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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여행기 - 4일 (천단공원1: 기년전, 황건전)

이제 잠시 나머지 3명의 시점으로 돌아간다.지하철 5호선 천단동문(텐탄둥먼)에서 내리면 바로 천단공원 동문으로 들어간다.천단공원 동문은 천단의 동북쪽에 위치해있으며 여기서 관람하면기년전-황궁우-환구단(원구단) 순으로 관람하게 된다.본래 동선과는 역순인 셈이다. 입장권통표 35위안이다. 천단공원 현판 천단공원(天壇公園) 경내도보면 북쪽은 둥글고, 남쪽은 직각인 희한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의 설을 따른 것이다.천단인데 왜 땅이 나오냐면, 천단이 처음 세워진 영락제부터 명나라 가정제 때까지는여기에 천단(원구)과 지단(방택)을 한꺼번에 모셨기 때문이다.때문에 천단이 아니라 천지단이라고 하였다 하는데 가정제 이후 지단을 분리하고 일단과 월단을 만들어천지일월..

북경여행기 - 4일 (중국수도박물관5: 강희자기 특별전)

이제 3층의 특별전시실로 간다. 성세풍화(盛世風華)대청 강희 어요자즉 강희제의 어용 자기 특별전이다.사진 찍으려는데 아가 하나가 끝까지 포즈를 잡는다... 강희제 초상 프롤로그 들어가는 입구에 청화백자 하나가 놓여있다.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업성동작대 연회 풍경을 그린 자기이다. 청화백자와 유리홍으로 그린 백자들이 먼저 전시되어 있다. 수많은 꽃병들모두 황실에서 쓰이던 것이다. 다양한 기형의 청화백자들 명나라 시대의 자기고사인물도가 그려져 있다. 역시 명나라 때의 꽃병사아도라는 선비들의 풍류를 그렸다. 인물을 그린 꽃병 시를 넣어 만든 필통강희제 때의 것이다. 여러가지 화려한 청화백자들 본래 금은기로 만드는 술잔을 청화백자로 재현했다.가운데에는 용이 그려져있다. 본래 말 위에서 술을 마실 때 썼던 마상배..

북경여행기 - 4일 (중국수도박물관4: 도자예술, 경극)

이제 바로 옆의 고대 자기 예술 정품전시실로 간다. 일반적으로 도자기는 소성 온도에 따라 토기-석기-도기-자기로 올라간다.토기와 석기는 투수성이 높은 것으로 흙을 구워서 구운 것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도기부터유약을 쓰기 시작하지만 도기는 자기에 비해 투수성이 높고 강도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또한 유약과 태도가 완전 붙은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유약이 벗겨지기도 한다.자기는 송에서 처음 만들었고, 고려가 그 뒤를 이었다. 북송의 오대 명요인 정요·여요·관요·가요·균요에서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청자와 백자가 만들어지고 남송도 용천요나 월주요에서 많은 청자를 생산했다.요, 금 역시 자기를 생산했으며 원대부터 경덕진요를 중심으로 한 백자가 생산되었다. 수도박물관의 자기 전시관은 송에서부터 시작한다. 전부..

북경여행기 - 4일 (중국수도박물관3: 불교예술)

이제 4층으로 간다. 먼저 고대불상예술전시관으로 간다. 고대불상예술정품전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프롤로그 수당시기부터 시작한다.아무래도 이 지역이 중심지는 아니었다보니 아주 초기 불교 미술품은 적나보다. 도록이 없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전시된 부상 전체를 촬영해왔다.이제 수백 개의 불상 사진을 다 설명할 순 없기에 중요한 것만 짤막하게 코멘트를 붙인다.초기 형태의 단순한 불상들 신장상 초기 중국 불상 형태의 작은 불상 몸에 차고 다녔을 것으로 생각되는 작은 신장상 광배가 인상적인 작은 여래상 조성기가 새겨진 작은 석조 불비(佛碑)아직 남북조시대 북조의 분위기가 남아있다. 완전히 당나라 풍으로 바뀐 석불 여래상 몸을 S자로 비튼 삼곡(三曲) 모양의 보살상 금동불 작은 보살상과 여래상들 십일면관음 의자에 앉은..

북경여행기 - 4일 (중국수도박물관2: 고도 북경의 역사 문화)

이제 2층으로 왔다. 고도 북경 역사문화편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연나라 수도에서 한나라 시대의 북평(北平)을 거쳐금, 원, 명, 청의 수도인 베이징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유물들 기원전 11세기의 유물들로 연나라에서 만든 청동기들이다.이 때의 연나라는 아직 주나라의 봉건제에서 완전히 탈피하지는않은 국가로 주나라 소공의 아들에게 내려진 봉지였다.그러나 동이족을 막는 역할을 하고 조선 등과 교류하고 대립하면서중원과는 조금씩 다른 문화를 유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청동 투구이런 건 처음본다. 통으로 된 투구라니 여러 유적에서 발견된 갑골문과 봉니 등의 유물들 금문이 새겨진 정(鼎). 아직 서주시기의 유물이다.이런 유물 덕분에 당대의 사실을 잘 알 수 있다.이런 점을 보면 문헌사료..

북경여행기 - 4일 (중국수도박물관1: 민속문화)

북경여행 마지막 날원래 이화원과 원명원을 가려고 했으나 공원 외의 건물 입장 시간은 9시라는 사실을 알고 급하게 일정을 수정하여 나는 수도박물관을, 나머지는 천단과 스차하이를 보고 북해공원에서 합류하기로 한다.비가 오는 마지막 날 혼자 숙소를 빠져나와 수도박물관으로 향한다. 국가박물관에서의 고통을 생각해서 개관시간인 9시를 맞춰 가기로 한다.1호선 무시디역에서 C1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큰 길을 따라 걸으면 웅장한 규모의 북경수도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와 생각보다 더 크다. 특별전시를 하고 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고 아침이라 사람은 별로 없다.국가박물관과 같은 방식의, 하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간단한 몸수색을 받고 들어가면 엄청난 규모의 중국수도박물관이 펼쳐진다.정면에는 거대한 패방이 서 있다. 명나라..

북경여행기 - 3일 (경산공원2)

이제 마지막 꼭대기에 있는 만춘정(萬春亭)이 보인다. 정사각형의 만춘정이 기다리고 있다. 만춘정을 비롯한 경산오정은 건륭제 때 지어진 것이다.명대에도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어쨌든 지금의 형태는 건륭제 때 완성된 것이다.5정 중 4곳은 그대로이지만 서쪽 제2정인 집방정(輯芳亭)은의화단의 난을 진압했던 연합군이 퇴각할 때 불을 질러 파괴하였다. 만춘정 내에는 5방불 중 가운데에 해당하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지금의 불상은 목조에 금박을 입힌 것인데 아주 큰 고초를 지낸 것이다.뭐 본래의 것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한 듯하다.일단 의화단의 난 때 팔이 잘리는 큰 파괴를 당했고 다시 문혁의 과정에서 한 번 더 부서졌다고 한다.지금의 것은 1998년 복원한 것이다. 이번엔 못 간 서쪽 제1정인 부람정불공..

북경여행기 - 3일 (경산공원1)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경산공원이다.정문이자 남문인 경산문에서는 택시가 설 수 없어 우리는 동문에서 내린다. 동문인 산좌리문(山左里門)입장료는 2위안이다. 관람시간은 9시까지로 북경에서 저녁시간에 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답사코스이다. 경내 안내도사실 경산공원(景山公園, 징산공원)은 흔히 알고 있는 경산오정뿐만 아니라 수황전, 영사전, 관덕전 등일련의 제사 및 후원, 궁궐을 포함한 넓은 영역이지만 지금은 경산오정 부분만 공개되고 있다.원래 경산지역은 수, 당대부터 행궁이 있던 자리였다. 특히 이 자리는 수양제가 고구려 원정군을 보낼 때 본영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이후로도 요, 금대에 경산공원과 북해공원 일대는 궁성과 후원이 있던 자리였다.그러던 이곳에 산이 생긴 것은 원대였다. 지금의 자리에는..

북경여행기 - 3일 (남신창: 북경오리 대동카오야-다둥카오야)

눈 앞에 경산공원이 있었으나 11시부터 4시 반까지 무려 5시간 넘게굶었기 때문에 먼저 저녁을 먹고 경산공원을 보기로 했다.5시면 문을 닫는 다른 관광지와는 다르게 경상공원은 9시까지였기 때문이다.신무문 앞에서 택시를 타는데 이게 원래 이런건지 모르겠으나 오직 외국인만 탈 수 있었기 때문에 여권을 들고 택시를 잡아야했고 심지어 택시 기사가 출입국 도장과 비자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신무문 앞만 이런 건지 모르겠다. 실제 중국인들은 택시를 못 잡았다. 게다가 메타기도 안 누르고 가격을 흥정해서 가더라.허허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택시를 타고 대동카오야로 간다. 대동카오야는 퇀제후(단결호, 團結湖)역 C번 출구에서 가까운데택시를 타고 다둥카오야라고 하니 바로 알아듣는다.원래 베이징덕, 북경오리 하면 전취덕이라..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어화원, 신무문)

자금성에 감금된 지 5시간째이제 다들 나가고 싶어한다. 곤녕궁(坤寧宮) 뒤편 후삼궁의 출구인 곤녕문(坤寧門)이 보인다.여기를 지나면 후원인 어화원(御花園)이 시작된다. 온갖 기암괴석과 기화요초를 모아 둔 어화원 나무 한 그루도 범상치 않다. 어화원은 자금성의 정식 화원이다. 전체 차지하는 부분은 자금성 총면적의 1.5%에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금성 내에서 보기 드문 나무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자금성에서 유일한 녹지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어화원 외에도 건복궁, 자녕궁, 영수궁에 각각 화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기준에서 볼 수 있는 후원은 어화원과 따로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영수궁의 건륭화원 뿐이기 때문에 일반 입장한 관람객이 볼 수 있는 후원은 어화원이 유일하다..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후삼궁: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후삼궁 구역에 들어가기 위해 건청문 앞으로 가는 길보화전 뒤편이 보인다. 보화전 뒤편에는 자금성에서 가장 크고 긴 것으로 알려진 답도(단지)인 운룡대석조가 있다.중국 측 안내서에는 운룡석계(雲龍石階)라고 써 있었다.길이는 16.5미터, 폭은 3미터, 두께는 1.7미터에 달하는 이 운룡대석조는무게가 200톤으로 원석의 무게는 300톤이었다고 한다.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이 운룡대석조는 북경 서남부의 팡산(房山)이라는 곳에서 채굴되었는데명사에 따르면 병조에서 병사 6천 명을 동원해 채굴했으며 겨울철에 2만 명을 동원하여얼음을 얼린 빙판길을 이용해 옮겨왔다고 한다. 오악과 운룡을 조각한 이 운룡대석조는 명대 석조미술의 대표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러 군데서 극찬을 하긴 하지만 사실 그렇게 엄청 감동적인 조각은 ..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동육궁)

이제 종표관(봉선전)을 나와 동육궁으로 간다. 영수궁 옆에 있는 동육궁은 서육궁과 마찬가지로 황제의 비빈의 처소로 활용되던 곳이다.서육궁에 비해서 중요도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곳이고무엇보다 진보관을 보고 나면 기운이 빠져서 보기 어렵게 된다.지금은 대부분 청동기관, 도자관, 불상조소관 같은 전시관들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유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보면 좋지만 우리는 너무 지친 나머지 가장 유명한 연희궁(延禧宮) 정도만 보기로 했다. 함화좌문을 지나면 동육궁이 모여있는 골목이 보인다. 연희궁으로 가는 도중에 보이는 경인궁에 잠깐 들리기로 한다.정문인 경인문(景仁門)을 지나면 이렇게 옥으로 된 영벽이 나오고 경인궁(景仁宮) 본전이 나온다.경인궁은 영락제 때 장안궁이었다가 가정제 때 지금의 이름을..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종표관2)

봉선전(종표관) 정전 뒤편에 있는 서양식 시계서양 시계를 본따 청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시계 뒤편 벽을 보면 유리벽이 보인다.봉선전 뒷면 벽이 뜯겼던 흔적이다. 침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공간 가운데 부분에 전시된 연꽃모양 시계왼쪽에 정전의 뜯겼던 부분에 설치된 유리 벽이, 오른편에 침전의 벽이 보인다. 역시 서양 시계를 모방해 자체적으로 청에서 만든 시계연꽃 화분모양으로 만들었다. 커다란 스위스 시계잘 보면 아래 붓을 들고 있는 인형이 있다.정각이 되면 이 인형이 시간을 종이에 써서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시계는 스위스에서도 귀한 것이다.전세계적으로 몇 개 안 남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기하다. 청나라에서 만든 시계누각모양의 시계에 시간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인형을 설치했다.유럽에서 유행했던..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종표관1: 봉선전)

이제 종표관으로 들어간다.여기도 별도로 10위안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면 봉선문(奉先門)이 나온다. 역시 벽에 뚫은 문이다. 문을 들어가면 봉선전(奉先殿)이 보인다. 봉선전은 원래 명나라 때 지어서 청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개수된 건물로工자 모양 건물이며 앞의 정전과 뒤의 침전으로 이루어져 있다.봉선전은 원래 역대 황제와 그 조상들을 모시는 건물로 내태묘(內太廟)라고도 불렸던 건물이다.즉 태묘가 국가의 공식적인 사당으로 국가를 보호하는 사당의 역할을 했다면봉선전은 황실 가족의 개인적 사당으로 기능했던 것이다.조선의 경우에도 종묘와 별도로 창덕궁 안에 선원전을 두어서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봉선전은 정전 9칸, 후전 9칸의 거대한 건물로 굉장히 격이 높은 건물이다...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5: 건륭화원, 진비정)

이제 낙수당을 나온다.확실히 낙수당 뒷마당부터는 나무가 많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이화헌(頤和軒) 이화헌은 별당 같은 느낌으로 건륭제 때 만들어졌고 역시 광서제 때 서태후에 의해 중수된 건물이다.뒤로는 회랑이 있어 뒤의 경기각(景祺閣)과 연결되어 있다. 좌우로도 회랑이 있어 전체적으로낙수당에서 이화헌, 경기각까지를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이화헌에서 경기각은 내부가연결되어 있어 안에서는 건물이 바뀌는 것을 그리 느낄 수 없다.앞에는 일대와 월대가 있다. 일대는 말 그대로 해시계고,월대는 물을 담아 놓는 석대인데 밤에 달빛이 비추게 하는 것이다. 낙수당과 이화헌 사이에는 이렇게 향로와 괴석이 있다. 이 괴석은 수석 중에서도 가장 좋다는 관통석이다.보통은 자연석으로 나오는 경우는 좀 드물고 저런 종류는석회암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