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9차

9번째 간사이원정기 - 5일 교토 라쿠사이4 (묘신지 코바이인妙心寺 衡梅院)

同黎 2016. 1. 8. 19:50



호곤고인에서 걸어내려가면 JR하나조노역이 나온다.

교토 시내를 지나는 역인데 지하철이나 케이한, 킨테츠, 한큐 등 여타 사철과 만날 일이 없어 처음 와 본다.


여기서 길을 건너면 묘신지로 들어가는 거대한 표석이 나온다.


묘신지로 가는 길 게스트하우스로 보이는 작은 건물

이런 집에서 숙박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묘신지 남문. 중요문화재이다.

본래 여기가 입구인데 그 동안 주로 북문으로만 다녀서 여기로 오는 것은 처음이다.

 

남문으로 들어선 모습

묘신지(妙心寺)는 46개의 탑두사원을 지닌 교토 최대의 사찰이며, 임제종 묘심사파의 대본산으로

개별 종단으로는 가장 큰 종파의 대본산이기도 하다. 하나조노천황의 후원 아래 가마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무로마치 막부의 후원 아래 성장하였다. 물론 오닌의 난을 피하지 못해 전소된 것을

전국시대에서 에도시대 초기에 거쳐 재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에도시대 초기에

대부분 재건한 것으로 많은 부분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삼문, 경장, 불전, 법당, 욕실, 방장, 고리로 이루어진 선종 7당가람의 모습을 잘 갖춘 사찰이다.


여기도 몇 번 와봤지만 그때 그때 공개되는 탑두사원을 보기 위해 종종 찾는 곳이다.



삼문 앞에는 돌다리가 놓여져 있고 연못이 있다.

연못을 건너 피안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좌우에는 많은 탑두사원이 있다.


붉게 칠해진 묘신지 삼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묘신지 내에 유일하게 붉게 단청이 된 건물로 이채를 띠는 건물이다.

이 때는 2층 내부가 공개 중이었는데 올라가 보지는 않았다.


삼문 뒤에 나란히 선 불전과 법당

각각 부처님을 모신 곳과 설법을 하는 공간이다.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종루

역시 중요문화재였으나 방화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일본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있구나


경장

역시 중요문화재


욕실

일종의 사우나 시설인데, 선종에서는 목욕도 일종의 수행으로 중요시하였다.

전근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목욕을 잘 하지 않았던 것 치고는 일본은 특이한 나라이다.

이 욕실은 혼노지의 변 이후 정세를 휘어잡지 못하고 히데요시에게 쫓긴

아케치 미츠히데가 숨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법당의 모습

묘신지를 모려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면 된다. 20분에 1번 꼴로 있다.

하지만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묘신지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

묘신지, 겐닌지, 다이토쿠지, 난젠지 등 이런 대형 선종사찰은

주변이 탑두사원으로 둘러쌓여 마치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목적은 특별공개 중인 코바이인(衡梅院, 형매원)에 오기 위해서이다.


코바이인 정문

코바이인은 이른바 묘신지 4파의 원류가 되는 곳이다. 묘신지가 오닌의 난으로 불타고 황폐해진 묘신지를

일으킨 제6대 주지 설강 종심이 세운 탑두사원으로 여기서부터 설강 종심(셋코 소신)의 제자 4인이

각각 탑두사원을 세우고 용천파, 동해파, 영운파, 성택파의 묘신지 4파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로 본산 4파원류의 사원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현재 방장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사파원류 설강선사의 탑소라는 석주


안내문


들어가면 현관이 보인다.


현판이 걸려있는 현관

탑두사원인만큼 현관과 서원, 방장으로 이루어진 작은 사찰이다.


코바이인 내부 구조도


방장 앞마당의 정원


사하일원(四河一源)의 정원이라는 이름의 정원은

묘신지 4파의 원류가 모두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에 설강선사를 의미하는 돌을 두고 사방에 네 명의 제자를 상징하는 돌을 두었다고 한다.


몰래 찍은 방장 내부

에도시대 주류 화파를 이루었던 가노파 화가가 그린 그림들이 후스마에로 그려져 있다.


정원 풍경


방장 내부



이 정원은 사실 좀 어렵다.

어디가 뭘 뜻하는지 모르겠다.

겨울 정원의 아쉬움은 이끼가 많이 죽어 있다는 것



비가 오지 않을 때의 풍경

이 큰 돌이 원류를 상징하는 것 같다.


흩어진 돌들


다실로 가는 노지(돌길)


철로 된 등롱이 놓여져있고 가운데는 돌이 놓여져 있다.


철등롱


다실인 장법암


다이쇼시대 교토 남부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다실 옆의 노지 풍경


손을 씻는 작은 석조



비가 안 오면 이런 풍경이라고 한다.


나가는 길 현관 옆에 작은 종이 걸려 있다.


에도시대에 코바이인의 6대 주지가 고미즈노천황의 황후인

도후쿠몬인의 시녀였던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기증했다고 한다.

일본 종치고는 특이한데, 전반적으로 동시대 중국 종을 닮았다. 전체적으로 연잎 모양에다가 관음보살을

새겼고 아래부분엔 용이 있다. 종의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것이 중국 종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제 다시 코바이인을 나선다.


옆으로 보이는 칙사문

앞으로는 열리는 일을 거의 보지 못하겠지


짧은 묘신지 기행을 마치고 어서 료안지로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