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9차

9번째 간사이원정기 - 5일 교토 라쿠사이2 (닌나지仁和寺)

同黎 2016. 1. 2. 18:59



나는 호콘고인을 가기 위해 급하게 택시를 타고 나머지 사람들은 닌나지로 간다.


닌나지의 이왕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왕문에서 바라본 모습

저 길 끝에 오무로닌나지역이 있다.


이왕문에서 바라본 닌나지 경내

자세한 이야기는 지난 여행기들 참조



현재 어영당, 관음당은 공사 중이다.


먼저 닌나지 어전으로 들어간다.

닌나지 경내는 일반적으로 무료이지만(금당, 오층탑 특별공개일 때 제외) 어전만은 500엔을 내야 한다.


닌나지 어전은 10세기 우다천황의 어소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후 황실가문과 연결되어 있는

문적사원의 총본부, 진언종 어실파의 총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재건되었으며 메이지시대 전소된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어전 건물들 일체가 국가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어전의 현관

일본은 이렇게 현관을 별도 건물로 지어놓은 경우가 많다.


어전 현관에는 이렇게 항상 꽃병이 놓여져 있다.

이곳은 일본 전통 꽃꽃이 오무로류파의 본산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은 참 별 게 다 유파가 있다.


닌나지 오층탑 투시도


현관에서 바라본 뒤편 정원

매화 봉오리만 보인다.


어전의 각 건물들은 이렇게 회랑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한국도 그렇고 중국도 귀한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은 이렇게 다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요새 복원하는 건물들은 예산상의 문제로 혹은 미관상(사진이 이쁘게 안 나오니까)

회랑을 복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전의 첫 건물인 백서원


백서원 앞에는 이렇게 하얀 모래를 깔아놨다.

여기가 남정(南庭)이다.


정면에는 칙사문이 보인다

천황이나 쇼군가의 명을 받은 칙사가 올 때만 열리는 문이다.


정원에는 문관과 무관을 상징하는 귤나무와 벚나무를 심었다.

고쇼의 자신전 앞마당과 비슷한 구성이다.


백서원 내부


이제 회랑을 따라 신전(宸殿)으로 간다. 


신전 뒤편

신전은 어전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법황의 사무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회랑을 가다보면 신전과 흑서원으로 갈리는 회랑이 갈라져있다.





제발 안경 좀 쓰라고...


흑서원의 모습


한국에서는 학문의 공간인 서원이 일본에서는 서원조라는 하나의 건축용어로 정착했다.

화려한 침전조와는 반대로 소박하고 단아한 형태의 주택 건축을 서원이라고 한다.


흑서원과 신전 사이의 작은 정원



흑서원 내부



회랑에서의 기념사진


이제 신전으로 간다.


문에는 나무 결을 따라 벚나무 아래 춤을 추는 그림을 그러 장식해 놓았다.

이런 장식화가 매우 발전하여 하나의 유파가 되기도 했다.


신전에서 바라보는 오층목탑


신전 앞에 있는 북정(北庭)은 닌나지의 백미이다.

여기를 보지 않고는 닌나지를 보았다 하기 어렵다.


배경에 있는 사람은 일단 무시하고

연못과 인공 언덕, 그리고 뒤편의 다실과 오층탑까지 이루는 조화가 훌륭하다.

이렇게 멀리 있는 사물이나 자연을 정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차경이라고 한다.


북정은 남정과 상반되게 진짜 물을 끌어들여 정원을 이루는 지천회유식 정원이다.

뒤편의 다실은 에도시대 건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으윽


남정과 북정은 이렇게 작은 담으로 갈려져있다.


닌나지 북정은 언제나 일품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언제 정원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 17세기 초까지는 올라간다고 한다.

연못 주위로 쌓아올린 언덕 위에 자연스럽게 건물을 올려놓았다.

저 건물은 천황과 황족을 모신 영명전이다.


영명전 가는 복도에서 바라본 신전과 흑서원


영명전으로 올라가는 회랑의 계단

자연스럽게 층이 져 있다.


영명전 내부

안에는 밀교식 대단이 펼쳐져 있으며 정면에 보이는 불상은 국보로 지정된

헤이안시대 작품으로 시라카와 천황의 아들 각행법친왕의 불상이다.


영명전에서 바라본 흑서원


북정의 모습

고산수식 정원과 지천회유식 정원을 묘하게 섞어 놓았다.



앞마당에 있는 작은 우물



다시 돌아본 북정의 모습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고 돌다리를 놓았다. 그것을 흰 모래로 연결시켜 놓은 모습이 묘하다.


이제 어전을 나온다.


밖에서 본 칙사문

소실된 것은 메이지시대에 재건한 것으로 전형적 가라몬(당문)식 문이다.


한켠에 만들어진 금강화보살 청동상


금강계만다라의 보살 중 하나로 꽃을 지니고 있다.

81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건 동문인데 왜 찍었니...


정작 중요문화재인 중문은 찍지 않았다.

옆으로는 공사 중인 관음전이 보이고 그 앞으로 교토에서 가장 늦게 피는 오무로사쿠라가 보인다.


금당으로 가는 계단


멀리 오층탑이 보인다.


금당의 모습


뒤돌아 본 중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1640년대 닌나지가 일제히 복구될 때 다시 지었다.


오층목탑의 모습


이래봬도 교토역 기준으로 북쪽에서는 가장 높은 탑이다.

교토에서 가장 높은 탑은 도지의 탑이지만

닌나지의 목탑이나 야사카노토(팔판탑) 역시 이에 못지 않게 유명하다.


기념사진


오층탑 뒤에는 닌나지의 진수사로 아홉 분의 신을 모신 구소명신이 보인다.


붉은 3채의 건물이 구소명신 본전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뒤편에는 경전을 보관하는 경장이 보인다.

역시 중요문화재이다.


금당으로 간다.


다시 본 경장의 모습


닌나지의 금당은 국보이다.

이게 왜 국보인지 궁금해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 건물은 17세기 초 교토어소의 자신전을 하사받아 옮겨 지은 건물이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경복궁 근정전을 옮겨 지은 것이다.

정작 지금 고쇼에 있는 자신전은 여러 차례의 화재를 겪은 후 에도시대 말기에 다시 지은 것이니

결과적으로 닌나지의 금당이 전국에 있는 어소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되었다.

일본사적으로는 의미가 결코 적지 않은 건물이다.


원래 지붕은 노송나무 껍질로 만든 것이지만 후에 기와로 바꾸었다고 한다.


금당 내부는 잘 공개하지 않지만 공개 중인데 들어가진 않았던 것 같다.


옆에 있는 종루

역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옆에는 구카이(공해)를 모시고 있는 어영당이 있는데 공사 중이다.


측면에서 본 금당 건물에 도금한 금속 장식을 해 넣었다.

기와로 바꾸는 바람에 개인적으로는 다소 품격이 낮아 보이는 건물이지만

그래도 직접 가서 보면 생각보다 건물이 커서 놀란다.


이제 닌나지를 나온다.

멀리 보이는 이왕문



이왕문에 모셔진 금강역사들


일본인에겐 유명하지만 한국인은 의외로 잘 모르는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