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원생의 일상

근황 15.06.11

同黎 2015. 6. 11. 06:38

근황 15.06.11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지고 있던 짐을 벗어던지고 사가독서를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 어안이 벙벙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교토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아름다운가요? 닌나지의 어전에서 바라보는 오층탑의 아직도 그대로 아름다운가요? 그 앞의 맛있는 덮밥집도 그대로겠지요? 도지인의 아침 안개 낀 정원이 그립습니다. 도지인역에서 도지인까지 타박타박 걸어가던 그 길도 그립습니다. 후시미의 누룩 냄새와 메이지 천황릉까지 이어지던 긴 전나무길도 기억납니다. 로잔지의 도라지꽃도 단잔신사의 수국도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히메지성에 가득 피었을 사쿠라도 그립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당분간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생각해보면 저는 박사과정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회피하거나 당연시했던가요.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 일본 땅을 밟았던가요. 당분간은 그 환상적인 곳들을 사진으로만 바라보고 6평 방 안 책상 앞에서만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두기만 하고 쌓아 두었던 책들도 보고 박사논문을 쓰기 위한 토대도 마련해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일이라는 핑계로 누워 있었던 게으른 몸을 일으켜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부하는 틈틈이 맹자를 읽을 생각입니다. 맹자를 외고 뜻을 마음에 새기는 일을 다시 해야할 것 같습니다. 한문공부만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다시 맹자를 읽고 내 자신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인문학과 인문과학 사이에서 지금은 잠시 인문학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동이 터 오고 있습니다. 여름의 아침은 언제나 일찍 찾아오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밤은 모든 것을 감추어주고 아침은 모든 것을 밝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 밝아 오면 또 어떠한 가려진 것들이 드러나나 두려워집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두려움은 밤에 시작됩니다. 아침에 드러나는 진실을 맞닥뜨리면 밤의 상상은 의외로 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우면서도 아침이 오는 것을 맞이합니다.

많은 근심이 있지만 당분간은 접어두고 글을 읽고 쓰는 본연의 임무만 계속하렵니다. 케세라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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