 앙화 위에는 둥근 원형은 보륜이 여러 개가 올려져 있습니다. 보통 3~9개로 구성되며 홀수일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불교에서 짝수보다 홀수를 신성시하게 때문입니다. 보륜은 부처님을 상징하는데, 인도에서 수레바퀴는 전륜성왕의 상징이며, 부처님의 법계의 전륜성왕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설법은 법륜을 돌린다고 상징화합니다. 불상이 생기기 이전에는 수레바퀴가 부처님을 상징했습니다.

-보개(寶蓋) : 보륜으로 상징되는 부처님을 비나 각종 재해로부터 막고, 장엄하게 꾸미기 위한 일산(日傘)입니다.

-수연(水煙) : 법륜이 돌면서 생기는 불꽃모양의 물안개입니다. 혹은 일산 위에서 부처님을 지키고 있는 용왕이 내뿜는 안개로도 해석합니다.

-용차(龍車) : 용의 수레라는 뜻으로, 불경에 따르면 석가모니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수행할 때, 커다란 용(뱀, 나가)이 부처님을 보호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부처님을 수호하기 위한 용왕의 자리입니다.

-보주(寶珠) : 상륜부의 마지막으로 보배로운 구슬을 뜻합니다. 즉 용이 지키고 있는 여의주(如意珠)를 의미합니다.

 

⑦사리장엄구

 

4-2. 부도의 이해

①부도의 역사와 종류

②각부 용어

 

4-3. 불교 석비의 이해

①불교 석비의 종류

②각부 용어

 

4-4. 기타 석조물

①석등

②당간과 당간지주

③석조

④괘불대

⑤노주

 

5. 불교의식구

 

5-1. 불전사물

①범종

②법고

③목어

④운판

 

5-2. 불교법구, 공양구, 의식구, 장엄구

①정병

②향로, 향완

③금강저와 금강령

④전패

⑤목탁

⑥동종과 금고

⑦기타

 

6.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