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5일 아스카2 (아스카데라飛鳥寺)

同黎 2018. 5. 23. 07:25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아스카데라에 왔다.


이곳은 4시 45분 마감이지만 비교적 5시 입장도 허가해주고,

한국인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도 너그럽다.


아스카대불이라는 표석은 에도시대에 썼다는 안내문


여기도 여러 번 왔다.



아스카데라는 아스카시대 소가노 우마코가 모노노베씨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창건했다고 알려져있으며 소가씨의 우지데라로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법흥사 혹은 원흥사로 나라 천도 이후 옮겨간 것이 바로 간고지이다. 소가씨는 강력한 불교 후원세력으로 아스카데라는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지어진 최초의 사찰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당시 일본에는 백제에서 온 3명의 비구니만 있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사찰과 승려가 없었다. 이에 요메이천황이 자신의 황후인 스이코천황과 쇼토쿠태자에게 사찰을 지을 것을 명하였고, 이어 스슌천황 때 백제에서 일본으로 승려와 기술자를 보내주어 아스카데라의 조성을 시작했다. 이후 스이코천황 때 탑이 세워졌다고 했는데 실제 발굴 결과 심초석 및에 사리가 나와서 6세기 건립설이 확정이 되었다. 다만 한꺼번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탑을 중심으로 서서히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며 불상 조영도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이카개신 후에도 텐무천황의 명에 의해 관사와 동등하게 처리하도록 명하여 다이칸다이지(대관대사), 카와라데라, 야쿠시지와 함께 4대 사찰로 일컬어졌다고 한다. 이후 나라시대에도 현장에게 사사받은 법상종 승려 도쇼가 여기 머물렀다고 한다. 수도가 나라로 옮겨지면서 아스카데라, 즉 간고지도 이전했으나 아스카에도 본래의 사찰은 남아 있었다. 이는 야쿠시지 등 다른 사찰도 마찬가지. 그러나 12세기 후반 화재로 탑과 금당을 소실하고 에도시대에 이르기까지 철불은 노상에 방치되었고, 에도시대에도 임시 건물만 있었다. 이후 18세기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본당이 지어진 뒤 안거원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하세데라의 말사가 되었으나 지금은 그냥 다 아스카데라라고 부른다.


금당


조사 결과 지금의 금당은 원래 금당 자리 위에 세워졌으며 아스카대불은 자리가 옮겨진 적이 없다고 한다.


입장료 내는 중


아스카시대 초석을 이용하고 있다.


아스카대불


많이 설명했지만 간략하게만 설명하자면 일본서기 등 여러 사료에 따라 605년에서 609년에 걸쳐 쇼토쿠태자의 주도로 도리라는 불사를 시켜 장국상을 만들었으며 도금에 드는 금은 고구려에서 보내줬다고 한다. 본래 일광삼존불이었다고 생각되며, 원래는 머리 외에는 거의 많은 부분이 후보되었다고 생각된다.

1973년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 결과는 당초 부분은 머리의 이마 아래에서 코 윗부분과 오른손 손가락 3개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른 조사자는 왼손과 왼발 일부는 당초 것이며 귀도 원래 것이라는 추정을 했다. 때문에 일본 최초의 불상이면서도 국보가 아니라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게 뒤집어진 것은 2012년 와세다대학의 조사로 과학 전 원료 조사 결과 불상 대부분이 당초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대좌 역시 조사되어 원래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국보 승격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불상 앞에는 탑자리 심초석에서 발견된 석가 진신사리가 전시되어 있다.



그냥 감상하자



목이 약간 돌아간 것이 보인다.


실제 화재로 목은 좀 삐뚤어져 있다.


나발은 후대에 붙인 게 많은 것 같다.


볼에 상처도 보이고





불 먹은 자리



손가락은 좀 후보된 것이 보인다.



대좌 부분


한쪽에 모셔진 성덕태자상


16세의 효양상


아미타여래



에도시대 작


뒤편 전시관으로 간다.


작은 정원



발굴조사 당시의 모습


복원도


연화문 와당


백제 것과 비슷하다.



평기와


각종 토기


헤이안시대 조각상들


대흑천

가마쿠라시대


부동명왕

무로마치시대


금당 정면


초석


마당에는 초석이 있다.



소가노 이루카의 머리 무덤


통하는 문


저 언덕 아래에도 유적이 엄청 많다.


과거 유구


소가씨의 마지막 권신인 소가노 이루카의 머리무덤

머리를 베자 여기로 날아왔다고 한다.


사거리까지 나와 있는 아스카데라 터 유적

이렇게 바쁜 5일째 일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