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6차

폭설의 간사이 - 6일 교토 히가시야마2 (이마히에신궁新日吉神宮,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 지샤쿠인智積院)

同黎 2014. 6. 20. 14:34



계속 내려간다.


내려가다 보면 전부터 가려고 했던 이마히에신궁(신일길신궁)이 나온다.


도리이를 지나니 붉은 누문이 보인다.


이마히에신궁(신일길신궁, 新日吉神宮)은 오쓰 사카모토에 있는 히요시대사의 분사로

본래 고시라카와(후백하) 천황이 머물던 호주지(법주사), 산쥬산겐도(삼십산간당)의 진수사였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신불분리가 되면서 단독 신사로 분리되었고, 1958년 천황의 명으로 고시라카와

천황이 신으로 합사되면서 격을 한 층 높여 이마히에신사에서 이마히에신궁으로 승격되었다.

대부분의 신사는 이세신궁에 있는 신사본청에 속해있으나 여기는 그렇지 않은 단독 신사이다.

딱히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없다. 다만 뒤편에 위치한 산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덤이고, 내부에 키노시타신사가 있는데, 키노시타가 히데요시의 이전 성이기에 많은 참배자가 있었다고


누문에는 수신(随身), 일본말로는 즈이진 혹은 즈이신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수호신들이 있다.

딱히 신앙되고 공식적인 신은 아니고 헤이안시대 이후 귀족의 외출 시에 수호하던 임무를 맞던 근위부의

관인은 수신이라고 했는데 신사에 이들을 그려 넣으면서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맡겼다.


다른 수신


문을 들어서면 마당과 배전이 보인다.


내전을 통해 본 본전


설명문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 위에는 중문이 있으며 그 뒤에 본전이 있다.


히요시 신사에는 원숭이가 신의 사자로써 중요시된다.

여기에도 원숭이 조각이 있다.

특히 원숭이는 히데요시의 별명이기도 하고



반대편에도 원숭이가 있다.


모자도 쓰고 있네


좀 황당한 이야기인데, 신사에서 파는 원숭이 부적을 사면 1년간 가내평안, 제액, 개운, 방제 등의

영험이 있으며, 위의 원숭이 조각상을 사진을 찍어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삼으면 효과가 좋다는....

왜? 도대체 그래야 하지??? 하여튼 그런 내용이다.

허허


중문으로 넘겨다 본 본전


측면으로 가 본다.


본전 공포에는 원숭이 조각이 있는데 이걸 보면 재수가 좋다하며 망원경까지 설치해놨다.

원숭이 돋네


본전 옆의 섭사들


거대한 신목도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다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는 호코쿠뵤 참도라는 거대한 비석이 서 있다.


내려오는 길 박물관 옆으로 눈 쌓인 거대한 산이 보인다.


멋있다. 아마도 아타고산이나 쿠라마산 쯤 되는 것 같다.

저렇게 큰 산이 수도 인근에 버티고 있다.


산쥬산겐도에 들어가 선미누나와 상봉

아주 오랜만에 다시 오는 곳이다.

뭐 자세한 내용이야 지난 여행기에 다 해 놓았으니 참조



오랜만에 다시 여기서 기념사진도 찍


다시 선미누나와 헤어진다.

다이토쿠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나 혼자 다닌다.

지샤쿠인(지적원)에 도착

총문이 보인다.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이자 고미즈노오의 부인인 도호쿠몬인의 궁궐 문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여기도 전에 와서 국보인 후스마에와 명승 정원은 보았다.

그것보다 전에 못 봤던 다른 건물들을 잠깐 보러 왔다.



지샤쿠인(지적원)은 진언종 지산파의 총본산으로 엄청 큰 절이다. 헤이안시대 기존의 진언종에 반대하여

쇄신파로 등장한 신의진언종 계열의 종파이다. 신의진언종의 시조인 각번이 세운 대전법원의 탑두였다가

대전법원이 다른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자 독립하였고 신의진언종이 히데요시와 대립하게 되자 쇠락하였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쿠니 신사의 부속 사원으로 토지와 건물을

하사하여 부흥하였고, 그후 점차 도요토미 가문의 땅을 먹기 시작해서 엄청난 대사원으로 성장하였다.


금당

근대 이후에 재건한 것이다.


안에서 독경 중이라 들어가진 못했다.


밀엄당

각번을 모신 건물이다.


매화가 막 꽃망울을 터트렸다.


대충 구경을 끝내고 지샤쿠인을 나온다. 이제 데라노우치로 갈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