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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4: 창음각, 낙수당)

이제 양성전 뒤를 돌아 옆으로 가면 창음각이 나온다. 창음각(暢音閣)은 3층의 건물로 경극 무대이다. 건륭제가 이곳으로 이어하면서 지었는데 후일 서태후가 영수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공사가 이루어졌다. 높이가 약 2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로 이화원에 있는 경극무대와 함께 대표적인 중국 경극무대에 속한다. 앞에는 열시루(悅視樓)라는 경극 관람장이 있는데 현재 청대경극유물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현존하는 경극 고건축으로는 가장 큰 건물이며 건물 뒤쪽으로는 일종의 와이어 장치가 되어 있다.경극 배우들이 입체감 있게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이 3층의 건물에는 각각의 층마다 별칭이 있는데1층은 수대(壽臺), 2층은 녹대(祿臺), 3층은 복대(福臺)라고 한다. 너무 ..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3: 영수궁, 양성전)

황극전 뒤로 가면 후전인 영수궁(寧壽宮)이 보인다. 단층의 정면 7칸 건물인 영수궁 건물은 황극전이 생기기 전 영수궁 건물의 원형을 간직한 공간이다.여기도 서태후가 손을 대긴 했지만 그래도 강희제 당시의 원 건축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자금성 후삼궁 중 한 곳인 곤녕궁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동항 잠시 영수궁 옆의 화장실에 들린다.경극 무대인 창음각의 뒷모습이 보인다. 물론 이 때는 이게 무슨 건물인지 몰랐다. 창음각 뒤편의 모습 여기도 조그만 문이 있다.양 옆으로는 수많은 내무부 관원과 환관, 군사들이 업무를 보았을 작은 건물들이 보인다.이런 건물들을 개조해서 매점이나 화장실을 만들다니... 조금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창음각 뒤편에서 바라본 영수궁 이제 다시 진보관 관람을 계속한다.문이 하나 ..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2)

황극전 사방의 회랑은 진보관으로 쓰이고 있다.전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주로 금은옥기 등 귀중품으로 만든 화려한 중궁 주보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맨 먼저 보이는 것은 진주로 된 조주(朝珠)라는 것으로 108염주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일종의 목걸이이다.당시 황제를 비롯한 모든 황족과 관료들은 관복이나 예복에 조주를 걸어야 했는데 계급에 따라 조주의 재료가 달랐다. 이렇게 화려한 조주는 황제나 황후, 비빈들만 걸 수 있었는데 순치제의 것이라고 한다. 청금석으로 된 조주강희제 시대의 것이다. 이것은 조대(朝帶), 즉 예복에 걸치는 허리띠이다.허리에 향낭 등의 장식품들을 달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영약(領約)이라고 하는 황후나 비빈들의 목걸이 비취로 만든 팔찌 금과 칠보로 만든 팔찌 수정 염주 비취와 금..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진보관1: 영수궁 구룡벽, 황극전)

건청문 옆으로 난 경운문(景運門)을 지나면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오고 종표관(봉선전) 입구가 나온다. 여긴 좀 이따 가기로 하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전정(箭亭)이라는 건물이 나온다.황족들에게 만주족 방식의 교육을 시키는 곳이었다. 이미 강희제 때부터 황제들은 만주족의 한화(漢化)를 심각하게 느끼고 만주족의 정체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뭐 그 정체성이라는 것이 고유한 것인지 아니면 청 건국 이후 새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 중이지만 이렇게 진보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붉은 담에 3개의 유리로 장식된 문이다. 이름은 석광문(錫廣門) 여기서 진보관(珍寶館) 표를 사야한다. 진보관 입장료는 10위안이다.자금성 입장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제 입장 진보관..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서육궁2: 저수궁, 익곤궁)

태극전을 나와 익곤궁 방향으로 간다. 익곤궁 가는 길에 있는 광생우문 익곤문(翊坤門)을 지나 익곤궁(翊坤宮)으로 들어간다. 익곤궁 정면난장판이다. 서쪽에 있는 부속건물원화전(元和殿)으로 도덕당(道德堂)이라는 별칭도 있다. 익곤궁은 서육궁의 하나이다. 본래 명대에 만안궁이었다가 가정제 때 익곤궁으로 바꾸었다. 역시 평범한 비빈의 거처 중 하나였지만 서태후(자희태후)가 1884년 50세를 맞이하여 여기서 생신연을 하고 눌러 앉았다.이 때 공사로 익곤궁과 저수궁 사이에 문과 담을 허물고 체화전이라는 건물을 추가하였다. 익곤궁 현판 앞에는 태후의 거처답게 동으로 만든 봉황, 학, 그리고 동항을 배치했다. 향로도 있다. 안에는 여러 호화품들이 전시되어 있다.옥으로 만든 복숭아 나무 화분 보석이 장식된 서양식 시계..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서육궁1: 양심전, 태극전)

보화전 옆 후우문을 통해 서쪽으로 간다. 여기서는 무슨 돈 받고 사진 찍어주는 코너가 있는데그걸 못 찍게 하려고 저런다.그것이 알고싶다인 줄 자금성 서쪽 관람로의 입구인 내우문여기서부터 양심전과 서육궁 관람이 시작된다. 내우문 서관 참관로 지도만만치 않은 넓은 지역이다.제일 먼너 양심전부터 가기로 한다. 내우문 현판 여기서부터는 만주어와 한자가 병기되어 있다.청이 멸망하고도 내조 지역은 청국 소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베이징 정변 이전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에현판이 그대로인 것으로 생각된다. 역시 외조 쪽은 중화민국 시절에 현판이 바뀐 것 같다. 서쪽 부분과 중앙 부분은 이렇게 거대한 벽과 그 사이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건물과 건물 사이가 이런 거대한 벽으로 나뉘어져 있어 바람도 잘 안 불고 답답한 느낌을 준..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외조 삼대전2: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이제 태화전으로 다가가본다. 압박감이 꽤 크다. 조선 사신들이 여기에 와서 태화전(太和殿)을 바라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중앙의 어도를 통해 태화전으로 간다. 월대의 모습 월대 아래서 본 태화전 태화전 월대는 3단으로 1488개의 난간석과 1142개의 배수구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태화전 월대에도 긴 답도가 있다. 자금성의 중심인 건물만큼 답도도 거대하다.3단으로 짜여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태화전 답도 중간에 구름 사이에서 여의주를 가운데 놓고 놀고 있는 용이 보인다. 멀리 태화전이 보인다. 이 위를 황제가 탄 가마가 지나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조선의 예를 보아도 가마가 이 위로 지나간 적은 없다.아마 호사가들의 말인 듯하다. 가운데에 있는 용 답도 하나 당 이렇게 9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외조 삼대전1: 오문, 태화문, 태화전)

태묘를 나와 오문으로 들어간다. 저 줄은 다 입장객 줄이고 또 문 오른쪽에는 영어, 한국어, 일어 등 안내 오디오 가이드 대여소이다. 오문 정면 오문에 대한 설명은 대충 앞에서 했다.오문 안시루 전경 오문 좌측의 누각들 드디어 오문으로 들어간다.이 와중에 표 잃어버렸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오문 현판오문은 시간의 기준이 되는 자오선의 중심임을 뜻한다.즉 하늘의 기준이 여기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오문으로 들어간다. 이제 본격적인 자금성 탐방의 시작이다.현재 중국에서의 공식명칭은 고궁박물원자금성 자리는 원에 이어 명, 청에 이르기까지 8백 년 동안 정치권력의 중심지였다.현재의 자금성 자리는 절반 정도 원의 대도 자리와 겹쳐 있다고 한다. 명이 원을 멸망시킨 후 대도를 싹쓸어버리고 남경을 수도로 삼았지만 영락제..

북경여행기 - 3일 (태묘-노동인민문화궁)

먼저 오문 옆의 궐좌문으로 향한다.여기로 나가면 태묘가 있다. 궐자문을 나서서 본 오문의 모습 색다른 풍경이다. 뒤로 궁성 성벽이 보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금성으로 직진할 텐데성의 오른쪽에는 태묘(노동인민문화궁)가, 왼쪽에는 사직단(중산공원)이 있다.우리는 탈진 직전이었기 때문에 태묘만 가기로 했다. 오봉루 누각 사진 궐좌문을 나오면 바로 태묘 입구가 보인다. 입장만 한다면 2위안이지만 건물 내부까지 들어가는 통표(통합표)는 10위안이다.우리가 들어가는 방향은 태묘의 뒷부분뒤에서부터 앞으로 (북에서 남으로) 훑은 방향에 속한다. 북경 태묘의 후전으로 통하는 문 여기로는 못 들어가고 옆의 문을 뺑 돌아간다. 태묘는 전, 중, 후 3개의 건물로 되어 있다.후전의 모습 측면으로 들어가서 삥 돌아가야 ..

북경여행기 - 3일 (자금성 가는 길)

이제 지하도를 나오면 천안문이 바로 앞에 보인다. 천안문 광장 앞에 있는 한 쌍의 화표석망주라고도 하는데 궁전이나 능묘 입구에 설치하는 원형의 돌기둥이다. 중간에는 구름을 조각하고 맨 위에는 하늘을 향해 짖는 신수가 올라가 있다.무려 명나라 때부터 있었던 토박이 물건이다. 천안문으로 접근 중역시 열병식 준비로 비계가 쳐져 있다. 화표와 함께 보이는 천안문잘 안 보이지만 화표 옆에는 석사자가 앉아있다. 가운데에는 마오의 초상화가 걸려있고현판 자리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장이 걸려있다. 원래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인민대단결 만세 라고 써 있는 금속판이 보여야 된다. 잘 보니 글자를 철거한 것은 아니다. 무슨 장치를 해놓는 것인지 이렇게 비계를 쳐 놨다. 천안문 앞의 다리 앞에는 금천이 흐르고 한백옥으로 만..

북경여행기 - 3일 (천안문광장)

선무문(쉬안우먼)역동당 바로 앞에 있다. 이제 천안문 광장으로 간다. 무슨 한류 콘서트를 하나보다.참여가수가 꽤 화려하다. 환승하는 서단(시단)역 도착 여기서 1호선을 타고 천안문동(텐안먼둥)역에서 하차 어제도 왔었던 역이다.와서 보니 천안문 근처가 공사 중이다. 모택동의 사진은 보이는 것 같은데 그 좌우에 있는 글씨는 안 보인다. 좀 실망이다. 무슨 공사인가 했더니 9월 3일부터 있을 중국의 항일전승절 기념 열병식을 준비하는 것이었다.유난히 강도 높은 검문은 그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저 하늘색 국기는 알고 보니 피지 국기였다.피지 대통령이라도 방중했나보다. 본래 베이징 황궁으로 들어가는 제2문이었지만 (제1문은 사라진 대청문)지금은 사회주의 공화국의 상징물이 되었다.그래도 꽤 오래된 건물이다...

북경여행기 - 3일 (남당南堂-남천주당)

베이징 3일차 아침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 택시를 타고 남당으로 향한다.베이징에서 택시는 꽤 매력적인 교통수단이다. 일단 버스는 엄두가 안 나고...(나중에는 시도해 볼 생각이 있긴 하지만)지하철은 힘들다. 택시는 기본요금이 우리 돈으로 2천 원이 안 되는데 뭐 메타기 올라가는 속도도 적절해서자금성 뒤쪽에서 타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바가지만 안 씌운다면 꽤 탈 만한 것 같다.가는 중간에 5.4운동 기념비가 보인다. 5.4 운동이야 워낙 중요한 것이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뭐 후에 다시 언급하겠다. 천안문 광장을 지나간다. 천안문은 이따가 볼 것이고 드디어 남당 도착 남당에 들어가는 문왼쪽은 마테오 리치, 오른쪽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참고로 이전 여행기나 가이드북을 보면 이 동상들이 성당 바로 앞에 ..

북경여행기 - 2일 (중국국가박물관4:근현대사)

이제 반대편에 있는 상설전시관인 부흥의 길(부흥지로)에 가려고 하는데헐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지기 시작한다.이 때가 4시 15분, 5시가 폐관인데 직원들이 5시 정각에 칼퇴근하려고 앞부분부터 불을 끄고 있던 것이다.사실 이게 다 박물관 구조상의 문제인데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은 각 관이 연결돼도 문은 또 따로 있지만 이 놈의 국가박물관은 한 번 들어가면 그 전시관이 끝날 때까지 나올 수가 없다.게다가 동선이 1km가 넘는 엄청 긴 전시관이니 이렇게 4시 15분이 되자 자비없이 불을 꺼버리는 것 멘붕한 우리는 정신을 수습하고 얼른 반대편의 출구로 달려가서 갈 수 있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ㅋㅋ결국 신해혁명, 5.4운동, 국공내전, 대장정 이런 거 다 빼먹고 중화인민공화국 선포부터 보기 시작했다.사실 그나마 ..

북경여행기 - 2일 (중국국가박물관3:삼국양진, 수당오대, 요송하금원, 명청시대)

이제 삼국, 양진, 남북조시대관이다.본격적으로 한족과 북방 민족의 혼합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남북조시대의 병마용더 작고 귀여워졌다. 특이한 것은 한나라 이후로는 전시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위 사진은 남북조 시대에 발명된 일종의 컨베이너 벨트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수력으로 움직였다고. 물건을 옮기기보다는 물을 공급하는데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집 모양 토기이 시기부터 불교가 보급되면서 화장이 유행한다. 서역인들의 모습이 그려진 유약도기 관인의 모습을 한 도용이 시기부터 선비족 등 북방민족의 유입이 본격화된다. 이 두 불상은 산동선 용흥사 터에서 발견된 남북조시대의 불상이다.용흥사에서는 수백 개의 석불, 소조불이 발견되었는데 중국 초기 불상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원오리..

북경여행기 - 2일 (중국국가박물관2:선사, 하상서주, 춘추전국, 진한시대)

이제 고대중국기본진열이 시작된다.고대 중국이라고 해도 선사시대부터 명청대까지 전근대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들어가면 이런 북경원인 모형이 먼저 보인다. 그 유명한 북경원인의 두개골과 모형하지만 저 두개골은 가짜인데, 중일전쟁 와중에 가장 중요한 두개골은 사라졌다고 한다.서양인들에 의해서 발견되고 연구되었기 때문에 중일전쟁 당시 안전한 미국으로 옮기는 와중에 사라졌다는데... 지금도 중국 정부에서 현상금을 걸고 찾는단다. 다행히 나중에 북경 원인 유골은 많이 발견되었다. 매 모양 토기 정(鼎)신석기 시대의 토기로 표면을 연마했다. 유골을 그대로 떠온 것 황하문명의 토기들 황하문명의 토기들은 채색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래서 채도문화라고 하기도 한다. 옥룡내몽골지역에서 출토된 홍산문화의 옥기이다.기원전 3..