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제

송해매력대왕실록

同黎 2013. 5. 27. 23:02
왕력 내용 책수
송혜00 2012 11 1 상이 즉위하였다. 상의 본명은 송혜영이며 시호는 매력이다. 선왕 이명희가 학관정에서 운동춤을 추다가 갑자기 훙서하였다. 그런데 명희대왕이 생전에 세자를 정하지 않아 보위가 정해지지 않았다. 이에 前 영의정 겸 왕비인 이행묵이 급히 궐을 나와 전임대신을 찾아갔으니 그가 바로 오래곤부원군(烏來坤府院君) 박세연이었다.

행묵이 세연을 보고 가로되 "금상께서 갑자기 훙서하셨는데 건저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사국의 보위는 하루도 비워놓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대비도 없으니 오직 열성조를 섬겨오신 대감께서 알아서 하셔야 할 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세연이 사양하며 가로되 "내 이미 치사한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대통을 논하겠는가?" 하니 행묵이 가로되 "고금의 역사를 아시는 분은 오직 대감뿐이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세연이 탄식하며 가로되 "내가 열성조를 섬긴지 8대가 되었는데 또 다시 죽지 않고 아홉번째 임금을 섬기게되었으니 복인가 죄인가? 그러나 오직 천명이 명하신 바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금상께서 살아계실 때 미복을 입고 잠행을 나가셨다가 우연히 자식을 얻으셨는데, 그 공주가 사가에 있다. 모셔와 보위에 올리면 될 것이다." 하니 행묵이 물어 가로되 "보지도 못한 임금을 어찌 알아봐서 모시겠습니까?" 하니 세연이 말하길 "용의 씨앗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전하의 핏줄이니 오죽할까? 천안 삼거리에 가면 한 집이 있고 거기에 공주가 계신데 보지 않아도 매력이 넘치시어 천안 백성들이 모두 매력둥이라고 부른다. 천안 고을에 가보기만 해도 그 매력 때문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니 대감은 걱정말고 천안으로 당장 떠나라." 하였다.

행묵이 밤새 말을 달려 그날 새벽 천안에 행하여 그 고을의 노인에게 "여기 매력적인 아이가 있다 하는데 혹시 알고 있소?"라고 물으니 마을의 원로들이 하나 같이 한 사람을 가리켰다. 행묵이 가서 뵈니 몇 마디 말을 나누지 않아도 절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에 상을 모셔와 서울에서 즉위하게 되니 만조백관과 온 백성이 엎드려 절하여 성군의 치세가 태평성대이기를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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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00 2012 11 2 상이 관직을 임명하였다. 이가은을 정1품 영의정 겸 호조판서에 제수하였다. 이가은은 성품이 강직하고 목소리가 아름다워 사람들이 요정이라 칭송하였다. 휘하에 여진족 구준하를 거느리고 수족처럼 부리곤 하였다.

심보람을 정1품 좌의정 겸 판내시부사 겸 성균관대사성 겸 도승지에 제수하였다. 심보람은 성품이 느긋하고 우유부단하나 자못 사회과학과 역사를 알아서 명망이 있었다. 대신중에 가장 나이가 많 과거 금강국의 백성이었으나 한사국에 귀순하였다. 일찍이 노망이 들어 윗사람에게 하대하는 병통이 있었다.

장명호를 정1품 우의정 겸 특별상궁에 제수하였다. 장명호는 성품이 카와이하여 명망이 있었다. 이 때 상이 새로 여조(女曺)를 만들고 장명호를 여조판서에 제수하려 했으나 법전을 고치기 어려워 우선 특별히 상궁에 제수하였다. 사람들이 상이 지나치게 명호를 편애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였다.

Seulbi Ryu를 종1품 좌찬성 겸 대사헌에 제수하였다. 류슬비는 사람과 말하길 좋아하고 신문지를 잘 찍어내 명망이 있었다. 특별히 대사헌에 제수하여 소통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곽철민을 종2품 호조참판 겸 사옹원제조에 제수하였다. 곽철민은 인심이 좋고 백성들을 잘 먹여 명망이 있었다. 다만 잘 씻지 않는 문제가 있었기에 대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벼슬이 참판에 그쳤다. 상이 특별히 집을 하사하였으나 성품이 검소하여 집에 잘 들어가지 않고 홍보궁에서 잘 퇴청하지 않은체 노숙하기 일쑤였다. 집안에 제물이 제법 있었으나 폼내지 않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진실로 청백리였다.

유제훈을 정1품 판의금부사 겸 춘추관사에 제수하였다. 유제훈은 7대를 섬겨온 고명대신이다. 오래도록 북방에 장군으로 있다가 이 때 서울로 돌아왔는데 특별히 관직을 제수하여 국왕을 호위하도록 하였다. 또한 자못 역사에 밝다하여 춘추관의 일을 겸하게 하였다.

즉위를 기념하여 특별히 과거를 열고 30명을 뽑았는데 그 중 장원한 김동영과 정혜정에게 정6품 홍문관 수찬을 제수하였다.

관직임명의 교지를 내리고 기로소에 가서 연회를 베풀었다. 오래곤부원군 박세연, 인천부원군 유제훈, 거창부원군 이승환, 서초부원군 이진호, 대치부원군 채홍병, 분당부원군 김의경, 대비 이행묵이 참석하여 대왕의 매력이 영원하시길 빌었다. 오래곤부원군 박세연이 원임대신을 대표하여 나와 상 앞에서 축수하며 노래를 바쳤으니 "꽃 중의 꽃혜영님 꽃. 120의 가슴에 피어라, 피어라, 영원히 피어라 안암동 홍보관에 정대후문 언덕 위에 민족의 꽃이 되어 아름답게 피어라" 라 하였다. 상이 크게 칭찬하고 종묘의 정악에 포함시키라 명하였다. 이 날 잔치에 참여한 이들에게 술 석잔씩을 내리고 연회를 파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상이 즉위하자 마자 대신들을 임명하였는데 그들 대부분이 상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이 기꺼이 타랐으니 아! 상의 매력이여! 어리석은 자가 함부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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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00 2012 11 3 영의정 이가은이 황제폐하의 책봉 조서가 온다고 계하였다. 여진족 추장 구준하가 알려온 것이다. 권1
송혜00 2012 11 6 상국인 고려국 황제폐하의 책봉조서를 지닌 칙사가 수도 가까이 도착하였다. 오래곤부원군 박세연이 접반사가 되어 정대후문에 나아가 칙사를 맞이하였다. 이때 칙사는 정사로 태감 조용철이, 부사로 태감 노준석이었다. (태감은 곧 환관이다.)

조용철은 한문국의 왕이었는데 반역으로 쫓겨나 상국인 고려국으로 들어가 태감이 되었다. 사마천의 예에 따라 태사감에 들어가 역사의 일을 편찬하였다. 재물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지나치게 술을 좋아하고 주사가 있었으며 지나치게 의례를 따지는 병통이 있었다. 노준석은 조용철의 세자였으나 함께 도망가 태감이 되었다. 아버지를 따라 지나치게 술을 좋아했는데 다만 조용철과는 달리 말수가 적어 사람들이 샤이가이라고 불렀다.

정대후문에 나아가 접반사 박세연이 읍하고 안으로 들어갈 것을 청하니 정사 조용철이 진노하여 말하기 "내가 비록 환관이지만 고려국 황제폐하의 칙서를 지닌 천사(天使)인데 번국의 왕이 집적 나오지 않는가? 내 돌아가리라" 하니 접반사 박세연이 달래며 말하길 "우리 대왕께서 매력이 넘치시지만 오래도록 사가에 기거하시어 국가의 예에 밝히 못하시다. 번국이 예에 밝지 못하면 상국에서 밝혀 주시는 것이 아름다운 전례인데 어찌 천사께서는 노여움만 내시고 결국 돌아가시어 번국을 자식과 같이 품으려는 이진한 폐하의 뜻을 어그러트리려 하시는가? 천사께서 비록 이번에 칙사로 오셨으나 번신과는 오래도록 알아온 벗이니 칙서를 알현하고 어서 연회로 나아가자" 라며 달래고, 부사 노준석도 "그래요 그냥 들어가요" 라고 하니 조용철이 노여움을 조금 풀었다.

이에 조용철이 정대후문으로 들어가 홍보궁으로 나아갔는데 상이 홍보궁 삼층문에서 칙서를 맞으려고 하니 다시 진노하며 말하길 "먼길 온 천사를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오게 하는 것이 한사국의 법도인가? 마땅히 내리막길로 이어져있고 남향인 큰 일층문에서 맞이하여야 할 것이다. 어찌 쪽문으로 들어가겠는가?" 하니 다시 박세연이 달래 말하길 "과거 1층문 앞에는 깡통관이 있어 칙사가 거기서 먹고 유숙하였으므로 편리하였다. 그러나 지난 태풍으로 깡통관이 사라져 부득이 꽈사관에 거쳐를 마련했으니 삼층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하고 부사 노준석도 "그래요 그냥 들어가요"라고 하니 조용철이 못마땅한 빛을 지우지 않았으나 결국 문으로 들어갔다.

상이 조용철을 만나 인사하며 "누추한 곳에 오셔서 누추한 사람을 만나시게 하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조용철이 "전하의 매력은 익히 들어봤습니다. 천천히 이야기하며 매력발산하시길 바랍니다." 하니 상이 우선 쉬기를 권하니 서로 읍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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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00 2012 12 16 김원겸을 장악원정으로 삼았다. 이 때 나라의 음악이 거의 다 무너졌는데, 김원겸이라는 자가 제법 비파를 잘 친다하여 찾아내어 관직에 제수한 것이다. 권2
송혜00 2012 12 20 좌의정 심보람을 새터도감 도제조로 삼았다. 대개 심보람의 반역심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권2
송혜01 2013 2 27 홍문관 수찬 김동영을 특명으로 정4품 의주목사로 삼았다. 김동영은 본래 호남 사람인데 얼굴이 검고 어려서부터 대동강 이북의 방언을 익혀 자못 비슷했다. 이때 압록강 인근이 불안했는데 대신들이 이북말을 잘하는 이를 북방에 보낼것을 청하고 김동영을 추천했는데 상이 따른 것이다. 권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