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원생의 일상

근황 12.12.16

同黎 2012. 12. 16. 05:04

근황 12.12.16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오랫만에 동기들과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이제는 거의 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걱정할 것도 많고 눈치볼 것도 많을 나이입니다. 비록 이제는 사회의 짐을 어깨에 하나 둘 씩 짊어지고 있지만 2005년 아무것도 모른체 대학에 들어와 마냥 즐거웠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오랫만에 스무살처럼 놀았습니다. 그 빛나는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지만 5년간의 대학 생활은 소중했다는 당연한 말을 다시 한번 되뇌이는 날이었습니다.


석사라는 자격증을 얻기 위한 몸부림 중입니다.불과 며칠 안에 3년 간의 고민을 몇 장의 종이 안에 응축시켜야 합니다. 그 고통의 작업을 혹은 외면하고 혹은 무시하려고 하지만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침대 머리맡에는 작은 연구노트에 항상 놓여있습니다. 불을 끄고 누웠다가 머리를 스치고 가는 단상을 거기에 적습니다. 그 작은 노트에라도 아이디어를 적어 놓지 않으면 불편하고 괴로워 잠이 오지 않습니다. 12월 27일 석사로 가는 한 고비를 넘으면 며칠 쉴 생각입니다. 그 생각만으로 27일까지 가는 길을 억지로 걷고 있습니다.


오늘 우연히 백기완 선생이 텔레비전에 나와 자신이 쓴 젊은 날이라는 시를 낭독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세상에서 본 시낭독 중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2003년 이었습니다.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해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으로 시청으로 수 만 명씩 모여들던 때였습니다. 그 추운 날 교복에 코트를 입고 종로 큰길을 막은 집회장소에 밑에 설 깃발도 없이 의기만으로 섰었다. 지루한 중앙판이 끝나고 청와대로 미대사관으로 달려가자는 시민들의 폭발적 요구에 힘입어 대오는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와 안 사실이지만 지도부는 전진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 망설임과 시민의 요구는 충돌하였지만 집회는 지지부진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대오의 가장 앞에 서있었습니다.


그때 한 헝크러진 흰머리의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전경의 방패 앞에 가장 먼저 몸을 던져 밀었고 그걸 보고 망설이며 얼떨떨해있는 젊은이들에게 일갈했습니다. "밀꺼야 말꺼야!" 그 날 경찰의 5차 방어선까지 무너졌고 시민들은 최초로 미대사관을 둘러싼 인간울타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가장 앞에 서 있던 백기완 선생님이십니다. 이 오래된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작은 사람들입니까? 최근 대선 때문에 온통 난리입니다. 12월 19일을 기한으로 일장춘몽이 될 것이 뻔한 청와대 일정에 마치 민중의 삶이 결정될 것처럼 소란피는 일만 없기를 바랍니다.


어느새 새벽 5시입니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더욱 밝아진다고 합니다. 부디 저에게도 또 남한사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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