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9차

9번째 간사이원정기 - 5일 교토 라쿠사이5 (료안지龍安寺)

同黎 2016. 1. 9. 00:28



택시를 타고 료안지로 갔다. 오늘은 이래저래 메뚜기처럼 뛰어다녀야 되서 유난히 택시를 많이 탔다.


료안지. 아주 오랜만이다.

세계문화유산씩이나 지정된 사찰이지만 예전에 왔을 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해 한 4년만에 다시 찾은 것 같다.



료안지 들어가는 길


산문을 지난다.


비가 오는 겨울날인데도 사람이 꽤 많다.

역시 수학여행 단골 코스이다.


료안지 (용안사, 竜安寺, 龍安寺)는 묘신지의 산외 탑두사원으로 당연히 임제종 묘심사파에 속한다.

헤이안시대에 처음 세워지지만 이후 황폐해진 것을 호소카와 카츠모토가 재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카츠모토 그 자신이 동군의 총수가 된 오닌의 난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이후 그의 아들 호소카와 마사모토에 의해 중건되었다. 지금의 유명한 석정(石庭)은 바로 그 때쯤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본래 23개의 탑두사원이 있었고 이치조천황 등 5명의 천황릉이 경내에 있어 다른 절 부럽지 않은

거찰이었다고 하지만 메이지시대 폐불훼석의 여파로 모든 탑두사원이 없어졌고 본래 불전과 방장도

잃어버린 것을 탑두사원이 있던 방장을 옮겨와 방장 겸 본당으로 쓰다가 80년대 불전을 재건하였다.

이래저래 고생을 많이 한 절이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경용지(鏡容池)라는 넓은 연못이다.

 

지금은 모래정원(석정)이 유명하지만 원래는 이 경용지라는 이 연못이 훨씬 더 유명했다고 한다.

지금의 석정이 유명해 진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여튼 연못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이렇게 길이 나오고


방장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나온다.


안내문



입장

원래 입장료는 500엔이지만 이날 다실과 불전을 특별공개하면서 추가로 300엔을 더 받았다.


현관 격인 고리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박력있는 병풍이 보인다.

보통 이런 곳을 못 찍게 하지만 료안지는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그냥 다 패스다.


역시 서예작품으로 쓰여진 가림막(충립)


석정으로 들어가는 길 작게 꾸며놓은 미니 석정이 보이고


드디어 그 유명한 석정이 보인다.


무로마치시대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정원의 작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저기 있는 15개의 돌 중 하나에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는 한데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방장 현판


방장 내부의 후스마에

격이 높은 곳에 보통 운룡도를 그려서 장식한다.


방장 내부의 모습

방장은 중요문화재이다.

안의 후스마에는 폐불훼석의 와중에 모두 유출된 것을 20세기에 다시 그려넣은 것이다.


이 석정은 1975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굳이 여길 찾아내서 방문하여

해외까지 보도되면서 일본 선문화의 대표적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단순히 일본의

고산수식(가레산스이) 정원의 대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울어져가던 사세도 일으켜 주게 되었다.

이후에 세계문화유산까지 되었으니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이 신의 한 수 였던 셈이다.

뭐 한국의 하회마을도 비슷한 코스를 밟고 있지만

이 정원이 유명해지다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은데, 문제는 정원의 설계자가 알려지지 않으니

모두가 추측일 뿐이다. 일설에 의하면 시치고산(七五三) 정원이라 하여 돌의 배치를 홀수로

한 것이라고도 하고, 호랑이가 강을 건너는 정원이라고 하여 어미 호랑이 한 마리와 아기 호랑이

3마리가 있는데 그 중 아기 호랑이 한 마리가 포악해 어미가 없으면 다른 형제를 잡아먹어

이를 겹치지 않게 건너게 한다는 이야기를 대입시키기도 한다. 모두 알 수는 없다.


료안지의 또 다른 명물인 츠쿠바이라는 손 씻는 그릇

다실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는 그릇인데 가운데를 입 구자 모양으로 만들고 사방에 한자를 배치하여

"吾れ唯だ足ることを知る" 즉 내가 오직 족함을 안다라는 뜻이 되도록 하였다.

미토번의 번주인 도쿠가와 미츠쿠니가 기증했다고 한다. 


유래를 적은 안내문


이제 방장을 지나 불전으로 간다.


1981년 새로 재건한 불전


내부는 비공개


불전 안에는 크게 볼 것이 없다.

이제 서쪽 정원으로 간다.


정원으로 가는 길에 놓인 돌다리




다리 밑으로는 꽤 세찬 개울이 지나간다.

비가 와서 아마 더 물이 많은 것 같다.


개울을 건너면 료안지를 중건한 호소카와 가문의 위패를 모시는 호소카와묘가 있다.


위패를 좌우로 두고 가운데에는 료안지의 중건하였으며 아시카가 막부의 지류로써

슈고다이묘였으며 호소카와씨의 적통 당주인 호소카와 카츠모토(細川勝元)의 상이 모셔져 있다

호소카와 카츠모토는 아시카가 막부의 쇼군 계승 문제로 일어난 오닌의 난에서 동군의 영주였으며

뛰어난 지휘관이었으나 전국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의 아들 마사모토는 쇼군가를

휘어잡고 반 쇼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나 결국 양자들의 가계 승계 문제로 분란에 휩싸여

암살당하고 시대는 전국시대로 향하게 된다.


가까이서 본 상



정원에는 동백과 함께 석탑이 서 있다.

임진왜란 당시 히데요시가 조선에서 가져간 동백이라고 한다.


멀리 불전이 보인다.


불전 앞의 문과 종루


불전을 돌아 밖으로 나간다.


출구


나오는 길 다시 찍은 정원

뒤편의 담은 유채기름을 흙에 섞어서 담의 수명을 늘리고 또 자연스럽게 기름이 배어나오게 했다고 한다.


료안지를 나온다

칙사문


다시 경용지를 향해 걷다보면 오래되어 보이는 괴석들이 보인다.



분명 여러 곳에서 조경용으로 옮겨온 돌들인데

그 크기를 보아 당시 료안지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경용지 풍경


연못 군데 군데 신사가 자리잡고 있다.


단풍이 참 좋다던데 나는 왜 겨울에만 다니나...

돈이 없어서 그렇지...


가운데에 떠 있는 섬

안에 변재천을 모신 신사가 있다.


수분석이라는 표시가 있다. 조경의 의미가 있고, 아마도 바닷가에 있는 부부암 같은 것을

형상화한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